초록버스가 달린다, 예쁜 것들 수놓인 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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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버스가 달린다, 예쁜 것들 수놓인 그 길

[주말여행] 63번 시내버스 여행 가는골·바깥아감·모래재… 이름부터 예쁜 마을들 지나보은 회남리까지 달리는 버스, 종점선 대청호가 고요히 반겨

  • 승인 2016-07-28 13:39
  • 신문게재 2016-07-29 9면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햇볕 쨍쨍거리는 이 염천에 떼거지로 몰려온 매미들이 자지러지게 울어댑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일홍은 부풀린 봉오리를 언제 터트렸는지 싶게 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유혹의 몸짓을 보냅니다. 나이 50먹은 딸 먹이겠다고 노구를 이끌고 무장아찌 무쳐 보낸 우리 엄마는 지금 무얼 할까요. 찬 보릿물에 밥 말아 한술 크게 떠 장아찌 두어점을 올려 먹습니다. 비로소 징한 여름이 왔음을 실감합니다.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지기 시작하는 한여름의 아침 나절, 대전역 앞에서 63번 시내버스에 올랐습니다. 번잡한 도로를 부르릉거리며 지나가는 시내버스를 볼 때마다 늘 생각했습니다. '저 버스는 어디까지 갈까, 저 버스가 닿는 마을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63번 버스는 충북 보은 회남리가 종점으로, 가는골·오리골·바깥아감·요골·모래재·방아실 등 이름도 예스럽고 어여쁜 마을들을 지나간다네요. 일단 오리골에서 내리기로 했습니다. 식장산 가려면 이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습니다. 보문산 정상 시루봉에 오를 때마다 동쪽에 우뚝 솟은 식장산을 보며 언제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몇 번 버스가 가는 지 몰라 선뜻 나서지 못하던 터였거든요.

대전시내를 벗어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버스는 덜커덩거리며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어르신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말소리가 정겹기만 하네요. 늘 보는 거지만 오늘은 색다르게 다가오는 풍경들을 감격스럽게 바라봅니다. “아이고 엄니, 아침밥 조금 먹었는데 버스가 왜이리 흔들리는지 모르겄네.” 옆자리 할머니와 얘기꽃 피우던 할머니가 탄성을 지릅니다. 대전을 막 벗어났는데도 매연냄새와 요란한 찻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오지에라도 온듯 완연한 시골입니다. 굽이굽이 좁은 길을 돌고 돌면서,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복사꽃 흩날리는 무릉도원 아닌가 착각마저 하게 되네요. 여행지에 대한 나의 과도한 감정이입 탓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루 무작정 갈 데까지 가보자는 나들이가 더없이 즐겁기만 합니다.

오리골은 큰 길에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마을로 대청호변에 자리잡은 곳입니다. 마을 가운데엔 멋들어진 늙은 소나무 몇그루가 수호신처럼 서 있고요. 마침 머리를 단정하게 쪽진 할머니가 버스정거장 의자에 앉아 있네요.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가려고 대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랍니다. “여기 볼 게 뭐 있다고 와. 노인들 밖에 없는데….” 이름있는 명승지 놔두고 여길 왔을까, 어른들 눈엔 당연할 법 합니다. 하지만 대전에서 버스로 20여분 거리인데도 어찌나 공기가 맑은지요. 마을 안쪽으로 난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포도밭이 나오네요. 알알이 여문 포도가 탐스러워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입니다. 포도밭 주인 김경분(78) 할머니는 몸은 고되지만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잡초를 일일이 뽑습니다. 제초제를 뿌리면 땅도 오염되고 내 자식들이 먹는다고 생각하니까 수고로움을 마다할 수 없답니다. 알고보니 대사동 농협 금요장터에 채소며 과일을 갖고 나와 파는 분이었습니다. 어쩐지 낯이 익었는데, 사람의 인연은 간단치 않은가 봅니다.

이 마을은 1980년 대청댐이 조성되면서 이주해 온 수몰민들의 새로운 터전입니다. 제 2의 고향인 셈이지요. 수백년 대를 이어 살아온 정든 터전을 물에 수장시키고 떠나올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니까 우리 겉은 사람들이 뭐 할 수 있나. 나가라니까 쫓겨나다시피 서둘러 나왔지. 보상금도 변변찮았어. 대청댐 생겨 대전사람들이 맑은 물 맘껏 먹으니께 좋은 거지 뭐.” 고향은 고향을 잃은 자에게만 존재합니다. 작가 김훈은 고향이라는 어휘가 거느리는 정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향도 없고 타향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고향에 대한 정한이 징그럽게 사무쳤나 봅니다.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말로 다해 뭣하겠습니까만 정 붙이고 살면 다 고향이겠지요.

다시 63번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종점인 회남리까지 가려고요. 대청호변을 따라 가는 길이 지루하지가 않아 고개를 빼고 구경하기 바빴습니다. 벚나무가 터널을 이룬 길은 벚꽃 피는 봄엔 장관일 것 같습니다. 자전거 하이킹하는 세명의 젊은이도 보이네요.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기분을 나도 같이 느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회남리를 끼고 도는 대청호는 적막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물은 한없이 맑고 펄럭거리는 물새 한 마리 안보입니다. 마치 햇살만이 내리꽂는 황량한 사막 같았는데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을이 오면 볕 좋은 날, 도시락 싸 갖고 회남리에서 오던 길을 따라 걸어보렵니다. 생각만 해도 설레는 걸요.

▲가는길=대전역 앞에서 63번 버스가 있다. 1시간에 1대 꼴로 있다. 판암동~세천동~대청동~오리골… ~충북 보은 회남리까지 간다. 승용차로 드라이브하기에도 딱 좋은 곳이다. 대청호를 따라 멋들어진 풍경이 펼쳐진다.

▲먹거리=길따라 한식당과 레스토랑이 점점히 박혀 있다. 옥천과 인접해 있어 올갱이 해장국도 맛볼 수 있다. 먹기좋고 예쁜 도시락 싸가서 소풍 나온 기분을 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글·사진=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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