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찬]사람 하나 새로 들여 놓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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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찬]사람 하나 새로 들여 놓는 일

[시론]민찬 대전대 교수

  • 승인 2010-06-02 15:39
  • 신문게재 2010-06-03 21면
  • 민찬 대전대 교수민찬 대전대 교수
30, 40년 전만 해도 우리는 옛날이야기의 나라에서 살았다. 시골에서는 마실꾼이 모여 앉아 밤이 지나가는 줄 모르고 옛날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것이 다 살아가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러한 자리에는 늘 마을에서 인정하는 이야기꾼이 있어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이야기꾼이 몇 명 되면 이야기 배틀(battle)이 형성되기도 했다. 손자도 할머니 무릎에서 잠이 들던 그 시절에는 조선 3천리 방방곡곡이 어디라 할 것 없이 옛날이야기들로 넘쳐났다.

▲ 민찬 대전대 교수
▲ 민찬 대전대 교수
그런데 옛날이야기들이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60, 70년대 시골 마을에 전봇대가 세워지고 전기가 들어가고 TV가 보급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우선, 마실을 다니는 일부터 없어졌다. TV를 켜면 화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홈드라마에 모든 사람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속의 이야기들은 옛날이야기보다도 더 실감이 났고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한 것들뿐이었다. 그렇게 되자 자연히 마실을 다니는 문화가 사라졌고 그에 따라 옛날이야기도 옛날이야기를 하는 이야기꾼도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바로 그 무렵 옛날이야기를 조사하고 또 수집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발품을 팔며 시골을 찾아 옛날이야기를 채록한 분들이 여러 분 계시고, 정부에서도 그와 같은 사업을 대대적으로 주도한 적이 있었다. '한국구비문학대계'도 그때 그렇게 해서 빛을 보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수천 년 이어져온 옛날이야기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려는 바로 그 순간에 한 편 한 편을 붙잡아 놓은 기적과도 같은 기록물이다. 그 일을 그때 펼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옛날이야기도 없는 막 되어 먹은 사람들로 남게 될 뻔했다.

어느 부잣집에 막내딸이 태어났다. 그런데 그 딸은 본색이 빨간 불여우라서 밤만 되면 가축의 간을 빼먹었다. 집안사람들이 모두 그 사실을 알았으나 아버지만은 믿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는 아들 셋을 내쫓아버렸다. 불여우 딸은 종들을 잡아먹고 부모를 잡아먹고 동네사람들마저 다 잡아먹었다. 집에서 쫓겨난 아들들만 살아남은 것이다. 세월이 흘러 큰아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그러자 불여우 딸이 그 오빠마저 잡아먹으려고 했다. 그때 삽살개가 뛰쳐나와 불여우를 죽이고 오빠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되어 있는 옛날이야기 한 편이다. 더군다나, 불여우가 딸로 태어나서 둔갑을 벌여 여우가 되고 가족과 이웃들의 간을 빼먹는다는 사건의 진행 자체가 대단히 충격적인 까닭에 호감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이 말도 되지 않는 옛날이야기를 나누면서 옛날 그때 그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까?

위로 아들 셋을 두고 막내로 딸을 낳았으니 딸이 얼마나 귀엽고 예쁘겠는가? 오죽 귀엽고 예뻤으면 그 딸을 불러 '양념 딸'이라고 했을까? 그런데 그렇게 귀엽고 예쁜 딸이 여우라니. 그 딸이 가축을 잡아먹고 종들을 잡아먹고 아버지 어머니마저 잡아먹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다니. 잘 살던 부잣집이 딸 하나 새로 식구가 된 순간부터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동네 전체가 사람 하나 없는 적막강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새로 들어온 사람 하나 때문에 이러한 일이 벌어지리라고 누가 과연 짐작이나 하고 있었겠는가?

기업이나 정부조직, 사회와 단체에서도 이와 같은 존재들은 서식하고 있다. 사람 하나 새로 식구로 들이는 일이 그래서 어려운 법이다. 가정이든 사회든 중앙이든 지방이든 불여우 딸과 같은 기생하는 존재들이 없다고 단정을 내릴 수는 없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조직의 내부에서 서식하며 자신이 몸담고 있는 바로 그 조직을 숙주로 삼아 갉아먹고 산다. 허약하고 무관심한 조직은 이들이 서식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에 해당한다. 그러한 조직일수록 이들의 기생성은 좀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한바탕 말 풍년을 치른 듯 지방선거가 지나갔다. 갑자기 조용해진 이 아침에, 사람 하나를 새로 들여놓는다는 사실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을 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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