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옥, 홍성기, 김기영, 유현목, 김수용, 이만희 같은 분들이 1960년대 이후 우리 영화의 흐름을 주도한 저명감독이라면 남 감독은 여기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비롯한 영상 오락 미디어가 별로 없던 시절, 특히 1980년대 초 컬러TV 방송 이전에는 영화야말로 큼지막한 스크린으로 총천연색 영상을 즐길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매체였기 때문에 영화로 쏠리는 관심은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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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래 라는 주연배우는 떠올려도 감독의 이름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로 잊혀진 상태이다. '영구와 땡칠이' 첫 편이 1989년 7월 29일 개봉되었는데 그해 12월 22일에 2편인 '영구와 땡칠이 소림사 가다'를 겨울방학을 겨냥하여 내놓았다. 이어 다음 해 3편 '영구람보', 1991년에 4편인 '홍콩 할매귀신'을 만들었으니 속도전에 강한 그의 제작 능력은 실로 대단했다. 빠른 시일에 찍어내는 수완 외에 촬영필름을 최대한 아끼며 제작비를 절감하는 등 제작사에서 좋아할 여러 덕목을 두루 갖춘 셈이다.
영화의 완성도며 예술성 그리고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 같은 원론적인 요구는 이 경우 성립하지 않는다.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소비자들의 요구, 취향 역시 엄청나게 분화되는데 지금 우리 예술계, 특히 영화분야는 너나없이 대작, 문제작을 겨냥하며 고도의 정교한 플롯을 깔고 메시지로 옷을 입히는 작품에 대한 선호로 치닫는 경향이다. 영화를 보며 진지한 교훈과 삶의 철학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거리낌 없이 웃어보고 비현실의 세계로 빠져보려는 욕구 또한 충족시켜줄 필요가 있다.
예술의 기능이 기쁨제공 즉 웃음을 선사하는 것과 감동, 감화 다시 말하면 교양함양과 심성순화 같은 목표가 함께 묶여 있는 것이라면 둘 중 앞서는 것은 즐거움 제공이다.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하고 여기저기 투자자를 모아 야심에 찬 블록버스터를 기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기남 감독 같이 그냥 한번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대중문화 상품 역시 존재이유는 확실하다. 가게나 시장에 온갖 상품이 제작, 진열되어 손님을 기다리듯이 영화 역시 스펙트럼을 넓혀 다채로운 시각과 선택이 필요한 시점에 우리는 와 있다.
1989년 200만 관객을 불러 모은 영화를 어린이들의 코묻은 돈을 겨냥한 저질, 덤핑영화라고 단정하기에 앞서 문화수요층의 급속한 다양화와 취향의 이질성을 이해하는 일이 우선인듯 싶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처럼 무조건 저예산으로 짧은 시간에 뚝딱 만들어 내는 영화는 발붙이기 힘들다. 잘 만들어진 B급 영화, 문화의 엄숙주의와 경건취향을 비웃으며 의표를 찌르는 틈새영화를 보고 싶은 것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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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