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전통문화 현장, 인산솟대마을①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전통문화 현장, 인산솟대마을①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8-05-1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솟대
화사한 햇살이 파란 하늘 품에 안겨 활개 치고, 생명력 충만한 풋풋한 산야가 반기는 나들이, 말주변 없는 사람이 뭐라 표현하기 벅차더군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 이란 피천득의 시구,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5월'이라 한 이해인의 절창, '나는 풀로, 너는 꽃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피어나는 오월'이라 한 김영랑 노래가 저절로 이해되고 마음에 와 닿는 날이었지요. 싱그러운 지난 주말 인산솟대마을(대표 김익열)을 찾았습니다. 참으로 따뜻하게 환영해 주더군요. 인산솟대마을은 대전 동구 대별동에 있습니다.

시내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대표 설명 듣다가 문득 드는 생각, 농경사회에는 이웃 왕래가 많았지요. 놀 때 혼자 놀 수 없으니, 어른이나 애나 마실 많이 다녔습니다. 농기구 비롯한 살림살이 다 갖추고 살기 어렵다보니, 서로 빌려 쓰느라 오가기도 하고, 품앗이 하느라 네 집 내 집 스스럼없이 넘나들지요. 좀 과장되게 말하면, 가가호호 숟가락 개수 알정도가 되었습니다. 도시 생활은 이웃과 왕래가 없지요. 맞닿은 바로 옆집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겉도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저 멀리 해외여행은 주살나게 다녀도 가까운 이웃은 등대고 사는 실정입니다.



예전 마을은 교류가 많은 것을 넘어 공동운명체였지요. 모든 것을 함께 생각하고 더불어 행동합니다.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도시생활이나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생각합니다. 쓰레기 처리나 주차 같은 아주 작은 일부터 커다란 일까지 섬세하게 연결되어있지요. 너무 잘 짜여 있어 인식하지 못 하거나 소홀히 대하고 지낼 뿐입니다. 변함없이 모든 집단에 공동체의식, 공공의식이 필요 하지요.

동네 이름 또는 영역을 알리는 표식이나 상징물, 다른 마을에 이르는 거리표시, 외부에 대한 방어 장치, 마을을 질병이나 천재로부터 보호하고, 평안과 번영을 추구하는 집단의식이 담긴 형상, 염원을 담거나 신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기원물, 영광과 그 영광의 지속을 바라는 기념물 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군가 만들어 세우지요. 예전엔 모두 자연부락에서 함께 만들었답니다. 아직 전하여지는 서낭당, 솟대, 장승, 신목, 거석 등이 그것입니다. 사찰 당간도 그에 해당하겠군요.



장승마을, 솟대마을 등 전국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지역에도 다수 있지요. 형태에 남아있는 상징성이나 철학, 해학 등 그에 담긴 의미와 미감을 한꺼번에 즐기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경우에 따라 전문인이 만든 창작물이 주가 된 전시장도 있더군요. 그때는 전시 의도가 달라야 합니다. 전통의식이나 집단의식을 전하는 것이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형문화재가 전시장에 서는 순간, 보여주기 위한 형태가 되지요. 박제된 문화가 되는 것이 안타깝지요. 살아있는 문화가 아니라 죽은 문화 또는 창작 예술이 되고 맙니다. 인산솟대마을 또한 전시물이 많지요. 하나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지형지물을 그대로 활용,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공존시켜, 살아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돋보이더군요.

문화 현장을 찾아내 그대로 보전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입구 모습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거석이 올라있는 커다란 바위아래 언월도偃月刀가 꽂혀있는가 하면, 장승과 솟대가 서있고, 마을 상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방색천이 감긴 거석을 지나 남근석과 여근석이 있기도 하고, 용바위, 거북바위, 신선바위, 자라바위, 동자바위, 산신바위 등이 비탈길 따라 도열해 있습니다. 주저리주저리 담긴 전설과 삶의 흔적을 찾아내고, 새로운 전설과 신화를 창조하려는 김익열 대표의 상상력도 대단하더군요. 압권은 꽤 큰 규모의 천연동굴입니다. 아직 작지만 석순이 자라고 있고, 상당량 물이 솟아 동굴 안을 흐르고 있습니다. 소리가 없어도 동굴에 가득 담긴 이야기가 절절히 전해옵니다.

유형문화재도 중요하겠으나 거기에 담긴 정신문화가 더 중요하다 생각하지요. 따라서 제작과 설치 과정도 중요합니다. 집단의 의기를 모으는 사전 작업, 제주나 주사 선정 등 조직구성 절차도 중요하지요. 선정된 사람은 목욕재계하고 삼칠일간 금기를 지키며, 소재도 극진히 대우하여 온갖 정성과 공을 들입니다. 모은 뜻으로 함께 작업하고 제를 올리지요. 자연스레 집단의식이 만들어지고 공유하며 나눕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더불어 사는 참모습이 스스로 형성됩니다. 거기에 꿈이 만들어지고 야망이 자랍니다. 인산솟대마을은 그런 소중한 의식체험도 준비하고 있더군요.

이웃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좋은 문화현장도 만나보면 어떨까 해서 소개합니다. 귀하고 소중한 것이 멀리에만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 섬이 되어가는 세태, 동서양이 다른 만큼이나 이웃이 다르기도 하답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경기 프리미엄버스 P9603번 운행개시
  2. [기획] 의정부시, 우리동네 정책로드맵 ‘장암동편’
  3. 유성복합터미널 3개사 공동운영체 출범…터미널·정류소 흡수·통합 본격화
  4. 첫 대전시청사 복원활용 탄력 붙는다
  5. 누리호 4차 발사 D-4… 국민 성공기원 분위기 고조
  1. '세종시=행정수도' 진원지, 국가상징구역...공모작 살펴보니
  2. 충남도 청렴 파트너 '제8기 도민감사관' 출범
  3. 헌법파괴 비윤리적 2025 인구주택총조사 국가데이터처 규탄 기자회견
  4. '최대 30만 원 환급' 상생페이백, 아직 신청 안 하셨어요?
  5. 홀트대전한부모가족복지상담소, 대전아동기관단체와 협약

헤드라인 뉴스


대출에 짓눌린 대전 자영업계…폐업률 6대 광역시 중 두번째

대출에 짓눌린 대전 자영업계…폐업률 6대 광역시 중 두번째

대전지역 자영업자들이 극심한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잇따라 폐업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도소매업의 경우 대출 증가와 폐업률 상승이 두드러지면서, 이들을 위한 금융 리스크 관리와 맞춤형 정책 지원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24일 한국은행 대전세종충남본부가 발표한 '대전지역 자영업 현황 및 잠재 리스크 점검'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기준 대전지역 자영업자 수는 15만 3000명으로 집계됐다. 2023년 이후 감소세를 보인 다른 광역시와 달리 대전의 자영업 규모는 오히려 확대되는 추세다. 전체 취업자 수 대비 자영업자가 차..

갑천에서 18홀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물의… 대전시, 체육단체장 경찰 고발
갑천에서 18홀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물의… 대전시, 체육단체장 경찰 고발

대전 유성구파크골프협회가 맹꽁이와 삵이 서식하는 갑천 하천변에서 사전 허가 없이 골프장 조성 공사를 강행하다 경찰에 고발당했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나무를 심으려 굴착기를 동원해 임의로 천변을 파내는 중에 경찰이 출동해 공사가 중단됐는데, 협회에서는 이곳이 근린친수구역으로 사전 하천점용허가가 없어도 되고 불법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24일 대전시하천관리사업소와 대전충남녹색연합에 따르면, 유성구 탑립동 용신교 일대의 갑천변에서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굴착기가 땅을 헤집는 공사가 이뤄졌다. 대덕테크노밸리에서 대덕구 상서동으로 넘어..

세종 도시재생 `컨트롤타워` 생긴다… 본보 지적에 후속대책
세종 도시재생 '컨트롤타워' 생긴다… 본보 지적에 후속대책

<속보>=세종시 도시재생사업을 총괄 운영할 '컨트롤타워'가 내년 상반기 내 설립될 예정이다. 국비 지원 중단 등 재정난 속 17개 주민 거점시설에 대한 관리·운영 부실 문제를 지적한 중도일보 보도에 후속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중도일보 11월 19일자 4면 보도> 세종시는 24일 오전 10시 기자간담회를 통해 도시재생 사업의 주민 거점시설 운영 현황과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본보는 10년 차 세종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광역도시재생지원센터와 현장지원센터 5곳이 폐쇄한 작금의 현실을 고발하며, 1000억 원에 달하는 혈세 투입..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주렁주렁 ‘감 따기’ 주렁주렁 ‘감 따기’

  • 대전 불꽃쇼 기간 도로 통제 안내 대전 불꽃쇼 기간 도로 통제 안내

  •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