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백호 윤휴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 칼럼] 백호 윤휴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 승인 2024-06-19 17:04
  • 신문게재 2024-06-20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2024042401001890500074491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지난 5월 20일 남원윤씨 묘역의 백호 윤휴 묘소 (대전광역시 중구 사정동 201-4) 앞에서는 약 50여 명의 산성동 마을주민들과 관계 인사들이 모여 그를 기리는 추모제를 가졌다. 이곳 묘역에서 삼 년째 거행되는 추모제는 남원윤씨 삼휴당파 종친회의 후원과 산성동 마을주민들의 십시일반으로 이 행사가 진행된다. 백호는 조선 후기 산림학자이자 실천적인 경세가며 개혁적인 사상가였다. 부친인 윤효전의 부임지인 경주에서 태어났지만, 청년 시절 선영이 있는 공주 유천 황간동(지금의 대전광역시 서구 변동 수정재 인근)에 이주하여 7년간 모친을 모시고 살며, 호서 사림과도 활발히 교류하며 학문에 정진했다.

윤휴의 본관은 남원(南原)이며 호는 백호·하헌이다. 두 돌 못 미쳐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돌아와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이괄의 난 때에는 여주의 옛집으로, 두 차례의 호란 때에는 보은 삼산의 외가로 가서 피란하였다. 난이 끝난 뒤에는 선영이 있는 공주 유천으로 들어가 학문에 전념하기도 했다. 윤휴의 학문은 19세 때에 10년 연장자로 당대의 석학이던 송시열과 속리산 복천사에서 만나, 3일간의 토론 끝에 송시열이 "30년간의 나의 독서가 참으로 가소롭다"고 자탄할 정도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권준 등 남인계 인사들과 교분이 특별했고, 서인측 인사들과도 43세 무렵의 기해예송 이전까지는 친교가 잦았다. 유천 시절부터 송시열·송준길·이유태·유계·윤문거·윤선거 등 서인 계열의 명유들과 교분을 나누었으며, 민정중·민유중 형제는 특히 여주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겪으며 시국상황이 어수선해지며 당쟁의 혼돈은 극에 달하였다. 백호는 64세에 경신환국으로 사사됐다. 조선 후기 역사에서는 사라진 인물이 되었으나 여러 차례 추탈과 복직이 반복된 이후1907년 에 복권됐다.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은 무엇이 있는가" 1680년(숙종 6년) 5월20일, 귀양 가던 중 서대문 밖 민가에서 사약을 받기 직전, 백호 윤휴가 했다는 마지막 말이다. 그의 죄는 중화 사대주의 사상에 맞서 독보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하고, 부국강병을 내세운 점이었다. 윤휴의 이름을 말하는 건 최근까지도 꺼려져 왔다. 윤휴를 입에 올린다는 건 윤휴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의미였고 불온한 것으로 여겨졌다. 윤휴는 주자의 설을 비판하진 않았다. 그런데 장과 절의 구분을 달리했다는 이유만으로 서인들로부터 사문난적으로 몰렸다. 주자를 절대적 이데올로기로 삼아 신분 질서를 강화하고 사대부의 특권을 굳히려 한서인에게 윤휴는 마땅히 제거 대상이었다. 윤휴는 청나라를 치는 북벌이 실제 가능하다고 보고 57세가 돼 조정에 나갔다. 평민들을 위한 무과인 만인과를 실시하고 전차를 제작하는 등실제적인 북벌을 추진하려 했다. 양반사대부들도 군역을 함께 감당하는 호포법을 주장하고, 남녀 구별을 넘어 여성에게도 학문을 가르쳐야 한다 는등 윤휴는 시대를 앞서간 개혁가였다.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 나와 다른 너는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대, 그리고 실제 그렇게 죽여왔던 시대, 그런 증오의 시대의 유산은 이제 청산할 때가 됐다" 대전에서 열리는 두 번째 추모제부터는 당대에 정치적으로 맞섰던 우암을 모시는 남간사유회의 도유사가 직접 추모제에 참석하여 인사말을 하고 묘소에 참배하며 그간의 불화와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는 계기가 되는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백호 윤휴의 선대는 대전을 항시 마음의 고향으로 생각해 왔다. 그리하여 1970년 5월 윤휴는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인 이곳 대전 보문산 선영에 다시 잠들게 된 것이다. 윤휴는 조선시대 양반의 특권을 내려놓고 백성과 아픔을 함께한 시대를 앞서간 진정한 개혁가이며 선구자였다. 산성동 마을 백호 묘역의 이 추모제를 통하여 요즘시대정신과 같은 '개혁과 평등 정신'을 사람들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서울대 10개 만들기 동행 모델' 띄운다… 한밭대 등 국공립대 연대 STU 제안
  2. 짙은 안개에 미세먼지까지… 충청 출근길 사고 잇따라
  3. 대전 학교급식종사자들 "교육청 임금체불" 노동청에 진정 신청
  4. [썰] 권선택의 민주당 대전시장 '판' 흔들기?
  5. 세종 파크골프 저력… 신현주 선수, 中 챔피언십 왕중왕전 우승
  1. [대전에서 하룻 밤 더] 관광 소비액 5조원 목전 둔 대전
  2. ‘그날의 함성 다시 한 번’…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
  3. 대전 대덕구, 덕암야구장 반려동물 놀이터 개장
  4. ‘반려견과 함께’
  5. [춘하추동]다문화 사회와 문화 정체성

헤드라인 뉴스


이 대통령 "추가 정부부처 분산 없다"… 세종 행정수도 의지 확고

이 대통령 "추가 정부부처 분산 없다"… 세종 행정수도 의지 확고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추가 정부 부처 분산은 없다”고 못 박았다.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0회 국무회의에서 ‘균형성장을 위한 지방 우대방안’과 관련한 토의에서다. 토의 중 해양수산부 장관 직무대행이 ‘부산 이전 성과’를 언급하자, 이 대통령은 "부산으로 옮겨서 실제로는 예측했던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며 "그래서 농식품부를 광주로 보내달라고 그러고, 강원도는 관광 도시니까 문체부를 강원도로 보내달라고 이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수부가 유일한 예외'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그래서 다시 한번 명확하게..

[대전에서 하룻 밤 더] 공유숙박, 체류형 관광모델 활성화 필요
[대전에서 하룻 밤 더] 공유숙박, 체류형 관광모델 활성화 필요

대전은 최근 타지에서 유입되는 방문객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2025년 기준 9000만 명이 넘는 외지인이 지역을 찾았다. 주요 백화점을 찾는 소비자부터 '빵의 도시'란 이름에 걸맞게 성심당을 비롯한 여러 제과점을 탐방하는 이른바 '빵 관광'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쇼핑과 식·음료 업종에 소비가 집중되다 보니 방문객을 지역에 머물게 할 핵심적인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부 방문객이 대전에서 지갑을 열고, 소비하게 되면 그만큼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에 중도일보는 대전 방문..

공공기관 2차 이전 `빨간불` … 지역 발전 고려 최우선해야
공공기관 2차 이전 '빨간불' … 지역 발전 고려 최우선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공공기관 이전과 관련해 이른바 '집중 전략'을 언급하면서 대전과 충남의 공공기관 2차 이전 대응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치권 안팎에선 '집중 전략'은 사실상 행정통합 지역과 기존 혁신도시에 공공기관을 집중 배치하겠다는 의중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사실상 행정통합 무산과 1차 공공기관 이전 수혜를 받지 못한 대전시와 충남도 입장에선 발등의 불이 떨어진 셈인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13일 충북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공공기관 이전을 포함한 국토 재배치와 균형발전 문제는 국가 생존이 걸린 문제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내외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내외

  • ‘반려견과 함께’ ‘반려견과 함께’

  • ‘그날의 함성 다시 한 번’…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 ‘그날의 함성 다시 한 번’…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

  • ‘봄이 왔어요’ ‘봄이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