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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하라 케이조 공동대표(사진 가운데)와 나가부치 아키코(왼쪽), 이와와키 아키라 씨 등 (사)일본전쟁유적전국네트워크 임원과 회원을 인천시 부평에서 만났다. (사진=임병안 기자) |
(사)일본전쟁유적전국네트워크의 데하라 케이조 공동대표 10월 19일 인천시 부평구에서 열린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 1차 전국대회에 친선으로 참석해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일본 열도를 이루는 네개의 섬 중 가장 작은 섬인 시코쿠 고치현에서 전쟁유적을 발굴하고 시민들에게 알려 침략전쟁 반성을 잊지 말자는 시민 활동가다. 그는 평화자료관 '초가집(草の家)'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일본 대본영은 침략전쟁인 아시아태평양전쟁(1931~1945)이 종점에 임박한 시기에 미군이 고치현으로 상륙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하고, 바다를 향해 펼쳐진 고치현 곳곳에 방공호와 비행장, 레이더기지 그리고 카미카제 특공대 기지까지 집중적으로 만들었다. 실제 상륙 전투는 없었고 일본의 항복으로 태평양전쟁은 종료됐다. 그리고 이곳에 남은 전쟁 시설도 흙 또는 덤불 속에서 풍화돼 사라지거나 개발로 흔적마저 지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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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본전쟁유적전국네트워크 임원과 회원들이 부평 지하호를 견학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
그는 이어 "전쟁에 대한 기억이 지금까지 사람으로부터 계승되었다면 1945년 종전 후 80년이 흐른 지금은 생존자는 줄어들고 유물밖에 남지 않았다"라며 "일본에서는 전쟁 기억이 사람에게서 유물로 옮겨졌다 여기고 전쟁유적에 비상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전날 이뤄진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 전국대회 심포지엄부터 이날 부평구와 인천시 일원의 전쟁유적 탐방에 동료 2명과 동행했고, 부평의 지하호에서는 일본 고치현의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전쟁시설은 일본 본토보다 조선에서 먼저 조성되기 시작했는데 침략전쟁이었음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며 "전쟁유적을 보존해 반성의 기억을 계승하는 것은 평화의 방파제를 만드는 일"이라고 밝혔다. 기자는 데하라 케이조 공동대표 일행이 다음에 대전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하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인천 부평=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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