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3. 매국노 이완용이 미국유학을 안 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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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3. 매국노 이완용이 미국유학을 안 했더라면

잘못 배운 지식은 되레 화로 반동한다

  • 승인 2017-12-1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이완용
이완용(李完用)은 한말(韓末) '을사5적신'의 한 사람이다. 을사5적신은 우리의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조약에 찬성하고 서명한 다섯 명의 대신들을 일컫는데 '을사오적'으로도 거론된다.

이들은 학부대신 이완용을 필두로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다. 이중 이완용은 일본에 우리나라를 팔아먹은 '최악의 매국노'로 불린다.



고종을 협박하여 을사조약 체결과 서명을 주도했고 의정부를 내각으로 고친 후 내각총리대신까지 된 때문이다. 헤이그 특사 사건 후엔 고종에게 책임을 추궁하여 물러날 것을 강요했고 총리대신의 자격으로 일본과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다.

1858년 6월 7일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에서 출생한 그는 집안이 가난하여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867년 10세 때, 친척이자 예방승지(禮房承旨)로 있던 이호준(李鎬俊)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형편이 천양지차로 달라졌다.



당시 후계자를 위해 가문에서 총명한 아이를 양자로 들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1886년 육영공원(育英公院)에 들어가 영어를 배운 뒤엔 응교(應敎), 세자시강원 겸 사서(司書)를 지냈다.

1887년 주차미국참사관(駐箚美國參事官)으로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후 이조참의(吏曹參議) 겸 전보국회판(電報局會辦), 외무참의(外務參議)를 역임하였다. 1888년 12월 고종의 명으로 미국공사관이 되어 다시 미국으로 갔다가 1890년 귀국하여 대사성(大司成)· 교환서총판(交換署總辦)을 역임하였다.

그는 미국의 개화된 문물을 접하고 개화파가 되었지만 조선 왕실에 대해선 개화를 주창하지 않았으며 유교와 전통사상을 고수했다. 이후 주미공사관 관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동구락부(貞洞俱樂部) 모임에 가담하여 구미인(歐美人)을 중심으로 친러파 세력이 결집되었으며 정동파(貞洞派) 수장으로 친일, 친청 세력을 견제하였다.

제2차 김홍집 내각이 와해되고 박정양(朴定陽)이 과도정부의 내각총리가 되자 이완용은 내무대신으로 발탁되었다. 박영효 등 개화파의 급진적인 정책에 반대하였으며 온건책을 견지하였다.

1895년 제3차 김홍집내각이 들어서자 학부대신(學部大臣)·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이 되었으며 성균관을 개편하고 소학교를 열어 근대적인 교육정책을 펼쳤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乙未事變)이 발생하자 친일내각의 적으로 지목되어 미국공사관으로 피신하였다.

대원군이 주도하는 제4차 친일파 김홍집내각이 들어서자 이완용은 해임되었다. 이완용은 미국공사관에 머물면서 감금된 고종황제를 궁궐 밖으로 탈출시켜 친러 내각의 복원을 시도하였고 결국 '춘생문(春生問)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춘생문사건'은 1895년(고종 32) 10월, 을미사변에 대한 반동으로 11월 28일에 명성황후계(閔妃系) 친미· 친러파의 관리와 군인에 의해 기도되었던 사건을 말한다. 을미사변 이후 친일정권에 포위되어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던 국왕 고종을 궁 밖으로 나오게 하여 친일정권을 타도하고 새 정권을 수립하려고 했던 참극이다.

이 사건은 시종원경(侍從院卿) 이재순(李載純)과 시종(侍從) 임최수(林最洙), 탁지부사계국장(度支部司計局長) 김재풍(金在?) 외에도 참령(參領) 이도철(李道徹)과 정위(正尉) 이민굉(李敏宏), 전의원(前議員) 이충구(李忠求),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안경수(安?壽) 등이 합작하고 모의하였다.

여기에 정동파(貞洞派) 관료 이범진(李範瑨)· 이윤용(李允用)· 이완용(李完用)· 윤웅렬(尹雄烈). 윤치호(尹致昊)· 이하영(李夏榮)· 민상호(閔商鎬)· 현흥택(玄興澤) 등이 호응하였다. 또 친위대 제1대대 소속 중대장 남만리(南萬里)와 제2대대 소속 중대장 이규홍(李奎泓) 이하 수십 명의 장교가 가담하였다.

1895년 11월 28일 새벽에 남만리와 이규홍 등의 중대장은 800명의 군인을 인솔, 안국동을 경유해 건춘문(建春門)에 이르러 입궐을 기도하였다. 뜻대로 안 되자 삼청동으로 올라가 춘생문에 이르러 담을 넘어 입궐하려 하였다.

그런데 이 계획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던 친위대 대대장 이진호(李軫鎬)가 배신해 미리 서리군부대신 어윤중(魚允中)에게 밀고하였다. 그리하여 쿠데타군이 춘생문에 나타나자 궁성 내의 친위부대가 즉각 반격을 가하고 또 어윤중이 직접 현장에 달려와 선무공작을 폄으로써 일부 쿠데타군이 체포되고 나머지는 도주하였다.

이 사건으로 체포된 임최수· 이도철은 사형, 이민굉· 이충구 등은 종신유배형, 이재순· 안경수· 김재풍·남만리 등은 태(笞) 100대, 징역 3년 등의 처벌을 각각 받았다. 한편, 거사가 실패하자 정동파 인사들은 재빨리 미국 및 러시아 공사관 또는 선교사 집으로 피신하였다.

일본 측은 이 사건에 서양인이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의도적으로 대서특필하였다. 또한 이를 기화로 히로시마(廣島)감옥에 수감 중이던 을미사변 관련 주모자들을 증거불충분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전원 석방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의 주동세력인 정동파는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俄館播遷)을 성사시켜 일시적이나마 일본세력을 물러나게 하였다. 이 '춘생문사건'에까지 연루된 바 있는 이완용은 급기야 1896년(건양 1년)엔 고종황제를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을 계획하였다.

이완용은 외부대신과 학부대신도 모자라 농상공부대신 서리까지를 겸직하였다. 따라서 당시 그의 위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치의 위풍당당(威風堂堂)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각종 이권을 요구하였는데 반해 독립협회가 이를 반대하면서 이완용은 이를 중재하려 하였지만 양쪽 모두에게 배척되었다.

1897년 내각에서 밀려나 평안남도 관찰사로 좌천되었다가 1898년 전라북도 관찰사로 임명된다. 1904년 러일전쟁(1904∼1905년에 만주와 한국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전쟁)이 일어나자 고종황제의 명으로 궁내부 특진관(宮內部特進官)으로 임명되었다.

고종황제는 미국공사관으로 피신하려 했지만 미국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은 가쓰라-데프트 밀약으로 필리핀과 조선에 대한 각각의 지배권을 인정하였다. 이완용은 이때부터 변절하여 친일파로 신분을 세탁했다.

1905년 학부대신이 되고, 같은 해 11월 18일엔 을사늑약의 체결을 지지, 솔선하여 서명함으로써 역사에까지 그 이름을 더욱 널리(?) 날리게 되었다. 이때 그의 적극성으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그해 12월엔 의정대신서리· 외부대신 서리를 겸직했다.

1907년 의정부 참정이 되었으며 의정부를 내각으로 고친 다음엔 통감(統監) 이토 히로부미의 추천으로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이 일어나자 일본의 지시대로 고종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양위(讓位)할 것을 강요, 순종을 즉위시켰다. 당시 수만 명의 군중들이 덕수궁으로 몰려가 이완용의 매국행위를 규탄하였고 그의 집은 군중들에 의해 불탔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주도대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에 서명하고 순종의 재가를 받았으며 이로써 인사, 입법, 행정 등 주요 권한을 일본에 이양하였다. 1909년 7월에는 이완용 단독으로 기유각서(己酉覺書)를 맺어 대한제국의 사법권마저 일본에 넘겨주었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되고, 그해 12월 이완용은 명동성당 앞에서 독립운동가 이재명(李在明)의 칼을 맞고 오른쪽 폐를 관통 당했지만 목숨은 건졌다. 1910년 8월 29일 총리대신으로 정부 전권위원(全權委員)이 되어 일본과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선통감부는 조선총독부로 명칭이 변경되고 데라우치가 초대 총독이 되었다. 이완용은 그 공으로 일본 정부에 의해 백작(伯爵)까지 되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이 되었고 1911년엔 조선귀족원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1920년 매일신보에 경고문을 발표하여 3.1운동을 비판한 공로로 1920년 후작(侯爵)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도 일본으로부터 남작의 지위를 받았다. 1926년 6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지금껏 장황하게 이완용의 일대기(一代記)를 살펴보았다. 그럼 여기서 '만약에?'의 돋보기를 들이대 보자. 이완용이 당시 그처럼 고종의 총애까지 받아가면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저변엔 신교육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주미공사를 역임하는 등의 학력이 뒷받침한 때문이었다.

따라서 만약에 이완용이 미국유학을 안 했고, 많이 배우지도 않았더라면 과연 그는 어찌 훗날엔 기어코 나라까지 팔아먹는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될 수 있었으랴. '눈 먼 자식이 효자노릇 한다'는 속담이 있다.

반면 머릿속에 먹물깨나 든 자식, 즉 많이 배운 자식은 고향을 떠나는 건 물론이요 결국엔 부모마저 저버리고 만다는 설도 그리 틀리진 않지 싶다. 이 말이 맞는 건, 대저 배우지 못한 자식은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면서 늙으신 부모님을 봉양하며 고향에서 살아가는 때문이다.

마치 못 생긴 나무가 푸른 산을 지키는 것처럼 그렇게. 천하에 다시없을 매국노 이완용을 보자면 "그릇된 지식을 경계해라. 그건 무지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한 영국의 극작가 겸 소설가였던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명언이 새삼 귓가를 맴돈다.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배신자' 이완용을 다시금 궁내부 특진관으로 임명한 고종의 사람을 잘 보는 눈이 결여되었던 부분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곧 잘못 배운 지식은 되레 커다란 화로 반동한다는 걸 증명하는 대목인 까닭이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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