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KBS '연금개혁 공론화 500인 회의'의 시민상(市民像)과 정치적 의미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KBS '연금개혁 공론화 500인 회의'의 시민상(市民像)과 정치적 의미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 승인 2024-05-23 17:07
  • 신문게재 2024-05-24 19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얼마 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 산하 공론위원회가 주관하는 '연금개혁 공론화 500인 회의'가 KBS 제1TV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국민연금 문제는 현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지면서 국가재정과 직결되는 난제다.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문제인 만큼 비전문가인 일반시민 500명의 최종 정책 판단에 초점을 맞춘 토론회가 실시간 반영된 것은 다소 뜻밖이다. '연금개혁 공론화 500인 회의'의 정치적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선호'(選好)에 관한 좀 더 깊은 이해가 요구된다.

선호란 '여럿 가운데서 특별히 가려서 좋아함'을 뜻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민의 선호 표출과 충족을 위한 대표적인 제도가 시장과 대의민주제다. 시장경제는 가격을 매개로 거래와 교환을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선호를 드러내는 행위에 기초한다. 대의민주제의 투표는 경쟁하는 후보 중에서 자신의 가치 또는 이익을 대변해줄 최적의 후보에 대한 선호 표시를 의미한다. 시장경제와 대의민주제의 공통점은 가격지불과 투표 행위에서 나타나는 시민 선호를 주어진 고정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해당 선호의 형성과정을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 논리를 상징하는 '소비자주권'은 소비자 선호의 형성과정은 불문에 부치고 표현되는 그대로 존중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대의민주제도 유권자 선호를 주어진 것으로 취급하면서 표의 단순 합산을 통해 국민 선호의 개요(槪要)를 파악한다. 두 제도 모두 시민이 새로운 정보, 주장, 관점의 노출만으로 쉽게 변할 수 있는 선호를 가진다는 점을 간과한다.

'연금개혁 공론화 500인 회의'는 전형적인 '숙의(deliberative)민주주의' 형식을 따른다. 숙의민주주의는 시민의 선호를 고정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시민 선호의 단순 합산이 공공성(公共性)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대신 보통 시민도 대화와 토론과 학습을 통해 '깨달음을 통한 선호' 또는 '정제(精製)된 선호'가 형성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숙의민주주의는 시민참여 과정에서 정보와 주장의 교환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선호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조정하면서 최종적인 판단에 도달하는 통합의 과정을 강조한다. 공론화 회의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사적 논리가 아니라 '공적인 이성(public reason)'에 근거한 합리적 주장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예를 들면, 낙태 문제의 경우 '태아의 생명 존중'과 '여성의 행복 추구' 같은 공적 이유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때 단순 다수결에 따른 의사결정은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해당 집단의 공적 논거를 통째로 거부한다. 숙의민주주의는 낙태 찬반의 공적 논거에 관한 충분한 토론과 교감의 기회가 좀 더 정제된 선호 형성의 가능성을 높이면서 그만큼 절충된 합의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을 부각한다.

숙의민주제는 '전문가는 똑똑하고 국민은 어리석다'라는 전제를 거부하고 보통 시민의 가치 및 정책 판단 역량에 대한 신뢰로부터 출발한다. 오히려 전문가 중심의 정치와 행정의 지나친 의존이 일반 시민의 의사소통과 판단 역량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감의 상실을 가져왔다는 반성에 기초한다. 공론화 회의의 시민은 타인의 관점을 존중하고 반응하면서 공공선을 위해 공동체에 관여하는 '적극적 시민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공론화 회의는 치열한 경쟁의 '월스트리트 게임'이 아니라 상호 소통과 의존성에 입각한 '공동체 게임'에 초대된 시민들이 얼마나 멋진 경기를 펼칠 수 있는가를 확인시켜준다.



정책 결정이나 공공갈등 해결을 위한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일반 시민의 토론과 학습을 통한 정제된 판단을 확인하고 반영하는 숙의민주제의 적용사례가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대전시 보문산 개발을 포함해 다양한 공공갈등을 두고 시장(市長)의 독단적 판단이 아니라 공론화 회의 같은 숙의민주제를 통해 시민의 판단을 묻고 반영하는 것이 대전시의 민주적 시정 역량을 강화하는 중요한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대전 서부경찰서 멈춤봉투 눈길
  2.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3. 대전·충북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총량 축소? 환자들 어디로
  4. 충남도, 국비 12조 확보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힘 모은다
  5. 경영책임자 실형 선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상소…"형식적 위험요인 평가 등 주의해야"
  1. 충남도의회, 학교 체육시설 개방 기반 마련… 활성화 '청신호'
  2.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3. 대전동부교육지원청, 학교생활기록부 업무 담당자 연수
  4.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5. 충남권 역대급 더운 여름…대전·서산 가장 이른 열대야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전국 4년제 대학 중도탈락자 수가 역대 최대인 10만 명에 달했던 지난해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청권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권에선 목원대와 배재대, 대전대 등 4년제 사립대학생 이탈률이 가장 높아 지역 대학 경쟁력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종로학원이 발표한 교육부 '대학알리미'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국 4년제 대학 223곳(일반대, 교대, 산업대 기준, 폐교는 제외)의 중도탈락자 수는 10만 817명이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데, 전년인 2023년(10..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출시 3개월여 만에 80만 개가 팔린 꿈돌이 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꿈돌이 컵라면'이 5일 출시된다. 4일 대전시에 따르면 '꿈돌이 컵라면'은 매콤한 스프로 반응이 좋았던 쇠고기맛으로 우선 출시되며 가격은 개당 1900원이다. 제품은 대전역 3층 '꿈돌이와 대전여행', 꿈돌이하우스, 트래블라운지, 신세계백화점 대전홍보관, GS25 등 주요 판매처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 기념 이벤트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내 꿈돌이하우스 2호점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신제품 시식 ▲꿈돌이 포토존 ▲이벤트 참여..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충남 서산의 한 중학교에서 남성 교사 A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일부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올해 학기 초부터 해당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복된 부적절한 언행과 과도한 신체접촉을 주장하며, 학교에 즉각적인 교사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학교 측은 사건이 접수 된 후, A씨를 학생들과 분리 조치하고, 자체 조사 및 3일 이사회를 개최해 직위해제하고 학생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이어 학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누리집에 게시했다. 학교 측은 "서산교육지원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