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 응답하라! 추억의 연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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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 응답하라! 추억의 연탄 한 장

  • 승인 2015-12-17 10:58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사진=tvN 응답하라 1988
▲사진=tvN 응답하라 1988


‘아아~ 부르스 부르스 부르스 연주자여~ 그 음악을 멈추지 말아요~.’ 퍽! 얼굴이 불콰하게 취기가 오른 성동일이 골목 어귀에 버려진 연탄재를 발로 차며 유행가를 불러제낀다. 시인 안도현이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는 연탄 한 장의 숭고함을, 성동일은 한 번의 발길질로 소시민의 애환을 날려버린다. ‘응답하라 1988’은 각박해진 세태에 지친 사람들에게 지난 날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위무한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앞만 보고 달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그래도 사람 사는 세상은 이런 게 아니지 않은가 일침을 놓는 것 같아 뜨끔해진다.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지 못하면 이 힘든 세상 어떻게 살아’라는 카피같은 문구가 절로 떠오르게 하는 ‘응팔’은 ‘한 덩이 재로 씁쓸하게 남는’ 연탄에 대한 추억을 곱씹게 한다. 기름보일러나 도시가스 난방이 주종이 돼버린 지금, 연탄은 ‘그때 그시절’의 나른한 향취마저 띤다. 찬바람이 불면 연탄부터 들이던 기억, 용달차로 리어카로 온 몸이 까매진 연탄집 아저씨가 연탄을 나르던 기억. 그리고 연탄 두 개가 딱 붙어 코를 쥐어막고 부엌칼로 떼어내던 기억.
 
 
#허름한 자취방과 함께한 연탄과의 고군분투기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대학 졸업하고 신문사 입사해서 자취생활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입사 통지서 받고 서둘러 방을 구해야 했다. 일단 회사와 가까운 대흥동 주택가로 정하고 하루 날 잡아 이집저집 둘러봤다. 간신히 보증금 낀 허름한 월세방 하나를 얻었다. 1991년 12월이었다. 본채 옆에 날림으로 지어진 슬래브건물의 그 자취방에서 장장 5년을 살았다. 당시만 해도 일반 주택가는 난방연료로 연탄을 사용했다. 한겨울 가난한 서민들의 추위를 녹여주던 연탄. 그런데 그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고 계속 유지하는 게 나에겐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연탄불이 꺼져 다시 살릴라치면 한바탕 북새통을 떨어야 한다. 처음 한동안은 요령을 몰라 번개탄을 몇 개 피우고도 결국 불을 지피지 못해 그냥 출근하기도 했다. 한밤중에 꺼지면 그거야말로 낭패다. 밤새 냉골에서 이불을 둘둘 말고 덜덜 떨며 잔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느해 3월쯤이었을 거다. 후배랑 놀다가 걔네 집에서 자고 다음날 집에 와보니 맙소사! 연탄불은 이미 꺼져 있고 아랫목에 깔아놓은 이불이 물에 흥건하게 젖어 있는게 아닌가. 전날 밤 내린 빗물이 천장에서 샌 것이다. 아, 비루한 자취생활의 서러움이여! 연탄 가는 게 버거워 기름 보일러 있는 집으로 이사하려 했으나 번번이 주저 앉았다. 집주인이 보증금 빼주며 “보증금 여기 있수. 잘가요” 이런 거 절대 없다. 세입자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놓고 나가야 한다.

  굴 속같은 화장실(물론 재래식)도 뚝 떨어져 한밤중에 가려면 큰맘 먹고 가야되고 변변한 부엌도 갖춰지지 않아, 설거지도 공동수도에서 해야 하는 곳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주인 할머니와 언성 높이며 싸워도 봤다. 처음 방을 구할 때 할머니가 어찌나 상냥하고 만면에 자애로운 미소를 띠며 말씀도 조근조근하게 하시는 지, 난 두말 않고 계약해 버렸다. 그 대가로 할머니의 어이없는 갑질을 뻔히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집없는 설움을 겪었다. 이사하면 저 마귀같은 할머니와 상종을 안겠다고 별렀지만, 막상 그 동네 다른 집으로 이사하고 나선 인사도 하고 잘 지내는 사이가 됐다. 얄궂게도 안 좋은 기억은 다 잊혀지더란 말이다.
 
#각박한 현실, 연탄 한 장은 지나간 시절의 향수

▲사진=tvN 응답하라 1988
▲사진=tvN 응답하라 1988
 
연탄불의 푸르고 붉은 빛은 생명의 불꽃이기도 했다. 70년대 엄혹한 군사독재하에서 재야운동을 하며 도피생활을 하던 김근태씨에게 연탄은 가난과 핍박의 상징이었다. 수배당해 집을 떠나 있던 시절의 크리스마스 이브 날, 그의 부인과 아들은 연탄가스를 마셨다가 친구들에게 발견돼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누군가의 외로움과 추위를 녹여주는 연탄이 지금은 생활고로, 삶의 의지가 꺾여 생을 마감하는데 쓰이는 수단이 돼 가슴아픈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생명의 불꽃 속에 소멸의 아이러니가 이토록 잔인하게 숨어 있다니….

  땅에서 아득히 먼 허공에 뜬 고립무원의 아파트에서의 지금의 삶은, 완벽하게 안전하고 편리하다. 그러나 그 삶은 생각해 보면 온기없고 맨숭맨숭하기만 하다. 카세트라디오에서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전기밥솥의 밥이 뜸들기를 기다리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설렘이 가득했던 질풍노도의 시절. 연탄가스 냄새와 악다구니 치던 동네 아줌마들의 소리가 끊이지 않던 그 시절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시절이 각박할수록 우리는 연탄 한 장에 대한 추억을 끊임없이 호출할 것이다.
 
우난순 지방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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