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무역위기 속 대한민국의 시험대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무역위기 속 대한민국의 시험대

민병찬 국립한밭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 승인 2025-05-13 11:09
  • 신문게재 2025-05-14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민병찬
민병찬 국립한밭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2025년 5월, 세계는 또 한 번 보호무역주의의 회오리 속에 휘말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하자마자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주요 산업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글로벌 무역질서는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철강 등 한국의 전략 산업이 주요 타깃이 되었고, 공급망과 수출경로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제조업 회복을 명분으로 자국 생산을 유도하고, 동맹국조차 예외 없이 압박하는 새로운 경제 블록화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외풍보다 더 심각한 내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25년 5월 현재,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대통령이 파면되고,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까지 동시에 사퇴하면서 정부 최고위 리더십은 사실상 공백 상태다. 국정 중심축이 무너진 가운데 외교·경제 정책의 방향은 불분명하고, 세계적인 통상 위기에 대응할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지금, 국가 경쟁력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혼란에 휘둘리지 않고 제도와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는 특정 지도자의 결단보다 위기 속에서도 작동하는 관료조직과 기업, 전문가 집단의 협력이 절실하다. 산업부와 외교부, 기재부 등의 실무진이 중심이 되어 민간 기업과 학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 이른바 '통상 비상체계'가 작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정 리더십이 일시적으로 부재하더라도 실무 중심의 대응 구조만 제대로 움직인다면 지금의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다.

정상 외교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실무 외교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외교부 고위 인사들이 미국, EU, 일본 등과의 통상 대화 채널을 가동하고, 동남아 및 중남미 국가들과의 다자협력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아세안, 호주, 캐나다 등과의 연대는 미국의 일방적 통상 압박을 견제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이다.



한국 기업들도 자율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대기업들은 미국 현지 공장 확대와 생산기지 분산을 통해 관세 리스크를 줄이려 하고 있다. 정부는 수출입 금융 지원, 법률 자문, 규제 유연화 등 실질적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핵심소재 개발과 기술 자립화도 장기 관점에서 지원을 이어가야 한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반도체는 단순한 수출품이 아니라 외교·안보의 전략 자산이 되었다. 첨단 제조기술, AI 칩 개발, 소재·장비의 국산화는 민간 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이를 확보하지 못하면 한국은 단 한 번의 무역 충격에도 휘청일 수 있다.

헬스케어 산업도 마찬가지다. 팬데믹 이후 한국은 바이오의약품, 정밀의료, 의료 AI 등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미국의 규제 변화와 보호주의는 수출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국산 우선구매' 원칙이 확대되면, 인증과 유통에서 국내 기업은 차별을 겪을 수 있다. 이에 대비해 정부는 국제 인증 협력과 임상시험 상호인정 체계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미국의 관세 조치가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할 경우 우리는 이의를 제기하고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외교적 지렛대를 확보해야 한다. 법적 대응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당한 외교 논리와 원칙을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

지금은 새로운 경제 패권 시대에 대비할 시점이다. 특정 국가의 정책 변화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기술력, 혁신 역량, 안정적 공급망이 핵심이다. 반도체, 2차전지, 바이오 등 미래 산업의 자립화 전략은 단기 대응을 넘어 국가 생존의 전략이어야 한다.

정치 지도자의 부재가 곧 국정 마비로 이어져선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건 작동하는 시스템과 연대하는 사회다. 정치 공백이 위기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실패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2025년 5월의 대한민국이 풀어야 할 절실한 해법이다. 민병찬 국립한밭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민주평통 대통령자문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서울공항 인근 도심 상공 전투기 곡예비행... 안전불감증 도마
  2. 옛 파출소·지구대 빈건물 수년씩… 대전 한복판 중부경찰서도 방치되나
  3. <속보> 이상민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 별세
  4. AI 시대 모두가 행복한 대전교육 위해선? 맹수석 교수 이끄는 미래교육혁신포럼 성료
  5. [기고] 전화로 모텔 투숙을 강요하면 100% 보이스피싱!
  1. 충남도 "해양생태공원·수소도시로 태안 발전 견인"
  2. ['충'분히 '남'다른 충남 직업계고] 논산여자상업고 글로벌 인재 육성 비결… '학과 특성화·맞춤형 실무교육'
  3. 충남교육청 "장애학생 취업 지원 강화"… 취업지원관 대상 연수
  4. 태안국제원예치유박람회 조직위, 준비상황보고회 개최
  5. "도민 안전·AI 경쟁력 높인다"… 충남도, 조직개편 추진

헤드라인 뉴스


납세자 늘어도 세무서 3곳뿐… 대전시 세정 인프라 태부족

납세자 늘어도 세무서 3곳뿐… 대전시 세정 인프라 태부족

대전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납세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세무서가 3곳에 불과해 세무서 신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대전 유성구갑)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전시의 2024년도 주요 세목별 신고인원은 2019년 대비 부가가치세 17.9%, 종합소득세 51.9%, 법인세는 33.9% 증가했다. 또 대전의 2023년도 지역내총생산(GRDP)은 54조원으로, 전년 대비 3.6% 성장해 전국 17대 시·도 중 두 번째로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납세 인원 역시 2019..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가치 재확인… 개방 확대는 숙제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가치 재확인… 개방 확대는 숙제

조선시대 순성놀이 콘셉트로 대국민 개방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3.6km)'. 2016년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정원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주·야간 개방 확대로 올라가고 있다.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의 주·야간 개방 확대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주간 개방은 '국가 1급 보안 시설 vs 시민 중심의 적극 행정' 가치 충돌을 거쳐 2019년 하반기부터 서서히 확대되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제한적 개방의 한계는 분명하다. 평일과 주말 기준 6동~2동까지 매일 오전 10시, 오후 1시 30분, 오후..

전국 대학 실험실 발생 사고 매년 200건 이상…4월 사고 집중 경향
전국 대학 실험실 발생 사고 매년 200건 이상…4월 사고 집중 경향

최근 3년간 대학 내 실험실에서 발생한 사고로 매년 2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문정복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시흥갑)이 한국교육시설안전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 8월까지 최근 3년간 전국 대학 연구실 사고로 총 607명의 부상자와 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같은 기간, 대학 내 실험실 사고로 지급된 공제급여는 총 8억 5285만 원에 달한다. 특히 4월에 매년 사고가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2023년 4월에 33명, 2024년 4월에 32명, 2..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 나에게 맞는 진로는? 나에게 맞는 진로는?

  • 유성국화축제 개막 준비 한창 유성국화축제 개막 준비 한창

  • 이상민 전 의원 별세에 정치계 ‘애도’ 이상민 전 의원 별세에 정치계 ‘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