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행] 2-피난살이 설움을 안고 태어난 대전 숯골냉면

  • 문화
  • 맛있는 여행

[맛있는 여행] 2-피난살이 설움을 안고 태어난 대전 숯골냉면

김영복/식생활문화연구가

  • 승인 2023-08-21 00:00
  • 수정 2023-08-22 14:16
  • 신문게재 2023-08-22 10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
대전 '숯골원냉면'의 물냉면과 만두
요즘 30℃를 웃도는 찜통더위가 연일 계속된다.

이런 날은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이 생각이 난다. 원래 '냉면(冷?)'은 '이냉치냉(以冷治冷)'이라고 겨울에 먹는 음식이라고 하지만 이제 여름으로 보편화된 것 같다.

냉면은 순 우리말로 '차가운 국수'다. 이 '차가운 국수'를 한문(漢文) 문화권에서 '냉면'이라 하는 것이다.

'냉면'을 처음 기록한 문헌은 조선 중기 문신이며 학자인 계곡(溪谷) 장유(張維1587~1638)의 『계곡집(谿谷集)』 제27권 '紫漿冷?(자장냉면) 자줏빛 육수에 냉면을 말아 먹고'라는 시(詩)다.

"已喜高齋敞(이희고재창) 높다랗게 툭 터진 집 좋다마다요

還驚異味新(환경이미신)게다가 별미(別味)까지 대접을 받다니요

紫漿霞色映(자장하색영)노을 빛 영롱한 자줏빛 육수

玉粉雪花勻(옥분설화균)옥 가루 눈꽃이 골고루 내려 배었어라

入箸香生齒(입저향생치)입 속에서 우러나는 향긋한 미각

添衣冷徹身(첨의냉철신)몸이 갑자기 서늘해져 옷을 끼어 입었도다

客愁從此破(객수종차파)나그네 시름 이로부터 해소되리니

歸夢不須頻(귀몽불수빈)귀경(歸京)의 꿈 다시는 괴롭히지 않으리라"

그런데 면의 형태가 어떤지는 몰라도 고려 말에 더운 여름에 냉면을 먹었다는 내용이 『목은집(牧隱集)』에 나온다. 고려 3은(三隱) 중에 하나인 목은 이색(李穡,1328~1396)은 '하일(夏日)의 즉사(卽事)'라는 제목으로 더운 여름에 시원한 냉면을 먹은 것을 시로 읊은 것이다.

"火雲終日照衰顔(화운종일조쇄안)더운 구름이 온종일 쇠한 얼굴 비추어

八面虛堂坐不冠(팔면허당좌불관)팔면이 텅 빈 집에 관도 안 쓰고 앉았노니

桃葉冷淘淸入骨(도엽냉도청입골)도엽 냉도는 시원함이 뼈에 사무치고요"

여기서 '도엽냉도(桃葉冷淘)'는 여름철 시원하게 먹는 오늘날 냉면과 같은 형태의 음식이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杜甫 712~770년)의'괴엽냉도(槐葉冷淘)'라는 시가 있는데, 홰나무 잎의 즙을 내어서 이것을 국수와 섞어 냉면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속칭 과수면(過水麵)이라고 하며, 냉도면(冷淘麵) 혹은 괴도(槐淘)라고도 한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제19권

복숭아나무 잎과 회화나무 잎의 차이만 있을 뿐 목은 이색이 여름에 먹던 '도엽냉도(桃葉冷淘)'도 두보(杜甫)의 괴엽냉도(槐葉冷淘)처럼 면이었음이 분명하다.

이후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무김치 냉면에다 송채무침 곁들여 먹었고, 냉면만 먹은 게 아니라 온면도 먹었다고 한다.

2
대전 '숯골원냉면'의 냉면, 메밀 함량이 높아 고들고들하면서도 쫄깃한 면발의 식감이 돋보인다.쫄깃한 면을 계속 씹다보면 구수한 향이 입안에서 은은하게 퍼진다.
KakaoTalk_20230813_123453196
구한말 대표적인 시인이며 역사가였던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은 『매천집(梅泉集)』에 "穉孫報道山廚午(치손보도산주오)어린 손자가 산촌 부엌의 점심때를 알리니/ 冷?千絲石竇泉(냉면천사석두천)냉면 천 가닥을 돌 틈 샘물에 말았구나"라고 적었다. 더운 여름철 돌 틈에서 흘러나오는 시원한 샘물에 말은 냉면을 읊었다.

개성 출신이었던 대한제국 시기 문신·학자·시인이었던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1850년∼1927년)은 『소호당집(韶濩堂集)』 1권에서 "簾幕重重翠影流(렴막중중취영류)겹겹의 주렴 장막에 푸른 그림자 비치네/ 碧?麵絲壓京陌(벽완면사압경맥)푸른 주발의 면발은 도성 거리 압도하고"라는 시와 함께 "평양의 풍속에는 메밀 냉면〔蕎麥冷?〕을 잘 만든다"고 하였다.

특히 냉면은 고종이 즐겨 먹었는데,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 1814~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 1871), 「춘명일사」(春明逸史)편에는 순조 임금의 냉면 이야기도 나온다.

'순조임금은 군직과 선전관들을 불러 함께 달을 감상하곤 했는데, 어느 날 밤 군직에게 명하여 문틈으로 면(麵)을 사오게 하며 이르기를 "너희들과 함께 냉면을 먹고 싶다" 하셨다. 한 사람이 스스로 돼지고기를 사가지고 왔으므로 상이 어디에 쓰려고 샀느냐고 묻자 냉면에 넣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는데, 상은 아무런 대답을 안했다. 냉면을 나누어 줄 때 돼지고기를 산자만을 제쳐 두고 주지 않으며 이르기를 "그는 따로 먹을 물건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일은 측근 시신(侍臣)이 자못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3
대전 '숯골원냉면'의 냉면은 고명으로 올린 계란 지단과 냉면무, 오이채, 닭살 등이 면과 호환되어 식감이 좋다.
이렇듯 대한제국 시기 서울을 비롯한 경남 진주 일원 등에 냉면이 있었으며, 냉면 매니아로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 냉면을 언급할 정도이고, 도산 안창호 선생은 1915년 미국 시카고에서 냉면을 먹었다는 내용의 연설을 할 정도였다.

구한말 서울 등지에서는 여름철에 즐겨 먹었지만 유독 평양에서는 겨울철에 냉면을 즐겨 먹었다.

1911(메이지 44년)년 이미 '평양조선인면옥조합(平壤朝鮮人麵屋組合)'이 생길 정도로 냉면은 평양의 대중적인 음식이었다.

1936년 판 『평양상공명록(平壤商工名錄)』에 등재된 평양냉면집들은 16곳이다. 1940년에 『평양상공명록(平壤商工名錄)』에 기재된 '평양조선인면옥조합(平壤朝鮮人麵屋組合)'의 회원이 60명으로 나온다. 1937년 8월 1일자 『동아일보』에는 "평양부의 80여 냉면업자는 일제히 냉장고를 사용하도록 엄단할 터이다"라고 나온다.

1939년 [평양상업조사]에 평양 전체 음식점 578개 가운데, 냉면집이 127개로 나온다.

이렇듯 평양은 냉면 천지 도시라 할 만큼 냉면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당시에 '쨍'한 동치미 국물을 주로 국물로 사용했지만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꿩고기를 이용한 고기 육수에 메밀 면을 말아낸 냉면도 동시에 존재했다.

그런데,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으로 인해 평양에 살던 피난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고 그 피난민 중 평양에서 1대 박내섭 씨에 이어 2대는 박재록 씨가 운영하던 모란봉 냉면의 아들인 박근성 씨가 1.4 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남하하여 1954년 처가인 대전에 자리를 잡아 당시 메밀이 많이 나던 숯골(대전광역시 유성구 신성동 및 그 주변) 장터에서 '숯골원냉면'이라는 상호로 냉면집을 개업하여 평양 모란봉냉면의 기술과 맛을 복원하는데 주력하였다.

숯골 평양냉면은, 흔히 접하지 못한 현 주민보다는 같이 월남한 이주민의 기호에 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냉면의 주재료는 메밀이다.

대부분 피난민들이 평양냉면집을 한다고 하지만 육수나 면이 현대적인 입맛에 맞춰 변형된 경우가 많은데, 이 집은 고집스럽게 꿩육수와 닭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섞는다.

4
대전 '숯골원냉면 본점' 건물 모습
5
대전 '숯골원냉면 본점' 내부 모습
고명으로 올라 간 계란 지단과 냉면 무, 오이채, 닭살이 면과 호환되어 식감이 좋고 메밀 함량이 높아 고들고들하면서도 쫄깃한 면을 계속 씹다 보니 구수한 향이 입안에서 은은하게 퍼진다.

물냉면을 먹고 비빔냉면도 맛을 봐야 할 것 같아 시켰다.

비빔장을 직접 만든 것 같다. 약간 거친 듯하지만, 매콤하면서 감미가 입안에서 돌고 필자가 너무 예민한 반응일지는 모르지만 약간 미세한 알갱이가 씹히는 듯하다.

모든 음식의 맛은 개개인 주관적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냉면은 더욱 그렇다.

김영복/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식생활문화전문가 프로필샷
김영복
[중도일보] 기획 10면_20230822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6 경제세미나] "대전 AI 성장전략, 우수한 연구역량을 산업 경쟁력으로”
  2. 세종시 아이들의 놀이터, '꿈마루 사업'… 예산 정상화 주목
  3. '시비 지원 없다'던 세종 빛트리축제… 보조금 6천만원 논란
  4. 천안시, '빵빵데이' 참가 빵집 53곳 집중 위생점검 완료
  5. 충남대 명예교수회, 명사특강으로 지역 협력의 새 길 열다
  1. [결혼] 정태희 대전상의 회장 자혼
  2. 세종시 복지·의료 사각지대… 시의회 행감서 잇단 지적
  3. 서구 사회복지관협의회 사례관리 네트워크 '서구 사례이음' 사례관리 컨퍼런스
  4. [부고] 방기봉 대덕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 장모상
  5. 세종시 토석채취·지하수 관리 도마 위… 시의회 개선 촉구

헤드라인 뉴스


양보안에도 기존 후보 고수…답 없는 대덕구의회에 區 `셧다운 위기`

양보안에도 기존 후보 고수…답 없는 대덕구의회에 區 '셧다운 위기'

대전 대덕구의회가 넉 달째 이어진 파행으로 민생을 내팽겨 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전반기 의장직을 둘러싼 감투싸움만 되풀이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조건부 의장직 양보 의사를 밝혔지만, 국민의힘은 기존 의장 후보 추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여야 간 협상이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 의회 파행이 장기화하면서 대덕구의 행정 업무에도 차질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는 20일까지 원 구성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도 본예산 심의마저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중도일보 취재결과, 대덕구의회 국민의힘 소속 의원 4명(전석광..

대전 빵집 120곳 한자리에…`2026 대전 빵 축제` 17일 개막
대전 빵집 120곳 한자리에…'2026 대전 빵 축제' 17일 개막

대전의 다채로운 빵과 문화, 즐길 거리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2026 대전 빵 축제'가 오는 17일부터 18일까지 이틀간 엑스포과학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 축제에는 지난해보다 늘어난 지역 빵집 120곳이 참여해 각자의 개성을 담은 대표 메뉴를 선보인다. 개막식은 17일 오후 6시 시민과 함께하는 15m 규모의 대형 롤케이크 커팅 퍼포먼스와 축하공연으로 막을 올린다. 축제의 중심인 '빵 정거장'은 5개 구역(A~E)으로 나눠 운영되며, 방문객들은 참여 빵집의 대표 메뉴를 매장 판매가격보다 5% 이상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대전노동청과 천안·서산지청, 중대재해 33건 조사 외면?
대전노동청과 천안·서산지청, 중대재해 33건 조사 외면?

대전지방고용노동청과 천안·서산지방청이 산업재해로 인정된 중대재해 33건에 대해 재해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재해 발생 상황 파악 등 후속 조치를 해야 하는 유족보상과 장의비 접수 사건도 100건이나 빠뜨렸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어기구 의원(충남 당진시)이 고용노동부 지방노동청별 현황을 분석해 15일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재해 요양 급여 승인 사건 중 대전청 15건, 천안지청 13건, 서산지청 5건 등 모두 33건의 재해 발생 상황 파악과 재해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산재 요양 급여 승인 사..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한화이글스 류지현 감독 취임 한화이글스 류지현 감독 취임

  • ‘나Be 한마당에서 꿈 찾았어요’ ‘나Be 한마당에서 꿈 찾았어요’

  • 유성국화축제 ‘준비 착착’ 유성국화축제 ‘준비 착착’

  • 어르신들의 신중한 한수 어르신들의 신중한 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