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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
가끔 상담을 마친 의뢰인이 이런 말을 하면 묘한 허탈함이 남는다. 변호사인 나는 상대방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앉아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심리상담사(혹은 무당이나 점집 등)가 아니다. 변호사의 말은 '감정'이 아니라 '결정'을 향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법률상담, 그중에서도 특히 이혼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많은 분이 변호사와의 대화를 공감받는 자리로 오해하곤 한다. 물론 마음이 지쳐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 서 계시니 그럴 수 있다. 어제는 작년 이맘때쯤 한번 다녀가신 분이 다시 상담을 받으러 오셨다. 그때도 배우자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가셨는데, 상담 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살아봤지만 배우자는 변하지 않았고, 더 심한 일을 당한 뒤에 억울함이 마음에 가득차 다시 오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분은 여전히 이혼을 결심하신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아야 배우자와 또 한동안 한집에서 마주 보고 살 수 있어서 오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변호사의 역할은 '당신의 입장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의 미래를 설계해주는 사람'이다. 의외로 많은 분이 '자신의 감정 상태를 토로하고 위로받는 것'만으로 상담의 목적을 다했다고 여기고 돌아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상황은 되풀이되고, 심지어 더 악화되기까지 한다.
법률상담은 단순히 속내를 털어놓는 시간이 아니다. 상담은 곧 '전략 회의'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할지. 어디까지 요구하고, 어디서 멈출지를 고민하는 시간이다. 그 모든 것은 감정이 아니라 논리와 정보, 그리고 결정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가령 어떤 이혼 상담에서 "남편이 외도를 했는데 그때 진짜 힘들었어요."라고 하신다. 그래서 묻는다. "그 일이 있었던 시점이 언제입니까?" "한… 5년 전쯤이요." 이 한 마디가 많은 것을 바꾼다. 법은 '그 당시 왜 책임을 묻지 않고 참았느냐', '왜 지금에서야 문제 삼느냐'는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서적 타당성'과 '법적 설득력'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물론 사건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마음에 맺힌 응어리가 충분히 토로 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때도 있다. 그 과정이 필요한 분은 바로 전략회의에 들어가려고 해도 사실 불가능하다. 그래서 감정적 해소를 위해 충분히 들어드리지만, 사실 그런 것은 법률전문가보다는 심리상담사와 먼저하고 오시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고 법률상담을 받으러 오면, 더욱 냉철하게 자신의 이익과 승리를 위한 진지한 고민이 가능해진다.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성'이다. 그렇기에 상담도 감정이 아닌 객관적 판단 위에 세워져야 한다. 위로는 가족과 친구에게서 받을 수 있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짚고, 전략을 설계해줄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역할을 변호사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때로는 차갑게 들릴 수 있는 말을 한다. "이 상황에서 소송을 해봤자 이기기 어렵습니다." "이건 위자료보다 재산분할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만 따뜻한 사람'보다는, '의뢰인의 미래를 지켜주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결국 상담은 '선택'의 문제이다. 자신을 이해해달라는 자리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행동하겠다"는 결정을 끌어내는 자리여야 한다. 그래서 법률 상담의 본질은 공감이 아니라 설계이고, 전략이다.
법률상담을 앞두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시기 바란다. "나는 위로를 원하는가, 아니면 결정을 원하는가?" 그 질문의 답이 명확해질 때, 비로소 당신의 길도 선명해질 것이다.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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