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白露). 투명한 이슬. 더운 여름 보이지 않던 이슬이 나타나니 눈으로도 가을인 줄 알겠다. 옛말에 이맘때 콩잎에 맺힌 이슬을 손으로 훑어 먹으면 속병이 낫는다고 일렀으니 이른 아침 콩밭에 가봐야겠다. 또 모르잖는가. 이명박 정부의 `대전은 없다'는 홀대로 생긴 속쓰림이 혹시 가실지도.
옛사람들은 이맘때 내리는 이슬에 약효가 있다고 믿었다.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는 백로 무렵 안명낭(眼明囊), 즉 눈 밝아지는 주머니를 매다는 풍습이 있다고 했다. 수를 놓은 비단주머니에 측백나무 이슬(柏露)을 따서 담는다. 이 이슬로 눈을 씻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한(漢)나라의 무제(武帝)는 이슬마니아였다. 신선이 되고 싶었던 그는 건장궁에 승로반(承露盤), 즉 이슬을 받는 넓적한 그릇을 설치했다. 승로반 한 가운데 50m가 족히 넘는 구리기둥을 세웠는데, 이게 선인장(仙人掌)이다. 선인장에 맺힌 선장로(仙掌露)가 승로반에 고이면 이를 가져다가 옥가루를 개어 마셨다.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이 권한 비방이라 하니 믿음이 갔음직도 하다.
백로의 시식(時食)은 단연 포도다. 연산군이 승지가 올린 포도를 맛보고는, “얼음 채운 파랑 알이 달고 시원해/ 옛 그대로 성심에 절로 기쁘네/ 몹시 취한 주독만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병든 위, 상한 간도 고쳐주겠네”라고 했다는 포도다. 선조들은 편지 첫머리에 “포도순절(葡萄殉節)에 기체만강하시고…”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바로 백로에서 추석까지의 시절이 포도순절이다. 오늘부터다.
오곡백과 익어가는 이 좋은 포도순절에 충청 사람들은 기체가 만강하지 못하다. 청와대와 총리내정자가 `세종시 수정론'을 잇달아 거론하며 심사를 어지럽혀 놓았기 때문이다. 국민통합을 말하지나 말지, 통합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던 청와대와 사회적 갈등을 풀겠다는 총리내정자가 이미 공사에 들어간 국책사업의 진행을 주저하고 바꾸려들며 새로운 갈등을 유발하는 꼴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청와대나 총리가 봐야할 곳은 나라 전체이지, 기형적인 괴물로 커버린 수도권이 아니다. /안순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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