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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용 (사)부패방지국민운동총연합 전국여성중앙회장 |
이같은 기나긴 명절 연휴가 있었음에도 실상 명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실천하는 국민들은 줄어드는 것 같다. 집집마다 가족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며 조상들의 음덕을 기리고 떨어져 있던 가족들은 오랜만에 못다한 정을 나누고 친지들과 서로 안부를 전하는 명절의 색깔은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기나긴 명절 연휴가 고향 방문과 가족 해후, 친지 간 교류보다는 해외여행이나 취미생활을 누리는 시간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명절 연휴가 정해진 것은 고향이나 친지 방문 등에 필요한 이동과 교류시간을 보장해주고 그 속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하는게 취지임에도 갈수록 그 취지가 빛바래고 있어 씁쓸하기만하다.
물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한 휴식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설날과 추석이 단순한 휴일로만 인식되고, 세시풍속과 가족 공동체의 정이 사라진다면 이는 단순한 시대 변화가 아니라 우리의 정신문화가 흔들리는 징후라 할 수 있다.
명절은 단지 '쉬는 날'이 아니다. 조상에 대한 감사와 가족 간의 사랑을 되새기며 공동체의 유대를 확인하는 날이다. 설날에는 한 해의 첫날을 맞아 덕담을 나누고 세배를 하며 어른을 공경했고, 추석에는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조상의 음덕에 감사했다. 이러한 풍속은 단순한 의례를 넘어 '정(情)'과 '예(禮)'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정신의 발현이었다. 그러나 핵가족화, 개인주의의 확산, 그리고 경제적·시간적 여유 부족 속에서 명절은 점차 부담스러운 행사로 전락했다. '명절 스트레스'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도 오래다.
가족 간의 만남이 오히려 피로로 느껴지고, 성묘와 차례가 '형식'으로 치부되며 간소화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오늘날 명절은 점점 '공동체적 행사'에서 '개인적 휴식기'로 바뀌고 있다.
연휴가 시작되면 고속도로보다 공항이 더 붐비고, 해외여행 예약률은 해마다 최고치를 갱신한다. 명절을 맞아 고향을 방문하는 대신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명절'이 새로운 풍속도가 된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고향'과 '뿌리'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조상과 가족, 이웃을 향한 마음의 끈이 느슨해지면 결국 공동체의 기반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명절이 지닌 사회적 기능과 정서적 유대의 장이 사라진다면, 우리 문화의 근간 또한 흔들리게 된다.
명절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가정부터 변화해야 한다. 차례나 제사를 무조건 생략하기보다, 그 의미를 이해하고 가족이 함께 간소하게 나마 준비하며 조상과의 연결을 체험하는 교육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성묘의 의미, 절하는 법, 전통음식의 상징성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전통 계승의 씨앗이 된다.
지역사회와 정부 차원의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지자체에서는 전통놀이 체험, 세시풍속 행사, 덕담 나누기 캠페인 등 명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학교와 미디어 역시 명절의 참뜻을 교육하고 알리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명절이 단지 소비와 여행의 계절이 아니라, 감사와 나눔의 시간임을 일깨워야 한다.
명절은 결국 '돌아감'의 시간이다. 몸은 고향으로, 마음은 가족에게로, 그리고 정신은 뿌리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빠른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사람에 대한 정'과 '가족의 온기'다. 명절의 본래 의미를 되찾는 일은 단순히 옛 풍속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사회로 가는 길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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