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4월은 ‘잔인한 달’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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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4월은 ‘잔인한 달’이어야 하는가

송기한 대전대 교수

  • 승인 2025-03-24 09:50
  • 신문게재 2025-03-25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송기한 대전대 교수
송기한 대전대 교수
4월은 만물이 생동하는 달이다. 3월부터 겨울에 잠자고 있던 모든 생명체들이 저마다 살겠다고 아우성치며, 대지 위로 계속 솟구쳐 올라오려 한다. 그러던 것이 4월이 되면, 대지를 생존의 장으로 만든다. 그래서 어떤 시시인은 봄의 이러한 모습을 빗대서 '전쟁'으로 표현한 바 있다.

흔히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한다. 4월을 이렇게 표현한 시인은 엘리어트(T.S. Eliot)이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인 '황무지'에서 4월을 이렇게 표현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고/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겨울은 따뜻했었다/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먹여 살려 주었다."고 한 것이다. 온갖 생명이 살아나면서 대지를 활기차게 만드는 4월을 그는 왜 잔인한다고 한 것일까.

엘리어트는 모더니스트 시인이다. 모더니즘(modernism)이란 근대성(modernity)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형성된다. 그래서 근대가 배태한 온갖 것들에 대해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들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모더니즘이 근대성을 무엇보다 못마땅하게 보는 근거는 전쟁의 비극적인 근원이 과학물질 문명과 불가분하게 얽혀 있다는 데에서 찾는다.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와 그 무기의 성능에 비례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게 된다. 모더니즘이 전쟁 직후에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그 파괴된 현장에도 어김없이 4월이 온다. 봄을 맞이하는 것이다. 생명이 다시 부활하는 계절이 왔으니 대지는 자연의 법칙에 의해 따라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하지만 전쟁으로 빚어진 '황무지' 같은 현실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지극히 한정돼 있었다. 봄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 피폐된 인간이 대응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겨울이 좋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겨울은 신화(myth)적 의미에서 보면, 불임(不姙)의 계절이고, 죽음의 계절이다. 또 사회 정치적인 의미에서 보면, 암흑의 시절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를 결코 용인할 수 없었던 시인들이 자신들의 작품에서 '겨울'을 상징화시킨 것은 이런 저항의 몸짓에서 나온 것이다. 가령, 이 시대 최고의 저항 시인이었던 이육사가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인가"('절정')라고 한 것도 이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봄은 생산의 계절이 되어야 하는데 제1차 세계 대전의 현실은 봄을 불임의 계절로 만들어버렸다. 엘리어트가 "겨울은 따뜻했었다/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먹여 살려 주었다."한 것도 이 때문이다. 봄보다 죽음의 계절인 겨울이 더 낫다고 보는 것, 그러한 역설이 "4월을 잔인한 달"로 인식하게끔 한 계기가 된다.

우리는 엘리어트의 이 말에 기대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흔히 말해오곤 했다. 공교롭게도 4월은 우리에게 비극적인 사건을 많이 안겨주었다. 가령, 제주 4.3사건이라든가 4.19 혁명, 4.16 세월호 참사 등이 모두 4월에 일어났다. 그러니 4월 하면 잔인한 달로 기억될 만도 하다. 이들 사건이 더욱 비극적으로 비춰지는 것은 따스한 봄의 계절과 대비되는 까닭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계절들이 따로 있을 것이다. 생명이 소생하는 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조락의 계절인 가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름의 무성한 모습이나 눈 덮힌 겨울의 포근한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계절은 저마다의 특성이 있기에 장단점을 분명 갖고 있지만, 그 가운데 봄은 아마도 가장 활기차고 긍정적인 계절일 것이다. 소월은 그러한 봄을 "잔디 잔디 금잔디/심심산천에 붙는 불은/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라고 하면서 예찬한 바 있다. 그는 주권을 빼앗긴 동토에서 봄빛에 타오르는 금잔디의 부활, 조국의 독립을 노래했다. 그 간절했던 소월의 소망처럼 봄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늘 '희망을 주는 달'로 기억하면 어떨까. 다가오는 2025년 4월에도 마찬가지로. /송기한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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