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 걸음이 바꾸는 세상, 사이배슬론에서 다시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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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 걸음이 바꾸는 세상, 사이배슬론에서 다시 걷다

KAIST 웨어러블로봇 연구실 김승환 위촉연구원

  • 승인 2025-02-03 10:14
  • 수정 2025-02-03 18:05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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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 연구원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며 우리의 삶 곳곳을 바꾸고 있다. 로봇이 안내하고, 공장에서 걸어 다니며 조립을 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로봇을 직접 입고 걷는 시대'는 얼마나 가까이 와 있을까?

나에게 걷는다는 건 단순히 이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017년,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고, 휠체어를 사용하며 '걸음'이라는 평범한 행위가 얼마나 큰 자유였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 무렵, 사이배슬론(Cybathlon)이라는 국제 대회를 알게 됐다. 흔히 '사이보그 올림픽'이라 불리는 이 대회는, 신체 일부가 불편한 다양한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이 로봇 같은 공학 보조기기를 통해 일상생활을 묘사한 여러 미션을 수행하며 경쟁하는 대회다.

당시 재활병원 의사가 2020년 사이배슬론에 나갈 선수를 찾는다고 알려줘 단숨에 지원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건강문제로 포기해야 했지만, 언젠가 또 로봇을 입고 걸어보고 싶다는 열망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운명처럼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KAIST 기계공학과에서 웨어러블 로봇을 함께 만들 장애인 연구원을 채용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채용이 확정되면서 착용형 로봇 연구실, EXO LAB에 합류해 사이배슬론 무대를 향하는 긴 여정이 시작됐다.

연구실에 들어가 보니, 웨어러블 로봇은 생각보다 더 복합적이었다. 단순히 다리 형태의 기계를 만들 뿐 아니라, 센서, 제어알고리즘,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착용부 설계 같은 다양한 기술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했다. 특히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의 경우, 작은 상처도 쉽게 욕창으로 이어질 수 있어 '사람의 몸'과 기계가 맞닿아 함께 움직이는 로봇을 만드는 과정에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그렇게 워크온 슈트 F1(WalkOn Suit F1)이 탄생했다. 이전 대회에서 우승한 워크온 슈트4와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한 새로운 형태의 웨어러블 로봇으로 사용자가 스스로 휠체어에서 로봇을 착용할 수 있게 했다. 로봇이 사용자에게 직접 다가와 착용을 돕는 개념을 더해, 누구의 도움 없이도 쉽게 입고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물론 완성까지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예상치 못한 고장은 다반사였고, 로봇을 입고 걷다 넘어지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모두 함께 한 걸음씩 쌓아가며 점차 더 안전하게 걸어나갔고, 점차 목표에 가까워졌다. 장애인 사용자이자 연구원으로 로봇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일은 내 몸이 곧 테스트베드가 됨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기술과 사람을 적극적으로 이어주는 가교가 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처음 안전장치를 떼고 로봇으로 몇 걸음을 옮겼을 때, "스스로 서고 걷는 일이 얼마나 큰 자유와 희망을 주는지"를 다시금 느꼈다.

마침내 워크온 슈트 F1이 사이배슬론 무대에 오를 날이 찾아왔다.

엔젤로보틱스 대전연구소(연구개발 및 실증에 특화된 선행연구소)에 마련된 엑소스켈레톤 레이스 경기장에서 스위스의 현지와 실시간 중계 형식으로 경기가 진행됐다. 엑소스켈레톤 레이스(웨어러블 로봇)부문에서 우리는 6분 41초로 완수하며 경쟁 팀들과 큰 차이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착용하는 모습'을 보이며 '기술 혁신과 사용자 친화성이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아 Jury Award(특별상)까지 수상하게 됐다. 모두가 함께 쌓아 올린 우승이었다.

그렇게 사이배슬론 대회를 넘어, 더 많은 사람이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걸을 수 있는 미래가 손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기존 휠체어나 보행보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고, 워크온 슈트의 요소 기술들은 다른 형태의 웨어러블 로봇으로도 폭넓게 적용될 수 있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될 여지를 시사했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많다. 사회적 인프라나 정책·제도적 지원 같은 현실적 장벽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과제를 고민하고 도전하는 과정 자체가 웨어러블 로봇 기술을 한걸음씩 발전시키리라 믿는다. 그렇게 확장해 가다 보면 특정 환경에서만 쓰이던 보조기기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삶을 바꿀 일상 속 기술로 자리매김할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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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제3회 국제 사이배슬론 대회에서 카이스트 팀 김승환 연구원이 미션 수행 후 환호하고 있다.
"다시 걸을 수 있을까?"에서 시작된 나의 물음은, 이제 "로봇이 우리 삶에 어떤 새길을 열어줄까?"라는 더 큰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한 걸음이 바꿀 수 있는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간절히 바라왔던 꿈이 과학도시 대전에서 현실화되고 있듯, 앞으로도 웨어러블 로봇은 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로봇을 입고 내딛게 될 또 다른 걸음을 함께 상상해 보길 바란다.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웨어러블로봇 연구실 김승환 위촉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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