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사자성어] 137. 고미존미(古味存味)

  • 문화
  • 인생 사자성어

[인생은 사자성어] 137. 고미존미(古味存味)

사는 건 여전히 헛헛하지만

  • 승인 2016-10-23 00:02
  • 홍경석홍경석
▲ 영화 변호인 중 한장면
▲ 영화 변호인 중 한장면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 풍진 세상을 살아나가는 게 힘들다고 한다. 이는 부자와 빈자라고 해서 별반 차이가 없다. 부자는 돈과 재물까지 많으니 행복할 것이라고 예단한다. 그러나 그들도 알고 보면 그리 행복하진 않다고 한다.

재산이 많은 만큼 부모(혹은 당사자)의 유산과 재산의 분배를 둘러싼 자녀들의 다툼이 심각한 지경인 집안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반면 빈자는 빚에 쫓기고 각종의 생활고에도 힘이 부치도록 어렵다. 따라서 필자처럼 직업이 박봉의 필부라고 한다면 그 빈도는 더하다.

때문에 이의 상쇄와 불식 차원에서 일찍부터 알바와 투잡에 이어 쓰리잡까지 해왔다. 초등학생 시절, 같은 동네서 다리미 월부장사를 하는 아저씨가 계셨다. 겨울방학을 맞아 하루는 그 아저씨를 따라 병천장에 따라나섰다.

그렇지만 하루 종일 다리미를 팔지 못 한 까닭에 점심은커녕 풀빵 하나조차 먹지 못 하여 그야말로 아사(餓死)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등에 진 다섯 개의 다리미가 천근만근으로 느껴짐은 당연지사의 고통이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 겨우 한 대 팔았다며 허겁지겁 달려온 아저씨는 순대국밥을 사주셨다. 한데 그 국밥을 먹으면서 눈물은 또 왜 그렇게 줄줄 흐르던지 곰살궂은 맛의 순대국밥은 전통적인 고미(古味), 즉 오래된 맛을 자랑한다.

가격도 비교적 착하여 서민들의 술안주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자면 이 음식이 나로선 고미(苦味)까지 되는 셈이다. 징그럽게 더웠던 여름이 달아나고 아침저녁으론 옷깃을 여며야 하는 계절이다. 따라서 자연스레 뜨거운 음식이 그리워진다.

중앙시장에 가면 소머리국밥을 잘 하는 집이 있다. 주인장의 인심도 넉넉하여 그 국밥에 들어가는 고기의 양도 만만찮다. 고기와 국밥보다 술의 탐닉에 열중하다보면 어느새 국밥이 차가워진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손만 번쩍 들면 손님들 곁을 분주히 왕래하는 아주머니가 냉큼 토렴을 해주시는 때문이다. 위에서 세상 사람들의 거개는 비슷하게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삶의 전진을 멈춘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은 생이 다하는 날까지 쉬지 않고 돌아가는 물레방아와도 같은 운명인 때문이다. 퇴근길에 지인이나 친구와 마주 앉아 순대국밥이든 소머리국밥에 소주를 나누다 보면 하루의 피로가 풀린다.

물론 그 자리에선 평소 쏘개질 따위로 분란을 일으키는 직장동료의 흉을 보는 것도 ‘허용된다’.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의 가사 중에 “누구는 양주 먹고 누구는 소주 먹고…”라는 구절이 있다.

부자는 양주를 먹되 우리 같은 서민은 소주를 먹으면 된다. 사는 건 여전히 헛헛하지만 그래도 우리 곁엔 순대국밥과 소머리국밥에 더하여 소주까지 있으니 안심이다.

더욱이 그 국밥들은 예전부터의 맛을 여전히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고미존미(古味存味)여서 더욱 위안이 된다. 오늘처럼 스산하고 마음까지 적적한 날엔 금상첨화의 음식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중수청, 세종 임시 개청 후 옛 대전세무서 부지로 이전 추진
  2. 당진시, 청주국제공항 직통 고속버스 신규 운행… 대중교통 이용 편의 대폭 향상
  3. 칠곡 왜관철교, 주민들 쉼터 역할
  4. [르포] 선풍기도 없는 40.2도 정산부스… 폭염 속 공영주차장 근로자
  5. 돌아오는 온통대전…자치구 지역화폐와 연계·통합 가능할까
  1. 음주운전 사고 후 경찰관까지 폭행한 60대… 차량 압수
  2. 대덕특구 공동관리아파트 R&D 맞춤형 심사 대상될까…예타 폐지 새기회
  3. 금감원·검찰 사칭… 전국 돌며 1억5400만원 수거한 보이스피싱 수거책 검거
  4. 대전출입국·외국인사무소, 외국인 불법 라이더 무더기 적발
  5. 창립 56년 맞은 국방과학연구소 "자주국방 완수에 헌신"

헤드라인 뉴스


정부 `산업용 전기료 차등`에 대전 산업계 `촉각`

정부 '산업용 전기료 차등'에 대전 산업계 '촉각'

정부가 산업용 전기요금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대전지역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차등 적용의 주요 기준 가운데 전력자립도가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지역별 전력수급 여건을 반영한 산업용 전기요금 차등제를 올 하반기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전력자립도와 송전비용, 국가균형발전 등을 고려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이달 중 공청회를 거쳐 권역 구분과 요금 차등 폭을 확정할 예정이다..

李 `육사 군사쿠데타 강력 성토`… 통합사관학교 강력 추진 지시
李 '육사 군사쿠데타 강력 성토'… 통합사관학교 강력 추진 지시

이재명 대통령은 5일 "군사 쿠데타를 무려 세 번이나 한 중심이 육사인데도 한 번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며 대전 유성구 자운대에 신속하고 강력한 '국군사관학교' 창설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방부와 외교부, 통일부, 국가보훈부 업무보고에서 "지금까지 대한민국 군사 쿠데타가 몇 번 있었나. 다 육군에서 벌어진 일 아닌가.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한 일인데, 거기에 대해 책임을 물은 일이 있나"라며 통합사관학교 반대를 주도하는 육사를 성토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과 관련해 논의하던..

현금만 쓰고, 옷까지 버린 보이스피싱범 안잡힐 줄 알았지? (영상)
현금만 쓰고, 옷까지 버린 보이스피싱범 안잡힐 줄 알았지? (영상)

현금만 쓰고 금융감독원과 검찰을 사칭해 어르신들의 현금을 훔쳐 달아난 20대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대전서부경찰서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특별법 위반 혐의로 20대 여성 A씨를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습다. A씨는 지난 5월 대전 서구의 한 주택가 우편함에서 70대 피해자가 넣은 현금 1,000만 원을 수거하는 등 전국을 돌며 총 7회에 걸쳐 약 1억 5,4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A씨는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교통카드를 수시로 교체하고, 모텔에서 1박씩 투숙하며 옷을 바꿔 입는 등 치밀하게 이동했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청권 식수원을 보호하라’…대청호 녹조 제거하는 방제선 ‘충청권 식수원을 보호하라’…대청호 녹조 제거하는 방제선

  • ‘전문 간호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전문 간호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 폭염에 도로 위 피어오른 ‘아지랑이’ 폭염에 도로 위 피어오른 ‘아지랑이’

  • ‘폭염에도 일을 쉴 수 없어요’ ‘폭염에도 일을 쉴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