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취재 기록-1]…판소리의 원류는 충청도다

[10년간의 취재 기록-1]…판소리의 원류는 충청도다

전라도 허름한 골동품 상점서 발견된 ‘13 글자’의 비밀은?
판소리 북에 쓰인 ‘충청북도 청주군 청주읍 박행충’ 글귀…국악계 이목집중
36년간 수집해서 쓴 책 한권, ‘충청도 판소리’의 비밀 풀릴까

  • 승인 2021-03-22 14:53
  • 수정 2021-08-24 00:38
  • 신문게재 2021-03-23 17면
  • 손도언 기자손도언 기자
박행충북
'충청북도 청주군 청주읍 박행충 '. 전라도지역의 한 골동품 상점에서 발견된 소리북은 1931년~1946년 무렵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주지역에서 활동한 '박씨 광대'라면 박행충은 충북 가야금산조·병창·판소리의 명인 박팔괘의 일가일 가능성이 있다.<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우리나라 전통소리인 판소리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 벌써 18년째다. 그러나 판소리는 현재 대중화에 다가서지 못하고 수백년 전, 그 모습으로 머물러 있다. 정부나 자치단체는 관심 밖이다. 중도일보는 '2003년 판소리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등재 18주년'을 기념해 충청도 전통소리의 가치를 재조명할 시리즈, ['10년간의 취재 기록'…판소리의 원류는 충청도다]를 기획 보도한다. 이번 기획 시리즈는 모두 100회가량 지면과 인터넷 등을 통해 연재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기획 시리즈는 'K팝과 판소리의 대중화' 및 '판소리 전라도 동·서편제와 충청도 중고제와의 관계', '충청도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은 누구인가', 그리고 '판소리 고향은 실제 어느지역인가' 등을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충청도민들의 삶이 닮아있는 판소리 중고제. 이번 기획 시리즈를 통해 충청민들의 정체성과 가치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번 기획 시리즈는 노재명 판소리학자, 조동언 판소리 명창 등과 전국의 명창 등을 10여년간 직접 만났고, 이들의 생생한 증언 등을 기본으로 보도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박팔괘기사1930년10월19일_동아일보
1930년 10월 16일~18일까지 청주 앵좌(櫻座)에서 열린 '추기 독자 위안대회'. 판소리 명창 박팔괘, 이동백, 그리고 명기 윤계화 등 십여명이 공연한 기록이다. 1930년 10월 19일자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2000년대 초반, 전라도 광주지역의 허름한 골동품 상점. 도자기부터 고서(古書)까지 오래된 물건들이 골동품 상점을 가득 채웠다. 일부 골동품은 아무렇게 방치돼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국악학자인 노재명(52·서울) 국악음반박물관 관장은 상점 한쪽 구석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상점 한켠에서 먼지 쌓인 '판소리 북'을 발견했고,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판소리 북 채편에서 '13자'의 글씨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문으로 써 내려간 글귀는 '충청북도 청주군 청주읍 박행충'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소리 북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1931~1946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국악계의 견해다. 국악계는 그러나 글귀에 명시된 박행충과 충북 청주읍을 토대로 '충북 판소리 명창'의 소리 북임을 짐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말쯤 판소리 고수들의 '북'은 현재까지 제자 등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대부분 전라도 판소리 고수(소리 장단을 맞추는 사람)들의 것이다.

이렇게 충북 청주라는 지명과 이름까지 선명하게 새겨진 소리 북의 발견은 충청지역 국악계를 흥분시켰다. 전라도뿐만 아니라 충북에서도 명창이 활동했다는 증거가 소리 북을 통해 다시 한번 밝혀진 것이다. 조선창극사에서도 '충청도 명창'이 등장하지만 이처럼 충청도 명창이 국악기에 흔적을 남긴 것은 드믄 예다.

그러나 '박행충'이라는 명창은 국악 관련 고서(古書) 등에서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다만 국악 가야금 산조의 명인 박팔괘(1882년~1940년) 명인의 친인척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박팔괘 명인은 충북 청원 출신이다. 당시엔 청원군이었지만 현재는 청주시와 통합됐다. 박팔괘 명인은 '충청제(忠淸制)'라는 독자적인 산조가락을 만들었던 인물이고, 국악계의 큰 스승으로 통한다.



노재명저서_동편제 심청가 서적2021
노재명 판소리 학자의 저서 '동편제 심청가 흔적을 찾아서(태림스코어 발행) 신간. 노 학자가 36년간 수집해서 쓴 책 한권인데, '충청도 판소리'의 비밀이 풀릴지 관심이다.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국악학자는 "당시 신분사회에서 그것도 최하위 계층인 소리꾼이 자신의 이름과 지명을 소리 북에 남겼다는 것은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면 옛날 명창들은 자신을 밝힐 때 '전라도 명창 누구다'라고 말하는데, 이름 앞에 지명을 넣어서 이야기 했다"며 "이런 점에서 볼 때 박행충 명창도 소리 북에 지명을 쓴 뒤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편 노재명 국악학자가 36년간 자료를 수집해 써내려 간 신간도서 '동편제: 심청가 흔적을 찾아서'는 판소리 심청가의 뿌리를 엿볼 수 있다. 심청가의 뿌리는 '충청도 판소리 중고제'에서 시작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제천·단양=손도언 기자 k-55son@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