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변호사는 심리상담사

  • 오피니언
  • 전문인칼럼

[전문인칼럼] 변호사는 심리상담사

  • 승인 2025-07-20 11:13
  • 신문게재 2025-07-21 18면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변호사김이지사진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변호사님에게 이야기하니 속이 후련하고, 말씀이 위로가 됐어요.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결심은 못했어요."

가끔 상담을 마친 의뢰인이 이런 말을 하면 묘한 허탈함이 남는다. 변호사인 나는 상대방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앉아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심리상담사(혹은 무당이나 점집 등)가 아니다. 변호사의 말은 '감정'이 아니라 '결정'을 향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법률상담, 그중에서도 특히 이혼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많은 분이 변호사와의 대화를 공감받는 자리로 오해하곤 한다. 물론 마음이 지쳐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 서 계시니 그럴 수 있다. 어제는 작년 이맘때쯤 한번 다녀가신 분이 다시 상담을 받으러 오셨다. 그때도 배우자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가셨는데, 상담 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살아봤지만 배우자는 변하지 않았고, 더 심한 일을 당한 뒤에 억울함이 마음에 가득차 다시 오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분은 여전히 이혼을 결심하신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아야 배우자와 또 한동안 한집에서 마주 보고 살 수 있어서 오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변호사의 역할은 '당신의 입장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의 미래를 설계해주는 사람'이다. 의외로 많은 분이 '자신의 감정 상태를 토로하고 위로받는 것'만으로 상담의 목적을 다했다고 여기고 돌아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상황은 되풀이되고, 심지어 더 악화되기까지 한다.

법률상담은 단순히 속내를 털어놓는 시간이 아니다. 상담은 곧 '전략 회의'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할지. 어디까지 요구하고, 어디서 멈출지를 고민하는 시간이다. 그 모든 것은 감정이 아니라 논리와 정보, 그리고 결정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가령 어떤 이혼 상담에서 "남편이 외도를 했는데 그때 진짜 힘들었어요."라고 하신다. 그래서 묻는다. "그 일이 있었던 시점이 언제입니까?" "한… 5년 전쯤이요." 이 한 마디가 많은 것을 바꾼다. 법은 '그 당시 왜 책임을 묻지 않고 참았느냐', '왜 지금에서야 문제 삼느냐'는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서적 타당성'과 '법적 설득력'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물론 사건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마음에 맺힌 응어리가 충분히 토로 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때도 있다. 그 과정이 필요한 분은 바로 전략회의에 들어가려고 해도 사실 불가능하다. 그래서 감정적 해소를 위해 충분히 들어드리지만, 사실 그런 것은 법률전문가보다는 심리상담사와 먼저하고 오시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고 법률상담을 받으러 오면, 더욱 냉철하게 자신의 이익과 승리를 위한 진지한 고민이 가능해진다.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성'이다. 그렇기에 상담도 감정이 아닌 객관적 판단 위에 세워져야 한다. 위로는 가족과 친구에게서 받을 수 있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짚고, 전략을 설계해줄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역할을 변호사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때로는 차갑게 들릴 수 있는 말을 한다. "이 상황에서 소송을 해봤자 이기기 어렵습니다." "이건 위자료보다 재산분할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만 따뜻한 사람'보다는, '의뢰인의 미래를 지켜주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결국 상담은 '선택'의 문제이다. 자신을 이해해달라는 자리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행동하겠다"는 결정을 끌어내는 자리여야 한다. 그래서 법률 상담의 본질은 공감이 아니라 설계이고, 전략이다.

법률상담을 앞두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시기 바란다. "나는 위로를 원하는가, 아니면 결정을 원하는가?" 그 질문의 답이 명확해질 때, 비로소 당신의 길도 선명해질 것이다.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우리 위성이다,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진 사출 지켜보며 환호
  2. [한글날 제정 100주년]AI 시대, 한글의 힘을 기르자
  3. 누리호 5차 발사 성공…대전 한국형 뉴스페이스 도약 가속도
  4. 대전대학교 대전광역시아이돌봄광역지원센터, 가족·돌봄 지원 협력체계 구축 공동협약
  5. 우송정보대 앵커사업단, 산학연 EXPO서 현장형 인재양성 성과 공개
  1. 건양대, 로고스AI와 손잡고 ‘데이터 주권 AI’ 인재 양성
  2. [대전노인신문] 노인대학 강의가 열리는 날
  3. 충청권 인구감소지역 15곳 그대로… 대전 원도심 3곳 ‘인구활력+지역’ 전환
  4. 충남대 통합신청서 부결 한 달…“국립대 통합 재추진 필요” 민병권 대표 제언
  5. ‘가갸날’에서 한글날까지 100년…대전·세종에서 즐기는 한글날

헤드라인 뉴스


대전 무임교통 3만원 제한… 어르신 3명중 1명 한도초과

대전 무임교통 3만원 제한… 어르신 3명중 1명 한도초과

대전시가 내년부터 70세 이상 어르신 무임교통 지원을 월 3만원 한도로 축소하기로 한 가운데 현재 이용자 3명 중 1명 이상이 지원 한도를 넘겨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 방식도 현재 사실상 무료 이용에서 본인이 교통비를 먼저 결제한 뒤 이용액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바뀔 예정이어서 제도 변경에 따른 고령층의 체감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7일 대전시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어르신 무임교통카드 이용자는 모두 11만 1997명이다. 이들의 1인당 월평균 교통비 이용액은 2만 8586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월 3만 원을 초..

축구대표팀 ‘병역 논란’ 후폭풍…53년 병역특례 폐지 수순 밟나
축구대표팀 ‘병역 논란’ 후폭풍…53년 병역특례 폐지 수순 밟나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다시 불붙은 예술·체육인 병역특례 제도가 53년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일부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금메달 획득 후 병역 혜택을 과도하게 부각하는 언행을 보이면서 여론이 악화한 가운데 정부가 '궁극적 폐지'를 공식화하고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안까지 나오면서다. 선수들의 경솔한 행동이 그동안 누적돼 온 형평성 논란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8일 정치권과 정부 등에 따르면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전날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병역특례를 단계적으로 줄여 최종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국방부의 목표라는..

지역화폐 몸집 키우는 정부·지자체… 소비 쏠림에 실효성 물음표
지역화폐 몸집 키우는 정부·지자체… 소비 쏠림에 실효성 물음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화폐 발행을 확대하고 있지만 소비가 일부 상권에 집중되면서 정책 실효성을 보다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비와 지방비가 투입되는 만큼 발행 규모뿐 아니라 지역 내 소비가 어디로 흘러가는지까지 정책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7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지역사랑상품권 활성화 기본계획(2026~2030)'을 수립하고 2030년까지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31조 2000억 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지원 국비도 올해 1조 1500억 원에서 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확 앞둔 황금 들녘 수확 앞둔 황금 들녘

  •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

  • ‘은행 열매를 피해라’ ‘은행 열매를 피해라’

  • ‘한글, 예술이 되다’ ‘한글, 예술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