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23. 장개석이 진작 부정부패를 막았더라면

  • 문화
  • 만약에

[만약에] 23. 장개석이 진작 부정부패를 막았더라면

권력이란 무엇인가?

  • 승인 2018-02-18 10:3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2월 13일 법원이 이른바 '비선실세' 최순실 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이처럼 중형을 내린 이유는 국정농단 사태와 함께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몰고 온 충격이 그만큼 엄중한 것이라는 의미일 터다.

최 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무려 18개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16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이처럼 최 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연유는 한 마디로 부정부패에 대한 사법부의 강력한 의지의 표출인 셈이다.



때문에 부정부패를 새삼 인식하고 이로 말미암은 적폐의 타파 차원에서 '장개석이 진작 부정부패를 막았더라면'이라는 요지의 글을 쓴다.



장제스는 그 이름을 한문으로 쓰면 장개석(蔣介石)이다.



장제스의 본명은 '장지칭(莊志淸)'인데 쑨원(孫文)을 따르기 시작한 후 '장중징(莊中正)'으로 개명했다. 중국 저장성 펑화현에서 1887년에 태어났다. 소금장수를 하던 아버지는 장제스가 여덟 살이던 189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그의 어머니는 유교적 예법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따라서 어린 장제스에게 행동 하나하나를 예법대로 하기를 강요했으며 조금만 어긋나도 가차 없이 매를 들었다.

1907년에 일본으로 가서 도쿄의 진무학교에 입학한 장제스는 사관생도 후보를 가르치는 이 학교를 다니며 쑨원과 그의 '삼민주의'를 알게 되었다. 1911년에 중국이 신해혁명을 맞자 장제스는 일본군을 그만두고 귀국했다. 이후 쑨원의 지시를 받아 일본과 만주, 러시아 등을 오가며 정세 파악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1924년, 쑨원은 그에게 황푸(黃?)군관학교를 세워 혁명을 추진할 군사 간부를 양성하도록 했다.

초대 교장에 취임한 장제스는 여기서 약 2년 만에 5천여 명의 교육생을 배출했고, 이들 중 상당수를 국민당과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향후 중국의 주도권을 잡을 기반을 닦아나갔다.

장제스는 소련 사람들을 접하면서 그들이 궁극적으로 중국을 포함한 세계의 공산화를 꿈꾸고 있다고 여겼다. 그로부터 국민당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면 좌익계 인사들을 배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1925년에 쑨원이 사망하자 국민당 내 좌익을 척결한 그는 국민당의 1인자로 떠올랐다. 군벌에 의해 분열된 중국을 하나로 통일한다는 명분을 내건 '북벌운동'을 본격 추진한 그는 하지만 공산당과 의기투합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제1차 국공합작을 기습적으로 파기하고 공산당의 주요 핵심간부들을 제거한다. 만주사변 이후 장제스는 일본과 대립하면서도 공산당의 척결에 게으르지 않았다. 위기를 느낀 마오쩌둥은 홍군(공산당부대)을 이끌고 그 유명한 대장정(大長征)의 고난 길에 나선다.

여기서 그 '대장정'의 험산준령을 잠시 되짚어보자. 말이 좋아 대장정이었지 기실 그 길은 엄청나게 끔찍한 과정의 지옥이었다. 그들은 식량마저 없었기에 구두와 혁대까지 삶아서 먹었다. 심지어 앞서 간 사람의 배설물을 물로 대충 헹군 뒤 소화가 안 되고 남은 곡물까지 입에 넣었다고 한다.

상황이 그처럼 최악이었음에도 홍군의 지도자들은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생활했다. 점령지에서도 약탈을 금지했고, 지역 토호와 지주들의 재산을 빈민들을 위한 토지개혁까지 실시했기에 대중의 지지까지 이끌어냈다.

이러한 용의주도(用意周到)가 결국엔 중국 공산당 입지 성공 안착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한편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그 즈음 만주의 군벌(軍閥)이었던 장쉐량(張學良)의 아버지를 일본이 죽인다.

이에 분기탱천한 그는 일본을 응징하려 했으나 정작 자국의 공산당 척결에 더 열심인 장제스에게 실망한다. 장제스의 국민당은 '양외필선안내'(攘外必先安內, 밖을 막으려면 안을 먼저 안정시켜야 한다) 정책을 고집하면서 일본보다는 홍군을 토벌하는 데 힘썼기 때문이다.

급기야 장쉐량은 '서안사변(西安事變)'으로 불리는 사건을 일으키는데 이로 말미암아 장제스가 구금된다. 장쉐량은 장제스를 독촉하여 공산당 토벌의 내전(內戰)을 중지하고 항일에 나서도록 압력을 가한다.

결국 장제스는 장쉐량의 의도대로 공산당과의 제2차 국공(國共)합작을 촉진시켜 항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장제스는 후일 장쉐량을 재판에 회부해 장기간 연금했다. 뿐만 아니라 1949년 공산당에게 쫓겨 대만으로 퇴각하면서도 그를 끌고 갔으니 이는 분명 그에게 당한 수모의 앙갚음이지 싶었다.

국민당 정부는 장쉐량의 고령을 감안해 자유를 줬는데 그는 곧바로 미국으로 가서 정착했다. 2001년 10월 15일 101세의 나이로 하와이 자택에서 사망한 걸로 보아 하늘은 그에게 항일(抗日)의 전과(戰果)를 이유로 천수(天壽)를 선물로 준 게 아닐까도 싶다.

장개석 (1)
장개석/출처=나무위키
장제스는 1945년에 전쟁이 끝나자 일본에 대해서 중국에 잔류하고 있던 일본군과 거류민을 안전하게 귀국시키고 대일배상 청구권과 분할 점령권까지 자진해서 포기한다. 이는 나름 "덕으로 원수를 갚는다(以德報怨)"는 정책을 취했다지만 중국인들의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지는 정책이었겠지 싶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1937년 중일전쟁 때 중국의 수도였던 난징(南京)을 점령한 일본군이 저지른 대규모 학살사건인 '난징대학살'은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났다. 학살과 강간, 방화 등을 저지른 그 사건에서 일본군에게 무려 약 30만 명의 중국인이 잔인하게 희생되었다고 한다.

강간 피해를 입은 여성의 수도 8만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당시 일제의 잔인성은 지금 생각해봐도 치가 떨릴 지경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뒤 1946년에 도쿄(東京)에서 극동국제군사재판이 열렸다.

여기서 일본 극우세력은 난징대학살 자체가 날조된 거짓이라고 주장하여 일본의 후안무치(厚顔無恥) 행태가 새삼 비판의 중심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 재판에서 난징대학살과 관련해서 당시 중지나방면군사령관(中支那方面軍司令官)이었던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를 사형에 처했다.

그러나 당시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이던 아사카 야스히코(朝香宮鳩彦王)는 왕족에게는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미국의 어처구니없는 방침에 따라 처벌에서 벗어나는 등 난징대학살의 책임자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장제스는 1948년에 중화민국 초대 총통에 취임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재정립했다. 하지만 중국 대륙에서 쫓겨나 대만으로 피신하는 신세가 된 그는 국민당 외의 정당 활동을 금지하는 등 철권통치로 27년간이나 집권했다.

그의 독재를 비판하는 당연론 외에 대만 통치에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 중국 본토에서는 미처 시도하지 못했던 사회개혁과 지도부의 심각한 부정부패로 대륙을 잃었다고 자책한 그는 1953년에 토지개혁을 실시한다.

그리곤 민중의 생활 안정과 자연스러운 공업화 토대 마련을 달성했다. 세법을 개정해서 산업자본과 복지예산을 확보했음은 물론 공교육 강화에도 힘을 쏟아 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물게 전 국민이 9년간 의무교육을 받는 체제를 수립했다.

아울러 부정부패를 엄히 단속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친인척까지 가차 없이 처벌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만이 이후 순조로운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네 마리의 작은 용들'의 하나로 불리게 된 데는 장제스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사람은 원래 실수를 잘 하는 동물이다. 그렇긴 하더라도 장지스가 중국에서의 공산당 척결 당시, 국민당의 부정부패를 진작 막았더라면 과연 그는 대만으로까지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을까? 우선 그의 최대 실책은 부정부패를 적절히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데서 기인한다.

진부한 얘기겠지만 대저 정권의 영속(永續)은 통치자가 어떤 마인드를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그 향배가 달라진다. 권력이란 결코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반드시 공익을 실현하고 아울러 국가의 번영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어야 함은 불문가지다.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공산당을 토벌하던 당시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다. 중국의 국공 내전 기간에 장개석 군대는 공산군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러나 그들의 공산군 토벌 작전은 계속 패배하고 실패하였는데 이는 장개석 군대의 부정부패에서 기인했다.

국민당 간부들은 미군이 원조한 무기와 탄약을 빼돌려 모택동 공산군에 팔아넘기는 사리사욕까지 취했다. 심지어 부대 이동 때는 일본군처럼 위안부들을 부대 후미에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뒤늦게나마 부정부패의 심각성을 깨달은 장제스는 이를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중국 공산화의 확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사후약방문이 되고 말았다. 만약에 장제스가 진작부터 부정부패를 용서치 않으며 마오쩌둥처럼 국민(인민)의 고혈을 짜는 따위의 가렴주구를 행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중국은 오늘날 민주국가가 되지 않았을까!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홍경석-인물-210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2.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3.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4.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5.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1.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2.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3. 대전 동구, '어린이 눈썰매장'… 24일 본격 개장
  4. 이대통령의 우주청 분리구조 언급에 대전 연구중심 역할 커질까
  5. [기고] 한화이글스 불꽃쇼와 무기산업의 도시 대전

헤드라인 뉴스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정부 10·15 정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 3단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유예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누적 매매가격 변동률(12월 8일 기준)을 보면, 수도권은 2.91% 오른 반면, 지방은 1.21%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8.06%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대전은 2.15% 하락했다. 가장 하락세가 큰 곳은 대구(-3...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12·3 비상계엄 사태에 적극 가담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충청 출신 인사들이 대거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한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은 180일간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15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노상원 등 충청 인사 기소=6월 18일 출범한 특검팀은 그동안 모두 249건의 사건을 접수해 215건을 처분하고 남은 34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넘겼다. 우선 윤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 ‘헌혈이 필요해’ ‘헌혈이 필요해’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