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아프지 말자, 추석이다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아프지 말자, 추석이다

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 승인 2024-09-12 16:13
  • 신문게재 2024-09-13 19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동정사진
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쓴 일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선조 무덤에서 제사를 지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산소에 올랐다." 차례와 성묘의 이중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산소에서 차례를 지낸 추석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친가, 외가, 처가의 순서 구분도 없었다. 비슷한 시기의 문신 계암 김령(1577~1641)은 자신의 일기에서 "먼저 외가의 추석 차례를 지낸 후 사당에서 차례를 지냈다"고 적었다. 이런 기록도 있다. "홍역이 아주 가까운 곳까지 퍼졌다. 역병 때문에 차례를 중단했다." 환란(患亂)이 닥치면 아예 차례를 생략하기도 했다.

차례상도 유교의 전통은 검소와 실리를 미덕으로 여겼다. 2023년 1월 성균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차례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 전을 부치느라 고생하는 일은 인제 그만두셔도 된다"고 밝혔다. 성균관은 2022년 추석을 앞두고 시대 변화를 반영한 간소화 차례상 표준안을 권고한 바 있다. 여기에는 떡국, 나물, 구이, 김치, 술과 과일 4종 등 총 9가지 음식만 이름을 올렸다. 차례상 차림의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 등의 용어는 예법을 다룬 문헌에 없다고 강조했다. 대신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제사는 검소하게 지내라"는 글을 여러 차례 남겼다고 한다.

이와 무관하게 추석 풍경은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화려한 차례상에 힘을 쏟는 대신 간단한 예를 갖추고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떠난다. 연휴 기간을 이용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갈수록 늘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 바캉스를 떠난다는 의미의 '추캉스'라는 단어가 이제 낯설지 않다. 이렇게 풍경은 달라졌어도 추석 명절을 맞는 마음만은 그대로다. 막히는 길을 마다하지 않고 고향으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은 오랜만에 가족, 친지를 만난다는 설렘이다. 둥근 보름달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롭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추석을 앞두고 지난 11일 직원들과 함께 송강전통시장을 찾았다. 제수용품과 생필품 등을 구입하고 상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장보기 행사와 연계해 물가안정 캠페인도 전개해 시장 상인과 주민들의 자발적인 물가안정 동참을 유도했다. 전날에는 간부들과 함께 관내 저소득 가구와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위문품을 전달하고 명절 인사를 나눴다. 우리 구는 1억 1,7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기초생활수급자 5,334가구에 온누리상품권을, 사회복지시설 10곳에는 소고기를 전달했다. 잠시나마 얼굴에 웃음꽃 피고, 넉넉한 명절 보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안전하고 쾌적한 명절맞이에도 팔을 걷었다. 추석 명절맞이 종합대책을 마련해 8개 분야에 걸쳐 40개 시책을 펼친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명절 분위기 조성, 가계 부담 최소화를 위한 안정적인 물가 관리, 쾌적한 환경과 안전을 위한 민원의 신속한 처리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 연휴 5일 동안 종합상황실을 비롯해 물가, 청소, 위생, 재난, 교통 등 분야별 상황실도 운영한다. 특히 의정 갈등 장기화에 따른 의료대란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만큼 의료·위생 대책에 행정력을 집중한다. 추석 당일 유성구보건소 비상 진료를 비롯해 연휴 기간 문 여는 의료기관과 약국을 지정하고 안내할 방침이다.

차례상의 '간소화'가 아니라 '원형 복원'이 적확한 용어라고 한다. 원래 간소했기 때문이다. 환경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명절을 보냈던 선조들의 지혜를 배웠으면 좋겠다. 차례상 맨 상단은 따뜻한 마음과 정성이 놓일 자리라는 점을 잊지 말자. 덕담도 빠질 수 없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명절이 되길 소망한다. 아프지 말자. 추석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대전 서부경찰서 멈춤봉투 눈길
  2.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3. 대전·충북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총량 축소? 환자들 어디로
  4. 충남도, 국비 12조 확보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힘 모은다
  5. 경영책임자 실형 선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상소…"형식적 위험요인 평가 등 주의해야"
  1. 충남도의회, 학교 체육시설 개방 기반 마련… 활성화 '청신호'
  2.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3. 대전동부교육지원청, 학교생활기록부 업무 담당자 연수
  4.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5. 충남권 역대급 더운 여름…대전·서산 가장 이른 열대야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전국 4년제 대학 중도탈락자 수가 역대 최대인 10만 명에 달했던 지난해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청권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권에선 목원대와 배재대, 대전대 등 4년제 사립대학생 이탈률이 가장 높아 지역 대학 경쟁력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종로학원이 발표한 교육부 '대학알리미'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국 4년제 대학 223곳(일반대, 교대, 산업대 기준, 폐교는 제외)의 중도탈락자 수는 10만 817명이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데, 전년인 2023년(10..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출시 3개월여 만에 80만 개가 팔린 꿈돌이 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꿈돌이 컵라면'이 5일 출시된다. 4일 대전시에 따르면 '꿈돌이 컵라면'은 매콤한 스프로 반응이 좋았던 쇠고기맛으로 우선 출시되며 가격은 개당 1900원이다. 제품은 대전역 3층 '꿈돌이와 대전여행', 꿈돌이하우스, 트래블라운지, 신세계백화점 대전홍보관, GS25 등 주요 판매처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 기념 이벤트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내 꿈돌이하우스 2호점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신제품 시식 ▲꿈돌이 포토존 ▲이벤트 참여..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충남 서산의 한 중학교에서 남성 교사 A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일부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올해 학기 초부터 해당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복된 부적절한 언행과 과도한 신체접촉을 주장하며, 학교에 즉각적인 교사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학교 측은 사건이 접수 된 후, A씨를 학생들과 분리 조치하고, 자체 조사 및 3일 이사회를 개최해 직위해제하고 학생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이어 학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누리집에 게시했다. 학교 측은 "서산교육지원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