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리포트2021④] "하숙하실래요?", "쉬었다가" 중동의 100년은 변하지 않았다

[도시재생리포트2021④] "하숙하실래요?", "쉬었다가" 중동의 100년은 변하지 않았다

[도시재생, 외면했던 진실을 보다] ③춘일정 100년, 중동 10번지를 가다

  • 승인 2021-08-11 16:01
  • 수정 2021-08-24 10:32
  • 신문게재 2021-08-12 6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컷-도시재생리포트

 

 

논과 밭이 전부였던 대전은 철로가 놓이면서 대도시로 발전한 대표적 도시다. 대전역세권을 중심으로 충청권 제1의 도시로 자리 잡는 동안 일제강점기의 잔재로 불리는 유곽(遊廓: 허가받은 성매매 집결지)이 형성된다. 1990년 대전이 폭발적인 발전을 이뤄낼 때도 동구 정동과 중동, 원동(행정동 명칭:중앙동)은 ‘춘일정’과 ‘영정’으로 불리는 유곽, 성매매 집결지로 명성을 날렸다. 성매매가 호황 누리던 시절은 지났다고 하지만, 2021년 이곳은 여전히 어둡고, 음침했고, 은밀했다. 100년이란 시간 동안 역세권의 중심부에서 공존해온 일명 중동 10번지를 다녀왔다.

 

KakaoTalk_20210811_101302526_01

옛 춘일정 일대의 모습. 춘일신지라고 쓰여 있는 안내판에 신지 '新地'는 신개지에 생긴 유곽을 뜻한다. 사진=대전시 제공
중동 10번지, 대전의 성매매 집결지는 십자거리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대전역 서광장에서 거리로 나와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한약·미용·인쇄거리가 모여 있는 곳이다. 성매매 집결지임을 모르고 들어선다면 1980~90년대에 머물러 있는 옛 동네로 오해하기 쉽다. 유명한 맛집도 있고, 운영하지 않지만 오래된 극장도 있고, SNS를 통해 입소문 난 커피숍도 있다. 하지만 간판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이곳은 복고풍의 동네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수많은 성매매 업소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KakaoTalk_20210810_223029686_09
중동 10번지에 위치한 일명 십자거리 일대. 이곳에 위치한 가게 90%는 성매매 업소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김소희 기자
KakaoTalk_20210810_223029686_14
대전시에서 공사하는 도심형플랫폼 건물 옆 바로 성매매 업소들이 즐비해있다. 청객을 위한 작은 천막 공간과 의자들이 놓여 있어, 아직 영업 중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사진=김소희 기자
오후 4시쯤, 차를 몰아 정동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대전시에서 진행하는 '도심형산업지원플랫폼' 건립 공사였다. 공사 현장 바로 옆에 성매매 업소가 있었다. 우뚝 솟은 공사 현장은 낮게 위치한 성매매 업소를 그늘지게 만들었다. 이 모습은 성매매 업소가 음지 있다는 것을 더욱 실감케 했다. 호객행위를 하는 '청객'은 없었지만, 업소를 방문하는 손님을 위한 의자나 청객을 위한 대기 장소가 보였다. 아직 '영업 중'이라는 걸 증명하는 흔적이었다.

십자거리로 향했다. 지역 활동가들에 의하면 십자거리 주변 90%가 성매매 업소라고 했다. 빨간 간판이 달린 여인숙이 즐비했고, 해가 지지도 않은 대낮인데 이미 청객(호객행위 담당)들이 오갔다. 성매매는 주로 밤에만 이뤄지는 것이라 여겼는데, 유동인구가 있고 일반인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호객행위와 성매매가 일상처럼 있을 정도다.

여인숙으로 들어가는 젊은 여성들도 여럿 있었다. 낡고 오래된 건물, 유곽이 형성됐던 시간을 생각하면 종사자들은 당연히 고령일 것이라 생각했다. 편견이었다. 2019년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중앙동 성매매 집결지 종사자는 40대 이상의 여성이 다수였다고 했지만, 그 이하인 종사자들도 적지 않았다.



KakaoTalk_20210810_223029686_05
<사진 왼쪽부터> 중동 10번지 일대에서 젊은 남성들이 걸어 나오고 있고, 바로 옆 청객들이 모여 있다. 한 여관 입구에 청객이 부채를 흔들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사진=김소희 기자
밤 10시, 다시 정동을 찾았다. 정동은 밤이 되니 한없이 어두웠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유난히 가로등도 없었고 골목 곳곳이 너무나 어둡게 느껴졌다. 취재 후 들은 이야기로는 가로등을 설치해놔도 업주들이 파손한다고 했다. 이들에겐 업무 방해 요소일 뿐이기 때문이다.

밤이 되자 낮에는 서너 명에 불과하던 청객이 부쩍 늘었다. 작은 골목 의자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듯했다. 십자거리에는 더 많은 청객이 있었는데, 차량이 진입하자 부채를 흔들며 호객행위를 시작했다. 그때 한 남성이 나타났다. 청객과 대화를 나누던 남자는 안내를 받으며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하숙 안 하세요?" 1950년대 제작한 '신천지'라는 잡지를 보면 하숙이라는 단어는 한국전쟁 이후 성매매 호객 단어였다. 지금은 "잠시 쉬었다 가라"는 표현이 쓰이지만, 속뜻은 70년 전이나 현재는 다를 바가 없었다.

십자거리 옆 골목으로 이동하자 젊은 남성 두 명이 나왔다. 남성들을 보면 으레 호객행위를 하는 것이 청객인데, 이들에게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방금 업소에서 나왔다는 걸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다.

최근 경찰이 단속을 시작하면서 그나마 활동이 줄어든 모습이라지만, 성매매를 권하고, 성을 사고, 파는 행위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대전시의 도시재생 정책에도 의문이 들었다. 청년공간과 도시재생 지원센터를 성매매 업소 곳곳에 건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는 것일까.

밤이면 이곳은 외딴 섬이 된다. 대전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방침이라 밤 10시부터는 영업을 중단해야 하는데, 이곳은 4단계나 코로나와는 무관한 듯 보였다. 세계를 뒤흔든 감염병도, 행정과 경찰의 눈도 무섭지 않다. 대전이지만, 대전처럼 보이지 않는 중동의 밤, 과연 도시재생이라는 정책이 바꿔놓을 수 있을까. 김소희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KakaoTalk_20210811_101302526
옛 중앙동의 모습. 게이샤로 추정되는 여인들이 유곽 앞에서 있다. 사진 출처 = 호남일보사, 충청남도발전사, 1932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4.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