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눈물의 시인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 칼럼] 눈물의 시인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 승인 2025-09-10 16:49
  • 신문게재 2025-09-11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만인산 봉수레미골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린 대전천은 머들령 골짜기의 물을 합하여 삼괴동 천주교산내공원묘원을 지난다. 묘원으로 들어가는 대전천 변 길옆에는 벚나무들이 심어있다. 이곳을 통해 들어가 나오는 묘역에는 박용래 시인(1925-1980)과 그의 부인이 함께 잠들어 있다. 시인은 논산 강경에서 태어나 55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대전의 곳곳인 버드내 기슭, 목척교, 중앙시장 먹자골목 대포 집, 오류동 근처의 선술집, 유성 둘래, 한밭 근교의 술친구를 찾아 끝없이 대전을 순례하면서 눈물을 뿌렸다. 그의 눈물은 변두리 빈터에 붐비는 저녁 눈처럼 소외되고 버림받는 것에 대한 연민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고은시인의 시집 『거리의 노래』에서는 보문산 까치고개에서 시작한 고은 시인과 박용래 시인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장수바위를 거쳐 황량한 대전천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박용래는 호주머니 안에/ 담배꽁초 두어 개밖에 없었다/ 고무 신창이 닳아/ 발바닥과 땅이 닿아 친밀했다/ 눈물 흘러 흘러/ 석교동 석교 국민학교 언저리에서/ 샘골 지나 문창다리 지났다/ 물도 썩고/ 썩은 물에 돌멩이 하나 던졌다/ 울던 사람 -중략- 영교(선화교)에서/ 보문고등학교 교장 이재복을 만나/오디빛 오디빛/하는 칭찬받으며 술을 얻어먹었다"-고은의 시 「대전천따라」에서



눈물을 흘리며 대전천 길을 따라 걸었던 시인은 이제 대전천 상류 머들령 길목을 지키는 산신이 되어 대전천을 굽어보고 있다.

박용래 시인은 대전 문학의 상징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광복 이후 지역의 시적 낭만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문인으로 대전 문단에서는 시인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1925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전 생애를 문학에 바친 진정한 시인이다. 그는 '강아지풀'이나 '저녁 눈'처럼 작고 하찮게 보이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고 한국적인 서정으로 잘 그려내었다.



남은 아지랑이가 홀홀 타오르는 어느 역 구 내 모퉁이 어메는 노오란 아베도 노란 화물에 실려 온 나도사 오요요 강아지 풀. -강아지 풀.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말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저녁 눈.

이는 그가 살았던 주변의 소박한 풍경들과도 잘 어우러진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일상 속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이다. 그가 떠난 후 1984년에는 보문산 사정공원에 시인의 시비(詩碑)가 세워지기도 했다. 시인은 실제로 대전에서 오랜 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그가 살았던 대전 중구 오류동의 집 청시사 터에 시인의 시(詩)인 '오류동의 동전'이 새겨진 표지석이 2009년에 세워지기도 했다. 이 시는 시인으로서 가난했던 그의 삶을 담고 있는 시이다.

2025년 올해는 박용래 시인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대전문학관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특별전(2025년 8월 13일 ~ 12월 31일)을 비롯해 문학 콘서트, 오룡역 문화 전시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지역에서도 그의 문학적 가치와 대전에서의 의미를 기리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시인들이 있다. 부여에는 금강의 시인 신동엽 시인이 있고,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 남한강의 충주에는 목계장터의 신경림 시인, 가까운 옥천에는 향수의 시인 정지용 시인이 있고, 공주에는 풀꽃 시인 나태주 시인이 있다. 우리 지역의 박용래 시인은 대전의 문학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그의 삶과 작품이 대전이라는 지역과 깊이 얽혀 있어서 대전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시인을 넘어선 문화적 상징이자 자부심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2.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3.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4.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5.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1.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2. 대전 동구, '어린이 눈썰매장'… 24일 본격 개장
  3. 이대통령의 우주청 분리구조 언급에 대전 연구중심 역할 커질까
  4.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5. [기고] 한화이글스 불꽃쇼와 무기산업의 도시 대전

헤드라인 뉴스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정부 10·15 정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 3단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유예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누적 매매가격 변동률(12월 8일 기준)을 보면, 수도권은 2.91% 오른 반면, 지방은 1.21%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8.06%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대전은 2.15% 하락했다. 가장 하락세가 큰 곳은 대구(-3...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12·3 비상계엄 사태에 적극 가담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충청 출신 인사들이 대거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한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은 180일간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15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노상원 등 충청 인사 기소=6월 18일 출범한 특검팀은 그동안 모두 249건의 사건을 접수해 215건을 처분하고 남은 34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넘겼다. 우선 윤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 ‘헌혈이 필요해’ ‘헌혈이 필요해’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