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필연적 시대착오의 함정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필연적 시대착오의 함정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3-09-04 10:22
  • 신문게재 2023-09-05 19면
  • 이유나 기자이유나 기자
송기한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요즘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한때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경력 때문이다. 그러한 경력은 육군 간부를 길러내는 사관학교의 방향에 전혀 맞지 않기에 당연히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가 정합성이 있는 것이라면, 이 학교 2기생인 박정희 전 대통령도 학적부에서 삭제되어야 한다. 그는 남로당 조직책 출신으로 사관 학교의 가치와 전혀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나 사건을 해석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현재의 관점이 어김없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과거의 진실보다는 현재의 선입견이나 주관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이를 두고 필연적 시대착오(inevitable anachronism)라고 부른다. 역사적 사건에는 분명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된다. 그래서 이를 현재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법률에서도 이런 위험성 때문에 소위 '법률불소급의 원칙'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정적을 없애거나 현재의 가치에 맞지 않는 것들을 제멋대로 걸러내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과거의 역사나 사건들은 당시의 시대상과 분리할 수 없다. 이는 신채호의 예를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대립, 투쟁으로 보고, 조선이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력을 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양육강식론이 그것인데, 강자가 되어서 약자를 물리쳐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그의 논리는 곧바로 자가모순에 빠지게 된다. 강자인 일본이 약자인 조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나키즘을 수용한다. 강한 힘을 바탕으로 적을 물리친 다음, 이후에는 어떤 지배 세력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러면 강자에 의한 조선 지배의 정당성은 사라지게 된다.

신채호의 경우에서 보듯 자신이 하는 일들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가거나 보다 큰 정당성이 확보할 수 있게 된다면 당연히 이를 선택하게 된다. 홍범도 장군이 공산당에 입당한 것 역시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 동일한 연합국이었거니와 그가 소련에 있으니 이와 함께하는 것이 독립운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동일한 논리가 가능하다. 해방 직후 조선 백성의 70%가 사회주의를 원했다고 한다. 수천 년 동안 지주들의 횡포에 피눈물을 흘린 농민들이 대다수였으니 당연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런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여 백성들의 요구와 자신의 이념에 따라 남로당 활동이 정당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때는 지금처럼 진영논리라든가 북에 대한 적개심이 상대적으로 심화하지 않은 시기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고 거기에 현재의 가치관을 그대로 대입시켜 이들을 매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재의 가치를 무리하게 들이대는 일들은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오랜 세월 학교나 공직에 봉직한 사람들에게는 경력에 따라 정부에서 훈포장을 수여한다. 그런데 과거 음주 운전 경력이 있으면 이 서훈에서 제외된다. 물론 음주 운전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지금의 가치관에서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 행위가 이렇게까지 엄격하지는 않았다.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되던 과거의 일들에 대해 현재의 잣대가 개입됨으로써 이들은 한평생 이루어놓은 모든 공적에 대해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입시 비리라고 비판받는 것도 그러하고, 부동산 투기 논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때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된 기준들은 과거의 그것에 대해 도덕성 여부를 크게 문제 삼게 된다.

현재의 기준을 가지고 과거를 판단하면 안 된다. 현재를 통해 과거의 것들을 재단하려고 들면, 필연적으로 시대착오적인 오판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역대 인물 중 가장 존경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세종 대왕이다. 그는 한글을 발명하는 등의 업적을 통해 성군으로 칭송되지만,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아주 형편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일부일처제를 지향하는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세종은 처첩 수십 명을 거느린 희대의 난봉꾼이기 때문이다.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