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행]-17 임금에게 진상했던 노성참게와 명재 종가의 내림손맛 ‘노성게장’

  • 문화
  • 맛있는 여행

[맛있는 여행]-17 임금에게 진상했던 노성참게와 명재 종가의 내림손맛 ‘노성게장’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 승인 2023-12-11 09:40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KakaoTalk_20231211_085023377_06
게막
60~70년대 만해도 시골 개천에 게막을 종종 구경할 수 있었으며, 장마철에 논두렁에 게가 기어 다니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었다.

필자도 유년시절을 공주 우성면 귀산이라는 시골 외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외삼촌을 따라 마을 개천에 쳐 놓은 게막에 가끔 들른 적이 있다. 게막의 안쪽에 도랑 너비 40㎝, 깊이 30㎝를 파놓아서 싸릿대로 만든 게살에 걸렸던 게들은 물살을 따라 이 도랑으로 흘러든다.

게는 소리를 듣지는 못하나 빛에 민감하므로 도랑의 바닥만 비추는 장치를 해놓아야 한다. 게막은 보통 서너 사람이 함께 세우며, 잡은 게를 매일 사람 수대로 나누거나 하루하루 당번제로 잡기도 한다.

1814년(순조 14)에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 1758~1816년) 선생이 쓴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실려 있는 게가 벌덕게[舞蟹], 살게, 농게, 돌장게, 삼게, 노랑게, 흰게, 화랑게, 몸살게, 참게, 뱀게, 콩게, 꽃게, 밤게, 동게, 가제, 흰돌게 17 종류가 나오는데, 여기서 민물게 즉 참게가 천해(川蟹)로 나온다.



지금은 '게'하면 꽃게나 대게를 제일로 치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일반적으로 게 하면 민물게인 참게를 뜻했다. 이름부터 '참'게고, 풍속화나 시에 꽃게보다 참게가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조선시대 풍속화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다. 이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에는 뜻밖의 우의(寓意)가 숨어 있다. 로(蘆)는 갈대를 뜻하는데, '蘆'는 옛 중국 발음으로는 '려'와 매우 비슷하다. '려'는 원래 임금이 과거 급제자에게 나누어주는 고기음식을 뜻한다.

그 뜻이 확대되어 중국에서 과거 때 전시(殿試) 후에 진사(進士)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던 전려 혹은 여전이라고 하면 궁중에서 과거 합격자를 호명해서 들어오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물은 것은 소과(小科) 대과(大科) 두 차례 시험에 모두 합격하라는 뜻이요, 꼭 잡고 있는 것은 확실하게 붙으라는 의미다.

KakaoTalk_20231211_085023377_04
단원 김홍도의 해탐노화도
그 뿐이랴? 게[蟹]의 등딱지 즉 껍질을 이고 사는 동물이니 등딱지는 한자로 갑(甲)이 된다. 이 갑은 천간(天干) 즉,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중의 첫 번째니 바로 장원급제를 의미한다. 그리고 화제(畵題)로 '海龍王處也橫行(해룡왕처야횡행) '바다 속 용왕님 계신 곳에서도, 나는야 옆으로 걷는다!'는 것이다. 선비의 기개가 엿보이는 화제다.

권력 앞에서 쭈뼛거리지 말고, 천성을 어그러뜨리지 말고, 되지 않게 앞뒤로 버정거리며 이상하게 걸을 것이 아니라, 제 모습 생긴 대로, 옆으로 모름지기 삐딱하게 걸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재상을 지낸 황희(黃喜, 1363년~1452년)는 "대쵸 볼 불근 골에 밤은 어이 뜻드르며,벼 뷘 그르헤 게는 어이 나리는고. 술 닉쟈 체쟝사 도라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라는 시조(詩調)를 썼는데, 이를 현대어로 번역하면 이렇다. "대추가 붉게 익은 골짜기에 밤은 왜 떨어지며벼 벤 그루터기에 게는 왜 내려가는가. 술 익자 체장사가 왔으니 먹을 수밖에 없구나"

여기서 게는 민물게인 참게를 말하는 것이며, 가을이 되어 추수할 무렵이면 논에 살던 참게들이 바다로 가는 습성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참게는 두 종류가 있는데, 동남참게와 금강참게로 구분할 수 있다. 금강 이북부터 한강, 임진강, 예성강에 사는 참게가 금강참게라 하고 주로 궁중에 진상하던 참게다.

동남참게는 섬진강과 동해안 하천에 주로 서식하는 참게다.

동남참게는 생김새가 금강참게와 다르며, 산란 시기도 달라 같은 참게라 해도 다른 종으로 보면 된다. 금강참게는 7월까지는 씨알이 작아 잘 잡지 않는데, 8월이나 9월초에는 껍질이 덜 딱딱해서 참게탕이나 민물매운탕을 해 먹으며, 9월 중순 이후부터는 살이 꽉 차기 시작하고, 알이 차고, 껍질이 단단해 져서 간장게장을 담아 다음해 봄부터 여름까지 귀하게 먹던 반찬이었다.

특히 금강참게 중에 유명한 것이 바로 노성(魯城)참게다. '노성(魯城) 윤씨 식도락(食道樂)하고, 연산(連山) 김씨 묘(墓) 치장하고, 회덕(懷德) 송씨 집치장 한다'는 말이 있고 논산에서는 '연산(連山) 닭 노성(魯城) 참게다'라는 말이 있다.

계룡산에서 흘러내려 온 맑은 계곡물인 금강의 지천이 노성천(魯城川)으로 이어졌는데, 이곳에서 잡히는 참게는 다른 지역의 참게보다 다리에 털이 적고 등판이 넓으며 맛이 좋았다. 이를 '노성참게'라고 불렀다.

노성참게는 조선시대에 임금에게 진상하던 특산물로, 노성 들판에 벼가 누렇게 익어갈 무렵이면 이산현감(노성현감)이 임금에게 진상하였다 한다. 400여 년 전 조선 성종 때 지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공주목 이산현(尼山縣 : 현재 노성면) 토산(土産) 항목에 노성 참게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서 일찍부터 게가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가을에 잡은 참게는 산란을 위하여 하류로 이동하기 때문에 살이 많이 올라 맛이 좋다고 한다.

특히 노성참게는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 선생 종가의 내림 손맛으로 '간장게장'의 비법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필자는 노성면 교촌리 명재(明齋) 고택을 찾았다. 고택 한켠 넓은 마당에 장독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장독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다.

이 명재(明齋)고택은 선생이 살아계셨던 1709년에 아들과 제자들이 힘을 합쳐 지은 것이지만 정작 선생은 고택에서 4km 떨어진 유봉에 있는 작은 초가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고택 옆에 초가집이 두 채가 있다. 한 채는 종가가 사용하고 있고, 한 채는 독서실이라고 한다. 종부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노성천에서 나는 참게에 생소고기 다진 것을 먹인 후, 미리 끓여 식힌 교동전독간장에 파, 마늘, 밤 등의 재료를 넣고 양념장을 만들어 게가 잠기도록 부어 만드는 노성게장 즉 간장게장은 논산 파평 윤씨 종가의 내림 음식이다.

KakaoTalk_20231211_085023377_05
명재고택
2~3일 후 간장을 따라 내어 다시 끓여서 붓기를 세 번 반복하면 일 년 내내 깊고 한결같은 맛을 낸다. '노성게장'이 명재(明齋) 종가의 내림 손맛이라는 것을 입증할만한 자료로는 명재(明齋) 선생이 아들에게 '게장을 친척에게 선물로 보내라'고 당부하는 편지에서 엿 볼 수가 있다.

살아 있는 게에게 고기를 먹인 후 게장을 담그는 법은 19세기 초 빙허각(憑虛閣)이씨(李氏)가 저술한 조선시대 생활백서인 『규합총서(閨閤叢書)』와 역시 빙허각(憑虛閣)이씨(李氏)가 쓴 조리서로 사후(死後)인 1915년에 펴낸 『부인필지(婦人必知)』에 보면 살아 있는 게에게 고기를 먹인 후 게장을 담그는 법이 소개되어 있다.

물론 노성의 파평 윤씨 종가의 노성게장은 쇠고기를 먹이지만 『규합총서(閨閤叢書)』는 닭즙을 먹인다는 것이 다르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산 게를 그릇에 담고 닭을 튀하여 생으로 넣어 며칠 두면(삼일 정도) 게가 그 닭즙을 먹고 장이 유난히 많고 맛이 아름다우니 닭이 없으면 두부를 게에 넣어도 먹고 장이 많아지거든 내어 게발 아랫마디를 끊어 실에 매어 높이 달고 그릇을 바쳐 두면 맑은 물이 발끝마다 흘러내릴 것이다. 이것을 익히면 다 장이 된다. 게가 달이 없으면 살이 찌고 달이 밝으면 파리하니라. 잡식성인 게에게 닭고기나 두부 등의 동물성 먹이를 먹인 후 게장을 만들면 그 맛이 아름답다고 표현하였다.'

KakaoTalk_20231211_085023377_02
참게탕
한편 『부인필지(婦人必知)』에는 소고기와 게를 함께 장에 담그는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검은 간장을 항아리에 붓고 소고기 두어 쪽을 넣어 항아리 아래에 흙을 발라 걸고 숯불을 피워 다려 식은 다음 게를 깨끗하게 씻어 넣어 며칠 지난 후 다려 둔 장을 따라서 다시 다려 붓고 천초의 씨를 빼낸 후 조금 넣는데, 꽃망울 상태의 천초는 독성이 있으니, 꽃잎이 벌어진 이후의 것을 넣는다.

게젓에 꿀이 상극이라 하지만 조금 넣어야 맛이 좋아진다. 불빛에 닿으면 쉽게 변질되니 밤에 꺼내고, 그럴 때에도 불을 비추지 않는다.'라고 적었다.

이렇게 살아 있는 게에게 닭고기나 쇠고기를 먹여 살을 찌운 후 장을 담그는 방식은 논산 파평 윤씨 종가에서 소고기를 먹인 후 만든 노성게장의 조리법과 유사하다.

KakaoTalk_20231211_085023377_01
참게탕
풍요롭지 못했던 시절에 사람도 먹기 어려운 소고기를 게에게 먹여 이를 음식의 재료로 사용한다는 것은 보통의 경제적 여유와 정성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노성천까지 게가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1990년 금강 하굿둑이 세워져 이로 인해 게가 노성천까지 올라오지 못하는 연유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기도 했지만 농약을 많이 사용해 생존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노성에 가면 '노성홍가네(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로 563 전화 041-736-5897)'가 유일하게 참게탕을 한다. 혼자 갔지만 취재를 위해 어쩔 수없이 참게탕(45,000원)을 시켰다. 3명이 먹어도 충분한 양이다. 참게탕에 민물게 3마리 민물새우와 수제비가 듬뿍 들어가 국물이 담백하고 구수하며 진하다. 화학조미료가 한 방울도 안 들어가도 민물게와 민물새우 육수의 맛은 가히 위력적이다. 혼자 먹고 남은 참게탕을 포장해 와 집에서 서너 끼는 해결한 것 같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인천 연수구, 지역 대표 얼굴 ‘홍보대사 6인’ 위촉
  2. 시흥시, 별빛 축제 ‘거북섬’ 점등식
  3. "아산으로 힐링 가을여행 오세요"
  4. 행정수도와 거리 먼 '세종경찰' 현주소...산적한 과제 확인
  5. 대전 방공호와 금수탈 현장 일제전쟁유적 첫 보고…"반전평화에 기여할 장소"
  1. 호수돈총동문회, 김종태 호수돈 이사장에게 명예동문 위촉패 수여
  2. [경찰의날] 대전 뇌파분석 1호 수사관 김성욱 경장 "과학수사 발전 밑거름될 것"
  3. 초등생 살해 교사 명재완 무기징역 "비인간적 범죄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4. "일본에서 전쟁 기억은 사람에서 유적으로, 한국은 어떤가요?"
  5. KAIST 대학원생 2명중 1명 "수입 부족 경험" 노동환경 실태조사

헤드라인 뉴스


사실상 큰산 넘은 CTX… 행정수도 완성에 발맞춰야

사실상 큰산 넘은 CTX… 행정수도 완성에 발맞춰야

대전과 세종, 충북을 급행철도로 연결하는 '충청권 광역급행철도(CTX)'가 민자적격성조사 문턱을 넘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비례)이 행정수도 세종 완성을 위한 CTX의 조기 개통 로드맵 마련을 주문했다. 황 의원은 21일 대전 동구 한국철도공사 본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한국철도공사(코레일)·국가철도공단·에스알(SR)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50번에는 행정수도 세종 완성이 있고, 그 주요 내용을 보면 전국 접근성 개선에서 서울에서 1시간 전국 주요 도시에서 2시간 접근 가능한 교..

2025 AAPPAC 대전총회 개막…"지역의 영감이 세계로 확산되다"
2025 AAPPAC 대전총회 개막…"지역의 영감이 세계로 확산되다"

과학과 예술의 도시, 대전시가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에 우뚝 섰다. 21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한 '2025 아시아·태평양 공연예술센터연합회(AAPPAC) 대전총회'가 3일간의 일정에 돌입했다. '지역적 영감에서 세계적 영향으로(From Local Inspirations to Global Influences)'를 주제로 열린 이번 총회에는 세계 20개국 80여 개 공연예술 기관 관계자가 참석해, 지역이 품은 창의성과 상상력이 세계로 확산되는 길을 함께 모색했다. 첫 번째 세션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K-컬처'에서는 한국 문화예술이..

대전 방사능 위협 여전한데…유성구 뭐했나
대전 방사능 위협 여전한데…유성구 뭐했나

대전 유성구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원자력안전 교부세 신설이 수년째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입법이 좌절된 이후 올해 초 또다시 관련법이 제출됐지만,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성 나아가 144만 대전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 사안인데 행정당국의 이슈파이팅 부족으로 현안 관철은 멀기만 해 보인다. 21일 취재에 따르면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대전유성을)이 대표발의 한 이른바 '원자력안전교부세법'(지방교부세법 일부개정안) 7월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현재 위원회 차원에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최고의 와인을 찾아라’ ‘최고의 와인을 찾아라’

  • 제80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제80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 즐거운 대학축제…충남대 백마대동제 개막 즐거운 대학축제…충남대 백마대동제 개막

  •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