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주머니’와 ‘지혜주머니’
다산, 과거제도 비판한 이유
‘40대 차관 50대 장관’은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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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학용 논설위원 |
과거제는 또 선비들을 과거시험에 예속시키면서 실용학문의 부진을 가져온다는 점도 문제였다. 다산(茶山)도 이런 점 때문에 과거제도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는 추천받은 사람만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과거제 개혁을 주장했으나 기본적으론 과거제에 부정적이었다.
다산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과거 공부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스무 살부터 과거 공부에 전념하였는데 대학(성균관)에 들어간 뒤에는 변려문(騈儷文·수사가 화려한 문장)과 하찮은 문장학(文章學)에 10년 가까이 머리를 썩였다.” 과거공부를 하는 동안은 진정한 학문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다산은 당시 일본이 문학과 국방에서 중국에 버금가는 것도 과거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일본은 작은 나라이지만 과거학(科擧學)이 없기 때문에 문학은 구이(九夷·9개의 오랑캐 나라) 중에 으뜸이고 무력(武力)은 중국과 맞먹는다. 나라의 기강이 정제되어 문란하지 않고 조리가 있으니, 이것이 그 효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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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과거라고 할 수 있는 행정고시(행시)는 사법고시와 함께 ‘보통 사람’이 공직 엘리트로 진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통로다. 학벌도 신분도 따지지 않는, 가장 공정한 방식이다. 그런데 행시가 크게 바뀔 예정이다. 최종적으로는 모집 정원의 절반을 면접과 서류심사를 통한 전문가 채용방식으로 뽑기로 했다. 선발의 공정성이 보장되겠느냐는 점에서 양반 자제들의 벼슬 진출 방식이었던 '음서제'의 폐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문가 채용 방식이 자칫 엽관제로 흐르면서 불신만 키울 수도 있다. 채용 과정의 투명성, 공정성을 높일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인재는 다양한 분야에서 배출되고 있고, 행정 분야에도 전문성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꼭 고시로 뽑아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시도(市道)의 법제 담당 부서는 변호사를, 회계부서는 공인회계사를 뽑는 게 분명 더 낫다. 중앙부처의 통상업무 사무관은 그 분야의 국제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면 더 좋을 것이다.
어느 조직에서든 ‘엘리트 공무원’으로, 또 ‘미래의 리더’로 통하던 고시 출신 공무원들은 서운할 것이다. 행시 제도의 변화가 '엘리트 공무원그룹'으로서의 위상에는 아무래도 부정적이다. ‘행정고시’ 명칭을 ‘공채5급’으로 바꾸기로 한 것은 사실상 행시 폐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이들에겐 더 서운하게 들릴 것이다.
행시 출신의 ‘쇠락’은 벌써부터 있어왔다. 특히 시도지사와 시장·군수·구청장이 선출직으로 바뀐 이후로는, 잘하면 40대에 차관, 50대에 장관을 바라볼 수 있다는 그들의 희망은 멀어진 지 오래다. 이런 환경 때문에 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공직을 중도에 떠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아졌다. 행시 출신 김영진 대전대 교수는 “고시 동기생 가운데 현직에 남아있는 사람은 30% 정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시, 충남도 등에서 근무중인 행시 출신 국장급 공무원 중에서도 벌써부터 ‘때가 되면 선거에 나가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도 이런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행시 폐지’는 실적 좋아하는 새 장관이 부임해서 ‘한 건’ 내놓은 것일 수도 있다. 허나, 행정고시든 사법고시든 한번 패스하면 평생 보장되는 시대가 가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그 변화는 불가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김학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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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용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