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시인이 된 수학자

  • 오피니언
  • 문예공론

[문예공론] 시인이 된 수학자

민순혜/수필가

  • 승인 2024-04-17 14:43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KakaoTalk_20240414_194719982
3월30일 세종시청에서 열린 이길섭 시인의 '무성산' 북콘서트 모습.
이길섭 시인. 그의 첫 시집 <무성산> 북콘서트가 3월 30일 세종시청 4층 『한글사랑책문화센터』에서 열렸다. 객석은 시인의 동인, 동료, 친구, 제자, 가족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붐볐다. 북콘서트가 진행되는 순간도 사뭇 웅장하고 엄숙하고 특별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시인은 수학박사 한남대학교 수학과 교수로 평생을 봉직해서일 것이다.

시인은 7남매의 맏아들로 1956년 공주시 사곡면 한시랑이에서 태어났다. 숲이 울창한 무성산(614m) 아래 아름다운 전원(田園)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때 대전으로 전학을 오게 된다. (1968년) 숙부님 댁에서 거주를 하면서 학교에 다녔는데 그건 부친의 높은 교육열 때문이었다.



'시인'과 '수학박사'는 얼핏 생각해도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시집 <무성산>을 읽다 보면 선뜻 이해된다.

'미분방정식 연습시간'//"다음 차례 학생들/교단 위로 나오세요."//칠판에 분필로/5명이 동시에 문제를 푼다./양철지붕 위로 쏟아지는/소나기 소리//p77



이는 5명의 학생이 문제를 한꺼번에 푸는 과정에서 들려오는 백묵이 칠판에 닿는 소리를 '양철지붕 위로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로 표현했다, 고 들은 적이 있다. 이 또한 시인에게 잠재되어 있는 풍부한 감수성이 서정적인 시심으로 표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독서를 좋아해서 틈만 나면 셰익스피어, 칸트, 헤겔 등 읽었고, 대전고등학교 문예반 <한모문학동인회>에서 시를 공부했다고 하니까 말이다.

매년 동인지가 발간되면, 동인지 이름을 딴 『석란제』라는 문학의 밤이 열렸다. 그러면 지도교사 국어 선생님이셨던 조남익 선생님은 졸업한 선배 문인들은 물론, 박용래, 한성기, 임강빈 등 지역에서 활동하던 훌륭한 시인들을 함께 초청했다. 그리고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조남익 선생님 추천으로 박용래 시인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시인을 처음 만나러 갔던 이야기는 오랜 동안 듣는 이들 마음속에 따스함으로 남아있을 정도로 정겹고 뜻깊다. 박용래 시인과는 그렇게 인연이 되어 얼마간 시를 짓고 합평 받았다.

그런데 시인에게는 아픈 상처가 있다. 엄마 뱃속에서 9개월 만에 조숙아로 태어난 것이다. 그로 인해 시력이 0.3으로 많이 낮았다. 대학 진학에도 큰 걸림돌이 된 것은 당연했다. 의대는 생각할 수도 없었고, 고민 중에 부친께서 눈도 나쁘고 하니 약대를 지원해서 약국을 하면 어떻겠냐고 권해주셨다. 그래서 충북대학교 약대를 지원 했지만 통과하지 못했다. 시험을 잘 보았는데 왜 떨어졌는지 처음에는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시력이 현저히 나빠서인 것 같았다고 허탈하게 웃었다.

2차 지원은 대전 한남대학교 수학과를 선택했다. 대학교 때는 오직 전공과목에 매진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충남대학교 철학과 교수님 권유로 독일 유학을 준비할 때였다. 인생은 새옹지마라더니, 그는 서울에 있는 <독일문화원>으로 독일어를 배우러 다니던 중 청천벽력 같은 암초를 만났다. 9개월 미숙아 후유증으로 오른쪽 눈 시력이 나빴던 시인은 그동안 차츰 눈이 더 나빠져서 마침내 오른쪽 눈이 실명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꿋꿋이 나아갔다. 독일 유학도 포기하고 온 힘을 다해 공부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정말 천재는 우연히는 없는 것 같다. 한쪽 눈만으로 그는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하면서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교수님의 권유로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은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전액 장학금은 물론이고 그 당시 1년에 50만 원을 부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고대 박사과정 입학과 동시에 본교인 한남대학교 수학과 전임교수로 발령을 받고 교단에 섰다.

한남대 수학과 교수로 40년 가까이 봉직한 이길섭 교수. 그는 정년퇴직과 함께 문득 잊고 있던 시인의 삶이 떠올랐다. 대전고교 학창 시절 시인에의 열정을 다시금 불러온 것이다. 그는 시인 이길섭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 길을 열어준 건 동인지 《세종시마루》였다.

《세종시마루》는 2021년 하반기 7호를 통해 수학박사 이길섭 교수를 시인으로 변신시켰다. 그는 '미분방정식 연습시간' 외 6편의 시를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온화하고 서정적인 언어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시인 김백겸·이은봉, 평론가 김영호가 맡았던 심사는 "산업화 이전 가난하지만 자연친화적이고 인정 넘치던 농촌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을 맑고 고운 서정으로 그려냈다"고 평했다. (심사평 인용)

그는 "평생 수학과 함께 살았고 늦게 돌아온 일이지만 최선을 다해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이제, 시작이다. 늦게 시작한 시인의 길이지만, 가슴 안에 뿜고 있는 뜨거운 열정으로 시세계를 달궈줄 것을 기대해 본다.

민순혜/수필가

민순혜 수필가
민순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6명이 벗고 달린 새해 첫 날! 2026선양 맨몸마라톤
  2. [세상보기]가슴 수술 후 수술 부위 통증이 지속된다면
  3. 충남교육청, 2026 충남 온돌봄 운영 길라잡이 발간
  4. 대전 동구, 겨울철 가족 나들이 명소 '어린이 눈썰매장' 개장
  5. 충남도, 지속가능한 20년 미래 청사진 확정
  1. [날씨]주말에 평년기온 회복…3일 낮최고 2~6도안팎
  2. 코레일, 동해선 KTX-이음 개통 첫 날 이용객 2000명 넘어
  3. [독자칼럼]대전·충남 통합, 중부권 미래를 다시 설계할 시간
  4. 이장우 대전시장 "불퇴전진으로 대한민국 신 중심도시 충청 완성하겠다"
  5. 충청 출신 與野대표 지방선거 운명의 맞대결

헤드라인 뉴스


아동인구 감소 현실의 벽… 세종 국공립 어린이집 취소 `파장`

아동인구 감소 현실의 벽… 세종 국공립 어린이집 취소 '파장'

아동 인구 감소로 보육시설 운영난 가중과 폐업이 속출하는 가운데, 세종시 국공립 어린이집 개원이 취소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이 어린이집은 정원 수용률이 지역 최하위 수준인 산울동 복합커뮤니티센터 내 2027년 개원 예정이었으나, 시가 지난 6월 주민 의견 수렴 과정 없이 개원 최소 결정을 내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종시는 "인근 지역 보육수요까지 감안한 결정"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산울동 주민들은 "현실을 외면한 행정"이라며 원안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시는 이달 보육정책위원회에 안건을 재상정..

[현장] 응급실 시계에 새해는 없다네… 중증환자 골든타임만 있을뿐
[현장] 응급실 시계에 새해는 없다네… 중증환자 골든타임만 있을뿐

"응급실 시계에 새해가 어디 있겠습니까. 중증환자 골든타임만 있을 뿐이죠." 묵은해를 넘기고 새해맞이의 경계에선 2025년 12월 31일 오후 11시 대전권역 응급의료센터가 운영되는 충남대병원 응급실. 8살 아이의 기도에 호흡 유지를 위한 삽관 처치가 분주하게 이뤄졌다. 몸을 바르르 떠는 경련이 멈추지 않아 산소포화도가 떨어진 상태에서 호흡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처치에 분주히 움직이는 류현식 응급의학 전문의가 커튼 너머 보이고 소아전담 전문의가 아이의 상태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여러 간호사가 협력해 필요한..

"할아버지는 무죄에요" 대전 골령골에 울린 외침…학암 이관술 고유제 열려
"할아버지는 무죄에요" 대전 골령골에 울린 외침…학암 이관술 고유제 열려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가 6·25전쟁 발발 직후 불법적인 처형으로 목숨을 잃은 학암 이관술(1902-1950) 선생이 1946년 선고받은 무기징역형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의 외손녀 손옥희(65)씨와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는 2025년 12월 31일 골령골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터에서 고유제를 열고 선고문을 읊은 뒤 고인의 혼과 넋을 달랬다. 이날 고유제에서 외손녀 손옥희 씨는 "과거의 역사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역사를 근간으로 하는 단체와 개개인의 노력 덕분에 사건 발생 79년 만에 '이관술은 무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새해 몸만들기 관심 급증 새해 몸만들기 관심 급증

  • 병오년 이색 도전…선양 맨몸마라톤 이색 참가자 병오년 이색 도전…선양 맨몸마라톤 이색 참가자

  • 맨몸으로 2026년 첫 날을 힘차게 ‘출발’ 맨몸으로 2026년 첫 날을 힘차게 ‘출발’

  • ‘붉은 말의 기운 받아 2026년도 힘차게 나아갑시다’ ‘붉은 말의 기운 받아 2026년도 힘차게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