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도시공간의 민주화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도시공간의 민주화

송복섭 한밭대 건축공학과 교수

  • 승인 2019-06-24 08:17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2019012801002382700105851
송복섭 교수
상가가 즐비한 도로변 불법주차를 막기 위해 언제부턴가 주황색의 차선규제봉이라는 것이 설치되었다. 차량과 부딪혀도 훼손이 덜 되도록 탄력 있는 재료로 만들어졌는데, 그 조차도 무시하고 주차하거나 누군가는 고의로 잘라버리는 일이 생기자 무단횡단 금지펜스라는 이름으로 중앙선에 큼지막한 울타리 같은 구조물이 등장했다.

그나마 넓지 않던 2차선 도로가 둘로 나뉘어 거리는 좁게 느껴지고 상가는 시각적으로나 기능적으로도 이쪽과 저쪽이 완전히 분리되었다. 이 모두가 무단횡단 또는 불법주차를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이해된다.



과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불법주차는 계도로 극복될 문제이고 필요할 경우 카메라 단속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단횡단은 상황에 따라 다른 규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간선도로는 차량소통이 우선권을 가지므로 횡단보도와 신호체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생활가로 또는 상가가 밀집한 거리는 보행자가 우선이기에 굳이 횡단보도가 아니어도 언제든 편리하게 길을 건널 수 있어야 한다. 2차선의 좁은 도로에서 빨리 달리는 차로부터 사람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이유로 가운데에 펜스를 설치하는 일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 간다.



횡단보도 근처 보도 입구에 자동차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하는 볼라드(길말뚝)도 문제다. 예전에는 누가 함부로 옮기지 못하도록 무거운 화강석으로 제작되었는데, 낮은 높이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다 보니 오히려 보행에 위험한 걸림돌이 되었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대인지뢰'라 불리며 조심해야 할 위험물로 꼽힌다고 한다. 다행히 최근에는 많은 곳에서 얇고 길쭉한 기둥 모양으로 교체되고 있다.

교차로와 횡단보도에 신호등 운영을 담당한다는 교통신호 제어기도 대표적인 장애물로 꼽힌다. 바쁜 출근길 굳이 교통경관이 나서서 임의로 신호를 조작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큼직한 등치에 좁은 인도 한편을 차지하고 통행에 걸림돌 역할 하는 것을 보면 불편한 생각이 앞선다.

첨단시대 관제센터에서 모니터를 지켜보며 원격으로 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는지, 아니면 교통신호 제어기를 선진국처럼 얇고 작게는 만들 수 없는 건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보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협의를 통해 인접건물에 붙여 집적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일이다.

도심을 제외하고 요즘 웬만한 교차로에서는 로터리방식이 일반화되었다. 신호등방식의 경우 급정거에 의한 사고위험성과 보행자가 거의 없는 심야시간대의 비효율적 교통처리 대안으로 로터리방식으로 바뀐 것인데 인문학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기계가 인간을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설정하는 질서에 의해 움직이는 방식으로 전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호등방식의 경우 교차로에서 운전자들은 긴장한 상태로 출발신호를 기다리다가 경쟁하듯 튀어나가며 혹에라도 옆 차로에서 꼬리물기라도 할라치면 짜증을 토해내는 모습은 마치 기계가 인간을 거리에 검투사로 내몬 듯한 인상을 받는다. 로터리방식은 교차로에서 지속적으로 다른 차들과 소통하며 인간이 주도하는 양보가 최선인 상황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나는 이를 도시공간의 민주화라 부르고 싶다.

이렇듯 도시공간에는 인간을 압제하는 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 장벽 같은 무단횡단 금지펜스나 육중한 몸집의 화강석 볼라드, 보행을 방해하는 각종 지장물을 보면 나는 사람 위에 군림하고 통제하려는 가상의 독재자가 떠오른다. 도시공간의 불편을 초래하는 시스템과 지장물은 부지불식간에 도시민을 압제하는 요소들이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참고 견딜 것이 아니라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 하고 적극적인 요구를 통해 편리하고 행복한 도시 삶을 쟁취해야 한다. 도시공간의 민주화운동을 전개할 때다.

송복섭 한밭대 건축공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6년 부동산 제도 달라지는 것은?
  2. 李대통령 대전충남 與의원 18일 만난다…통합 로드맵 나오나
  3. 대전에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 글로벌 AX 혁신도시 거듭
  4. "내년 대전교육감 선거 진보 단일후보 필요"… 대전 시민단체 한목소리
  5. "초고압 송전설로 신설 백지화를" 대전시민단체 기자회견서 요구
  1. 대전권 9개 대학 주최 공모전서 목원대 유학생들 수상 영예
  2. 박정현 "기존 특별법, 죽도 밥도 안돼"… 여권 주도 '충청통합' 추진 의지
  3. 충남개발공사 '고객만족경영시스템' 국제표준 인증 획득
  4. [부고]김창세 세무사 빙모상
  5. 대청호 조류경보 발생 139일만에 전부 해제

헤드라인 뉴스


李 "내년 지선 때 대전 충남 통합 단체장 뽑아야"

李 "내년 지선 때 대전 충남 통합 단체장 뽑아야"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대전 충남 통합과 관련 "다가오는 지방선거에 통합된 자치단체의 새로운 장을 뽑을 수 있게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행정 조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전 충남 의원들과 가진 오찬에서 "수도권 과밀화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시·도간) 통합을 고려해 봐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청권 최대 이슈로 떠오른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해 국정 최고책임자가 사실상 전폭 지원사격을 약속한..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청양 목면초등학교 4학년 김가율 학생이 2025 충남 재난 안전 퀴즈왕에 등극했다. 충청남도, 중도일보가 주최하고, 충남교육청, 충남경찰청이 후원한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이 18일 예산 윤봉길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번 골든벨은 충남 15개 시군 퀴즈왕에 등극한 학생 및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모여 충남 퀴즈왕에 도전하는 자리로, 272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행사엔 전형식 충남도 정무부지사, 남도현 충남교육청 기획국장, 김택중 예산부군수,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 최재헌 중도일보 내포본부장 등이 참석해 퀴즈왕..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과 보령 소재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H5형)가 잇따라 발생했다. 충남도에 따르면 17일 충남 보령시 청소면, 천안시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폐사가 증가한다는 신고가 접수돼 동물위생시험소가 확인에 나섰다. 충남 동물위생시험소가 18일 확인한 결과, H5형이 검출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고병원성 여부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결과는 1~3일가량 소요될 예정이다. 성환읍 소재 농장은 과거 4차례 발생한 사례가 있고, 청소면 농장은 2022년 1차례 발생한 바 있다. 현재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사육 중인 가금류 22..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