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라는 말의 시대구분이 어렵다. 국가와 문화권, 학자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한국사에서는 국제 문호가 개방되는 고종 때로부터 해방 이전까지가 근대, 그 이후를 현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화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정신문화는 큰 변화가 없지 않나 하는 느낌이다. 아름다운 문화 가운데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이상이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퇴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공자의 중심사상은 인(仁)이었다. 하지만, 중국철학사에 의하면 인의 개념이 지속적으로 바뀐다. 공부가 일천하긴 하나, 공자가 '인이 무엇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위적으로 종합해보면, 인간의 본래 모습이 인이라 한다. 인간 행동의 실천 원리로 보았다. 인의 핵심은 사랑이다. 자신은 물론, 남을 나처럼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인간 본래 모습의 회복, 곧 사랑으로 사회질서를 확립하려 하였다. 물론 쉬운 것은 아니다. 공자 역시, 제자 누구도, 스스로도 인하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이 모든 선의 시작이요, 백행의 근원이라 여겼다. 사랑이 부모에 이르면 효(孝)가 되고, 형제에 미치면 우애(友), 어른에 이르면 공경(悌), 나라에 다다르면 충(忠)이 된다. 자녀에 이르면 자애(慈), 남의 자녀에 이르면 관대(寬), 만인에 이르면 은혜(惠)가 된다. 그리하여 후대 성리학의 원조 한유(韓愈)는 인을 박애(博愛)라 하였다.
실천 방안의 하나로 <대학> 10장에 '혈구지도'라는 것이 나온다. "위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 것이며, 아래서 싫어하는 바로써 위를 섬기지 말 것이며, 앞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뒤에 먼저 하지 말 것이며, 뒤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앞에 따라가지 말 것이며, 오른편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왼편에 건네지 말 것이다."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자기(욕심)를 버리고 예로 돌아가는 것(克己復禮)이나 자기가 하고자 아니하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말과 상통한다. 바라는 마음으로 먼저 베풀라는 것이기도 하다.
인의 구체적 실천 방안이 의(義)라 강조한 맹자는 인에 의를 덧붙여 인의(仁義)라 하기도 하였다. 조화로운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윤리가 모두 의다. 그로써 사회 질서가 유지된다. 의는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바르게 행동토록 인도한다. 따라서 공명정대하고 정의롭다. 개인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또한 의가 전제된다. 불의를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이 없거나 미워하지 않는 것은 의롭지 않은 까닭이다. 의가 의리로 이해되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나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다.
"내가 할 땐 정(正)과 의리지만 남이 볼 땐 부정과 비리일 수 있습니다." 예전 공익광고의 한 문구이다. 혼동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나아가 오인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우리 정치인이 그렇다. 불합리한 것에 의 또는 의리가 강조된다. 불공정, 부정, 부패, 분열, 혈연, 학연, 지연, 세대차, 유유상종, 사리사욕, 이런 것을 조건 없이 감싸거나 지키는 것이 의라 생각한다. 거기엔 사랑도 없다. 신념, 약간의 양심도 없다.
공복이 지켜야 할 도리는 국가 민족, 나아가 인류사회 전체에 대한 것이지, 개인이나 소수가 대상일 수 없다. 다수가 대상인 경우는 많은 이에게 혜택이 돌아가지만, 후자의 경우는 지극히 소수에게만 이익이 따르고 나머지 모두에게 피해가 간다. 더구나 선악 구분이 왜곡되거나 지켜야 할 의로 오인되면 공멸에 이르게 된다. 바르고 정의로움도 없다. 조선에 있었던, 조광조(趙光祖)의 도학정신(道學精神), 사육신의 절의 정신(節義精神), 임진왜란 당시에 항거한 조헌(趙憲) 등의 의병운동(義兵運動), 구국정신(救國精神) 등 참다운 의의 실천이 보고 싶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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