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의문화 장미의문화]B급 영화도 필요하다

  • 오피니언
  • 빵의문화 장미의문화

[빵의문화 장미의문화]B급 영화도 필요하다

  • 승인 2010-07-29 13:44
  • 신문게재 2010-07-30 21면
  •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문학평론가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최근 공중파 TV 프로그램에서 1970~80년대 10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던 남기남 감독을 소개했다. 예전에는 영화를 관람할 때 주연 배우에만 관심을 두고 감독에는 무심했던 탓인지 남기남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인다.

신상옥, 홍성기, 김기영, 유현목, 김수용, 이만희 같은 분들이 1960년대 이후 우리 영화의 흐름을 주도한 저명감독이라면 남 감독은 여기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비롯한 영상 오락 미디어가 별로 없던 시절, 특히 1980년대 초 컬러TV 방송 이전에는 영화야말로 큼지막한 스크린으로 총천연색 영상을 즐길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매체였기 때문에 영화로 쏠리는 관심은 대단했다.

남기남 감독은 모른다 해도 '영구와 땡칠이'라는 영화<사진>는 대부분 이름만이라도 기억할 것이다. 1989년 1편이 나온 이후 4편까지 시리즈로 제작되었는데 첫 작품은 비공식 관객동원 기록 200만 명이라고 하니 20 여년 전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우리 영화사의 한 장을 장식할 수도 있겠다.

심형래 라는 주연배우는 떠올려도 감독의 이름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로 잊혀진 상태이다. '영구와 땡칠이' 첫 편이 1989년 7월 29일 개봉되었는데 그해 12월 22일에 2편인 '영구와 땡칠이 소림사 가다'를 겨울방학을 겨냥하여 내놓았다. 이어 다음 해 3편 '영구람보', 1991년에 4편인 '홍콩 할매귀신'을 만들었으니 속도전에 강한 그의 제작 능력은 실로 대단했다. 빠른 시일에 찍어내는 수완 외에 촬영필름을 최대한 아끼며 제작비를 절감하는 등 제작사에서 좋아할 여러 덕목을 두루 갖춘 셈이다.

영화의 완성도며 예술성 그리고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 같은 원론적인 요구는 이 경우 성립하지 않는다.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소비자들의 요구, 취향 역시 엄청나게 분화되는데 지금 우리 예술계, 특히 영화분야는 너나없이 대작, 문제작을 겨냥하며 고도의 정교한 플롯을 깔고 메시지로 옷을 입히는 작품에 대한 선호로 치닫는 경향이다. 영화를 보며 진지한 교훈과 삶의 철학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거리낌 없이 웃어보고 비현실의 세계로 빠져보려는 욕구 또한 충족시켜줄 필요가 있다.

예술의 기능이 기쁨제공 즉 웃음을 선사하는 것과 감동, 감화 다시 말하면 교양함양과 심성순화 같은 목표가 함께 묶여 있는 것이라면 둘 중 앞서는 것은 즐거움 제공이다.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하고 여기저기 투자자를 모아 야심에 찬 블록버스터를 기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기남 감독 같이 그냥 한번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대중문화 상품 역시 존재이유는 확실하다. 가게나 시장에 온갖 상품이 제작, 진열되어 손님을 기다리듯이 영화 역시 스펙트럼을 넓혀 다채로운 시각과 선택이 필요한 시점에 우리는 와 있다.

1989년 200만 관객을 불러 모은 영화를 어린이들의 코묻은 돈을 겨냥한 저질, 덤핑영화라고 단정하기에 앞서 문화수요층의 급속한 다양화와 취향의 이질성을 이해하는 일이 우선인듯 싶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처럼 무조건 저예산으로 짧은 시간에 뚝딱 만들어 내는 영화는 발붙이기 힘들다. 잘 만들어진 B급 영화, 문화의 엄숙주의와 경건취향을 비웃으며 의표를 찌르는 틈새영화를 보고 싶은 것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설동호 체제 마무리…오석진號 대전교육, 무엇이 달라질까
  2. 잇단 비위 문제터진 대전경찰… 수사권 재편 과정 하락한 신뢰도 문제
  3. [한화에어로 참사] “사람은 안 늘고 일만 늘었다”…원가 절감 기조 도마 위
  4. 한화에어로 참사 일주일 만에 아워홈 용인공장서도 끼임 사고
  5. 민선 4대 세종시의회 10일 개회… 유종의 미 거둔다
  1. 대전국토청 ‘2026년 상반기 충청권 교통안전협의체’ 개최
  2. '반국가단체' 몰렸던 청람회… 대전지검, 45년 만에 무혐의 처분
  3.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4. 국방과 우주과학 기술과 전문가 대전서 총집합
  5. 대전시장직 인수위원회 현판식 및 전체회의

헤드라인 뉴스


삼전·하닉 충청권 투자 저울질…민선 9기 선제대응 시급

삼전·하닉 충청권 투자 저울질…민선 9기 선제대응 시급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충청권 투자를 저울질하는 가운데 지역 실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민선 9기 시도지사 당선인들의 선제 대응이 시급하다. 우리나라 반도체 투톱으로 글로벌 메모리 대표 기업의 투자를 유치할 경우 충청권이 한국 경제 견인을 위한 신성장 엔진으로 우뚝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기업 투자 유치 여부는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이 사실상 제동이 걸린 가운데 지역 미래 발전을 위한 중대 변곡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여 전력투구가 요구된다. 10일 정치권과 산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와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도..

세종 첫 `Ready korea` 훈련…"열차 탈선에 항공유 폭발"
세종 첫 'Ready korea' 훈련…"열차 탈선에 항공유 폭발"

세종지역에서 처음으로 범정부 합동 복합재난 훈련 '레디 코리아'(Ready korea)가 실시됐다. 집중호우로 인한 열차 탈선과 이에 따른 폭발·누출 사고를 전제로 훈련이 진행됐는데, 대형·복합재난에 대한 지역 내 첫 범정부 대응체계 점검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번 훈련에는 국토교통부 등 중앙부처·기관과 세종시, 세종소방본부, 세종경찰청, 세종충남대병원, 한국철도공사, 한국전력공사, 대한적십자사, 32사단 등 25개 관계기관이 참여했다. 레디 코리아 훈련은 2023년 경기 성남 율현터널 고속철..

`대통령 세종 집무실` 당선작, 44일째 깜깜이… 재공모하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당선작, 44일째 깜깜이… 재공모하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건립이 2029년 8월 이후로 지연될 흐름에 놓이고 있다. 대통령실과 행복도시건설청간 조율 절차가 원활치 않으면서, 세종시와 지역 정치권의 능동적 대응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집무실 건립안은 문재인·윤석열 전 정부를 거치며 2027년 하반기 완공 목표로 제시됐으나, 정치적 격랑 아래 2030년 이후로 미뤄지는 수순을 밟아왔다. 새 정부 들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통해 다시 일정을 앞당기겠다는 뜻을 피력하면서, 상황은 달라지는 듯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임기 말인 2029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

  • 놀이기구로 날리는 더위 놀이기구로 날리는 더위

  •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 ‘무럭무럭 자라거라’ ‘무럭무럭 자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