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은 궁남지를 나와서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차창으로 낯익은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계백장군이다. 불현듯 몇 년 전 부여를 안내했던 일본인 생각이 떠올랐다. 지인이 파견 근무차 도쿄에 있는데 직장 상사인 T 씨가 주말에 부여(백제권)를 탐방하고 싶다고 한다며, 나에게 부탁해서였다. 나는 무턱대고 승낙했다.
일본인 T 씨는 이메일에서 일본의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대부분 백제권에서 유래 되었다면서 백제권을 곧 볼 수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댄다고 했다. 실은 나도 두근대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어도 못하는 데다, 부여도 몇 번 바람만 쐬러 갔을 뿐 역사에 대해서는 전무했기에 말이다.
그는 마침내 주말 2박3일 간 일정으로 왔다. 인천공항으로 마중,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대전 도착, 이튿날 아침 일찍 그의 숙소 옆 커피숍으로 갔다. 그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고 싶다고 하기에 시외버스를 탔다. 부여 내 탐방은 택시를 대절해서 다녔다. 그는 준비해 온 메모 용지를 꺼내 기사에게 주었다. 본인이 방문하고 싶은 곳을 적은 것이다. 나에게도 줬다. 부여 국립박물관-왕릉-정림사지(5층 석탑)-궁남지이다.
차가 막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갑자기 차창 밖을 손으로 가리켰다. 눈빛이 반짝였다. 계백장군 동상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 동상이 누군지 몰랐다. 그는 내가 아는 체는 했어도 모르는 걸 아는지 번역기를 돌렸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대한민국 국민인데도 기본도 모르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는 방문지마다 메모해 온 것을 꺼내 보며 마치 연구 자료를 찾는 것처럼 심오했다. 하루 일정이 끝나자 흡족해했다. 그는 물론 논문 자료를 찾으러 온 건 아니다. 이튿날 아침 공항 버스 정류장으로 배웅 나간 내게 담담히 말했다. 고마웠다고. 덧붙여 일본에 초대하겠다고 말하고 공항행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나는 그 후 사물의 본질에 대해 심오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좀 전 계백장군 동상을 보니까 그날 생각이 어제처럼 떠올랐다.
우리 일행은 간단히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신동엽문학관으로 이동했다. 신동엽문학관은 그날 첫 방문이었다. 시인의 시 한 편이 뇌리에 머물렀다.
내 인생을 시로 장식해 봤으면/내 인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내 인생을 혁명으로 불질러 봤으면/세월은 흐른다/그렇다고 서둘고 싶진 않다_신동엽 시인 산문 「서둘고 싶지 않다」중에서 (동아일보 1962. 6, 5.) 신문 발표문
문학관이 가까워져 오자 시인의 시와 그림 조형물 등이 시인 이야기로 장식되어 있다. 신동엽문학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별한 설계의 미학과 문학의 만남이다.
문학관 내에서는 학예사 선생님 안내로 작품마다 상세히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내부에는 시인의 유품과 친필 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다. 문학관 외부와 옥상 정원, 생가터를 잇는 골목마다 시인의 시구절이 적힌 조형물이 있다.
신동엽 시인은 충남 부여 출생으로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대 대표적인 참여 시인에 꼽히는 신동엽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문학관 1층 전시장에 걸려있는 시를 읽었다.
이슬비 오는 날./종로5가 서시오판 옆에서/낯선 소년(少年)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東大門)을 물었다./밤 열한 시 반.//통금에 쫒기는 군상(群像) 속에서 죄없이/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_신동엽 시 「종로5가(鐘路五街)」 중.
_『동서문학(東西春秋)』1967년 6월호
이 시에서 소년과 더불어 두 사람이 더 등장한다. 소년의 아버지일지 모르는 허리 다쳐 쓰러진 노동자. 소년의 누이일지 모를 부은 한쪽 눈의 창부(娼婦)가 등장한다. 이러한 등장인물을 통해서 신동엽은 1950년대의 사회문제로 중요하게 지적되어 온 도시 빈민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_「종로5가」 해설 중에서 발췌
시인의 시를 음미하면서 나는 마음이 우울했다. 우리의 어려웠던 옛 시절을 생각해서다. 아직도 그렇기는 하지만. 신동엽 생가도 바로 뒤편에 있는데 그날은 시간에 쫒겨 방문을 못 했다. 시간을 내서 일찍 도착, 시인에 대해 더 많이 찾아보고 마음에 담아오기로 한다.
민순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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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순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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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