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배지근한 고기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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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식탐]배지근한 고기국수

  • 승인 2018-10-17 09:24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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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마다 향토음식이란 게 있다. 전주비빔밥, 병천순대국밥, 안동찜닭, 구즉묵밥, 강릉초당두부, 부산 돼지국밥. 그 지역에 가서 먹어보면 과히 실망하지 않는다. 괜히 소문난 게 아니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요즘은 전국 어디서나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향토음식이란 말이 무색하다. 대전에서도 안동찜닭을 먹을 수 있다. 순대국밥 집은 널렸다. 대전 어딘가에서 진주 헛제사밥을 판다길래 웃은 적도 있다. 워낙 땅이 좁다보니 지역 특색이 사라지는 모양이다.

몇 년 전 친구랑 집 근처 백화점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웬만하면 백화점에서 밥을 안 먹는데 친구가 맛있는 식당이 있다고 해서 속는 셈 치고 갔다. 친구도 내가 백화점 식당을 좋아하지 않는 걸 안다. 일단 백화점 식당밥은 맛이 없다. 보기에 깔끔하고 맛있어 보이기만 할 뿐 먹고 나면 꼭 후회한다. 조미료 잔뜩 넣은 프랜차이즈 맛이랄까. 늘 의문이다. 친구가 데려간 식당은 돼지국밥을 팔았다. 어? 돼지국밥은 내가 무지 좋아하는데? 내가 부산에 가는 이유 중 8할은 돼지국밥 때문이다. "몇 번 먹어봤는데 먹을 만해." 친구는 자신있게 권했다. 오 마이 갓! 이런 걸 돼지국밥이라고 팔다니 어이가 없었다. 반쯤 먹다가 결국 수저를 놓아버렸다. 친구는 나한테 입맛이 똥맛이냐고 지청구를 한 대접 얻어먹었다.

제주도는 섬답게 특이한 음식이 많다. 몸국, 고기국수 등 육지에 없는 것들이라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혼자 제주도 여행 갔을 때 서귀포에서 고기국수를 먹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녔기 때문에 이름난 맛집을 찾아간다는 건 엄두도 못내는 처지였다. 거기다 하루종일 걸어서 몸이 파김치가 돼 아무 데나 들어가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게 급선무였다. 골목 어딘가에 고기국수 파는 식당이 있어 무작정 들어가 먹었는데 실망했다. 후추 향이 강했고 고기도 두 세 점이 고작이었다. 고기국수가 이런 건가?

지난 주 금요일 회사 체육대회 때문에 수통골에 있는 대학에 가게 됐다. 후배랑 유성을 지나다 후배가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해줬다. 유성에 고기국수 파는 식당이 있단다. "맛있더라고요. 제주도 가서 먹은 거와 똑같아요. 제 딸도 잘 먹어서 종종 오는 곳이에요." 다다음날 달려갔다. 난 궁금하면 바로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거기다 고기국수라지 않은가. 대로변에 있는 식당인데 소박했다. 문을 열자 많은 손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점심 시간을 피해서 왔는데도 바글바글했다. 후루룩 쩝쩝. 입가에 묻은 국물을 휴지로 닦아가며 다들 국수를 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벽에 돌하르방이 크게 나온 사진이 떡하니 붙어 있어 나름 제주도 분위기를 냈다. 메뉴는 고기국수, 비빔국수, 수육 세 가지다.



통통한 중면에다 뽀얀 국물과 돼지고기 수육. 그리고 쫑쫑 썬 파. 일단 국물을 떠 먹었다. 오, 이런! 담백하고 깊은 육수 맛이 입안에 퍼졌다. 국물을 몇 번 떠먹고 젓가락으로 국수와 고기를 듬뿍 집어 볼이 미어터져라 입에 넣었다. 수저로는 국물을 연신 떠먹었다. 기름이 동동 뜬 국물이 일품이었다. 국수에 돼지고기라. 희한한 조합 아닌가. 언젠가 TV에서 중앙아시아 어느 지역 사람들이 볶은 양고기를 국수에 넣어 먹는 걸 봤다. 늘 그 맛이 궁금했다. 나라는 달라도 하나의 먹거리 재료로 먹는 방법은 비슷비슷하다. 사람의 입맛도 본능적이어서일까. 국물까지 다 먹고나니 배가 터질 지경이었다. 지하철을 타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책을 꺼내 읽으면서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해댔다. 결국 한쪽 눈에서 넘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눈물을 닦다가 맞은편에 앉은 남학생과 눈이 마주쳐 민망했다. 얘 오해하지마. 책 때문이 아니라 배지근한 고기국수 맛의 후유증이란다.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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