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 우리 본능의 편안한 가리개
악취 풍기는 '민폐 캐릭터'일 바에
차라리 존재감 없는 병풍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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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의 다른 중의법 하나는 남의 든든한 바람막이다. 직장에서나 정치권에서 누군가가 병풍을 자처하며 감싸준다면 인덕, 인복이 넘친다 할 것이다. '아무개는 아무개 병풍' 하며, 병풍 찾기 놀이를 하는 야속한 대중적 관심, 아니 무관심의 설움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경우다.
그럼 어떤 병풍이 될 것인가. 감을 잡기 위해 병풍의 본래 용도를 생각하자. 폼이나 분위기로 치지만 가리개나 칸막이 구실도 한다. 먹물이 안 튀게 벼루 머리에 치는 건 연병(硯屛)이다. 비단이불 깔고 병풍을 두르면 그윽한 베드룸이 된다. 이걸 치고 글 읊으면 서재, 손님 맞으면 살롱이 따로 없다. 암울한 우리 정치사에는 병풍 뒤에 가수가 숨어 노래하는 용도도 있었다던가.
예전에는 선정을 베풀고 떠나는 지방관에게 지역 유지들이 송덕병(頌德屛)을 만들어 줬다. 당 선종은 병풍에 옮겨 쓴 『정관정요』의 필독을 권유했고 청 건륭제는 흉년 참상을 그린 병풍을 받고 자극받아 금병에 황허 물을 담아 은저울로 재며 가뭄에 대비했다. 『서상기(西廂記)』의 삽화 병풍에서 앵앵은 장생의 연서를 읽고 홍랑은 엿보기의 기능을 맡는다(함께 등장하는 나비 한 쌍은 육신의 사랑, 연꽃은 순결이다).
사극 같은 데서 자객이 숨어드는 섬뜩한 공간이 또한 병풍이다. 선거철에 득표력을 위해 마구잡이로 '수집'하는 건 명망가 병풍이 되겠다. “물 넘치면 제방이 되고 바람 불면 병풍이 되겠다”는 병풍론으로 출세도 한다. 세상이 전(全)비어천가, 노()비어천가, 명(明)비어천가로 비트는 건 용비어천가 모독이다. 초반의 조상 미화 부분은 빼고, 용비어천가 125장 중 어느 한 장을 가슴으로 읽을 줄 안다면? 아마 임명장을 받은 사람들까지 장관이고 청장이고 내던진다 할지 모른다.
논산 노성면에 가면 이즈음 배롱나무 빛깔이 고운 윤증 고택이 있다. 그 집주인 윤증은 임금이 마흔 번 넘게 벼슬을 권해도 마다했다. 소론의 영도자로서 죽어도 '탕평인사' 병풍은 아니 되겠다는 결연한 명분론에서였다. 툭하면 내각 전면 쇄신과 탕평인사를 부르짖는 요즘 야당들도 머쓱해질 대목이다.
대통령도 그렇다. 내각을 의전용 어좌병풍쯤으로 아나 싶을 정도로 지지자든 안티든 모두를 뜨악하게 했다. 조선왕조실록 졸기(卒記)를 보면 '…가 졸했다'로 시작해 생전의 공과를 신랄하게 적고 있다. 앞으로 새로 청문회에 나설 총리·장관 후보자들은 사후에 졸기나 관보 같은 기록물에 공식적으로 삶의 궤적을 적는다 할 때 부끄럽지 않을 자신 있겠는가. 밥그릇 축내는 반식장관(伴食長官)이나 하려면 여덟 첩, 열두 첩 병풍을 쳐준대도 자리를 사양해야 옳다.
친정(親政) 체제 강화를 의미하는, “측근으로 병풍 친 인사”라는 주장은 작년 2월 2기 내각 인사 때도 불거졌다. KKK·S라인, 고소영·강부자 내각 비아냥을 듣던 1기 내각 때 바로잡았으면 오늘 이런 실책은 없었다. '죄송 내각', '비듬장관' 신조어는 몰라도 좋았다. 낡은 병풍을 자꾸 펼쳐 드니 후보자가 줄줄이 낙마하고 3기 내각 인선 과정이 이렇게 길고 험난하다.
도덕성을 우선시한다는 후임 후보자 인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적격자를 안 걸러진 노폐물처럼 안고 가는 부담을 조금은 덜었지만 더 큰 부담이 기다린다. 무난함만 좇는 나머지 병풍 같은 무관심, 사물과의 어떤 조응도 포기하는 그런 인사가 나타날까 두렵다. '소장수 아들' 김태호 낙마의 결정적 한방이 '거짓말'이듯이 지금의 정치는 정책 논리보다 이미지에 더 좌우된다. 야당과 언론을 막을 병풍이 없어서가 아닌 것이다.
병풍 이미지의 승화로 존재감을 키우는 것도 정치적 기술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명박 내각 3기, 집권 후반기는 구멍 뚫린 '민폐 병풍' 캐릭터로 가지 않길 바란다. 병풍에 막힌 주체의 인식이거나 병풍 뒤의 향기롭지 못한 행태는 나무에 부은 독(毒)이나 다름없다. 세상에서 주체를 분리시키고 대상 사이의 일체감을 해체하는 일이 병풍의 마지막 용도다. 정치에서는 제일 나쁜 유형의 병풍이다. '민심'이라는 이름의 병풍이면 혹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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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