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말의 무게와 토사구팽(兎死狗烹)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말의 무게와 토사구팽(兎死狗烹)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5-03-1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인식 과정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의미다. 주관적 가치 기준에 의해 세상을 평가한다. 그것이 모여 보편화되면 믿음이 되고, 본질 파악이 아예 어렵게 된다. 이로 인한 심각한 폐해가 현재 우리사회에 충만하게 드러나고 있다.

본질에 이르러야 하는데, 어느 것이 진실이고 본질인지 분간이 어려운 지경이다. 거기에 멈추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화나 이해로 간극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커녕, 극단적으로 더 강고하게 부추기는 부류가 있다. 거짓과 선전선동이다. 그런 부류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거짓말쟁이의 대명사로 익히 아는 이야기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 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법하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양치기 소년이 심심풀이로 마을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늑대가 양을 물어간다', '양을 늑대가 잡아먹는다.' 두 세 번은 마을 사람이 놀라 재빨리 달려 나왔으나, 곧 속은 것을 알게 된다. 바보가 된 기분은 참담하다. 화를 내거나 투덜거리며 돌아갔다. 어느 날 정말로 늑대가 나타나, 양을 잡아먹거나 물어갔다. 소년이 진짜라며 도와 달라 호소했으나, 이제야 말로 속지 않겠다며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다. 소년은 결국 모든 양떼를 잃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많이 떠오른다. 하나만 더 새겨 보자. 중국의 경국지색 중 한 명인 포사(褒?)는 도통 웃지 않는 여인이었다. 유왕은 그녀를 웃기기 위해 비단을 찢거나, 봉화대에 불을 지핀다. 봉화는 전쟁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 피우는 것 아니던가? 봉화가 피어오르니 병사들이 전투준비를 한다. 거짓에 속아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포사가 신나게 웃으니 유왕은 시도 때도 없이 불을 피웠다. 그러다 실제로 오랑캐가 쳐들어와 봉화를 올렸으나, 또 거짓이겠지 하고 아무도 출정하지 않았다. 유왕은 오랑캐에 붙잡혀 죽고 주나라는 멸망한다.

말에는 무게가 있다. 보통사람은 자신의 말에 무게를 싣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명언이나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을 빌린다. 각종 비유법도 쓴다. 힘주어 말하기도 한다. 뿐인가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말이 비수가 될 수도 있다.' '말은 화살과 같다.' '말이 씨가 된다.' 물론 많이 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말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 국민을 우습게보기에 앞서, 자신의 신뢰붕괴, 조직분열, 능력저하에 주목하자.

역사책을 뒤적이다 보면 "어려움은 같이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할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이 종종 등장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의 전쟁에서 나온 것이다. 월나라가 승리하는데 최고 영웅이었던 책사 범려(范?)가 모든 것을 뿌리치고 절세미녀 서시(西施)와 함께 제(濟)나라로 떠나면서 월나라 왕 구천(句踐)을 평가한 말이다.

중국 한고조 유방(劉邦)의 휘하에 한신(韓信)이라는 명장이 있었다. 여러 차례 유방을 사지에서 구해냈다. 한신 휘하에 유방의 성정을 잘 아는 괴통(?通)이라는 현자가 있었다. 유방이 최후의 승자가 되면 당신부터 제거할 것이라며 몰락의 위기에서 구하지 말라 권유하였다. 한신은 의리를 내세워 유방을 구출하였다. 유방이 마지막 승자가 되자, 정말로 생명의 은인인 한신은 물론 그의 일가식솔 수백 명을 처형하였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토사구팽이다. 김후저 <불멸의 제왕들>에 의하면, "교활한 토끼가 잡히면 좋은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狡兎死良狗烹), 나는 새가 더 이상 없으면 좋은 활은 창고에서 썩게 마련(飛鳥盡良弓藏), 적국을 깨고 나면 꾀 많은 신하는 죽이는 법이니(敵國破謀臣亡), 이제 천하가 안정되었으니 나 역시 팽(烹)을 당하는구나(天下已定 我固當烹)."

진정한 지도자는 권모술수가 아닌 능력과 비전으로 조직을 이끈다. 거짓과 부허(浮虛), 헛되고 그릇된 말을 일삼는 사람의 성정은 어떤 것일까? 필부는 결단코 가까이 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시인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서구 KT인재개발원 부지에 주거단지…청년주택 200세대 포함
  2. 한국은행 대전세종충남본부, 13일 금융경제강좌 3회차 진행
  3. 대전 서구의회, 정책연구·윤리심사 위원회 구성 완료
  4. 대전 중구의회 김석환 의원, 지방의원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수상
  5. 대덕구의회, 장기 파행 끝 정례회 개최…806억 추경안 심의
  1. 깊어가는 가을과 낙엽
  2. 류수열 "대전국제와인 EXPO,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3. 천안시 노사민정협의회·한국노총 천안지역지부, 지역사회 나눔에 한 뜻
  4. 천안시 서북구,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인식개선 캠페인 나서
  5. 나눔명문기업 드림낚시, 충남·천안지역 취약계층 위해 후원식품 등 나눔

헤드라인 뉴스


[기로에 선 행정수도] 한몸이었던 행정수도·혁신도시, 국가적 과업 완성할 때

[기로에 선 행정수도] 한몸이었던 행정수도·혁신도시, 국가적 과업 완성할 때

수도권에 집중된 정치와 행정의 중추 기능을 지방으로 이전하기 위해 추진된 세종 행정수도 건설. 그러나 관습헌법상 '서울이 수도'라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멈춰 섰고, 20여 년이 지나서야 다시금 논의가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11일 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의 축조심사가 예정되면서다. 시간은 많지 않다. 향후 예상되는 정치적 여건과 현재 추진 중인 정부의 기관 이전 정책 등 상황에 비춰볼 때, 특별법 제정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골든타임'을 맞이한 상황이다. 특히 헌법이 정한 정기국회 시한이 불..

345㎸ 송전선, 세종 4개 면 경유 확정… `지중화` 얼마나 가능할까
345㎸ 송전선, 세종 4개 면 경유 확정… '지중화' 얼마나 가능할까

<속보>=345㎸ 초고압 송전선로 경유지에 세종시 금남면 등 4개 면이 포함돼,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2026년 9월 18일자 3면 게재> 2031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하는 신계룡~신천안 송전선로 건설사업이 추진 3년 만에 최적 경과지를 도출하면서 구체적인 노선과 경유 지역별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금남면과 장군면이 송전선로 지중화 검토 대상지에 포함되면서 내년 하반기 실시설계에 앞서 지역 여건과 주민 수용성, 한전의 심사 결과 등이 사업 추진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8일 한국전력공사와 세종..

[금산다문화] 대전에서 열린 필리핀 피에스타 데이, 전통 의상과 문화로 하나 되다
[금산다문화] 대전에서 열린 필리핀 피에스타 데이, 전통 의상과 문화로 하나 되다

지난 10월 11일, 대전광역시의 한 실내 체육관에서 필리핀 피에스타 데이(Filipino Fiesta Day)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필리핀 커뮤니티 리더들이 주최하고, 행사 진행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에 참여한 한국인들의 협력으로 마련되었다. 참가자들은 필리핀의 전통문화와 공동체의 정을 나누며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 행사에서는 다양한 스타일의 필리핀 전통 의상이 눈길을 끌었다. 참가자들은 필리피니아나(Filipiniana), 바롱 앳 사야(Baro't Saya), 키모나(Kimona), 마리아 클라라(Maria Clara) 스타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깊어가는 가을과 낙엽 깊어가는 가을과 낙엽

  • 난방용품 판매 준비 분주 난방용품 판매 준비 분주

  • 울긋불긋 물든 도심 울긋불긋 물든 도심

  • 대전 갑천4BL 청년주택 공급사업 기공식 대전 갑천4BL 청년주택 공급사업 기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