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새끼 키워봐야 소용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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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새끼 키워봐야 소용없어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19-10-11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아침 햇살의 광채가 유난히도 눈부시게 빛났다. 잠시 후에 오색찬란한 단풍의 연인 같은 칠보단장 무지개가 산을 가로질러 동공을 사로잡았다.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오후 1시쯤엔 심통이 난 듯한 날씨가 젖빛구름을 밀치고 새어나오는 눈물로 심술을 부렸다.

토요일이라서 축혼(祝婚) 집이 없는지 달력을 꼼꼼히 살폈다. 달력에 볼펜으로 지인의 자혼 표시가 있어 부랴부랴 승용차를 예식장으로 재촉했다. 여느 때는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예식장에 가서 혼주한테 인사를 하고 점심만 챙겨들고 오곤 했다. 헌데 그날은 바삐 서둘러야 할 어떤 일도 없었다. 바쁜 일이 없는 덕분에 결혼예식을 지켜보는 눈의 즐거움을 가졌다. 보통 예식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연출 같은 장면도 있었다. 드물게 보는 몇 폭의 진풍경은 눈에 쏘옥 들어오면서도 사람을 자성에 빠지게 하는 위력이 있었다. 크게 이상할 것도 없는 볼거리였지만 그것은 분명 음식 맛의 오감을 초월한, 감성을 자극하는 양념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사회자의 개식 선언을 기다렸다는 듯이 만면의 미소로 신랑이 입장을 했다.

이어서 인형처럼 예쁜 신부가 아버지 손을 잡고 터져 나오는 미소를 연신 흘리며 입장하고 있었다. 흡사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과도 같았다. 그런데 어쩐지 신부 아버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밝은 표정은 어디로 출장을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주례 앞에 서 있던 신랑이 마중 나와 아버지 손에 멈추고 있던 신부를 낚아채기라도 하듯 잽싸게 팔짱을 끼었다. 신랑에게 신부를 인계인수하는 순간 신부아버지는 참았던 눈물이 새어나왔다. 애지중지 키운 외동딸이 품안을 떠난다는 생각에 허탈감과 공허감으로 감성의 반란이 일어난 것 같았다. 딸의 손을 놓는 순간 아빠라는 사람은 기쁨보다는 딸을 빼앗긴다는 박탈감에 숨겨놓았던 그 소중한 것이 요동치며 새어나오고 있었다. 눈의 액체가 묽은 농도였던지 거기에다 못 다한 사랑까지 가미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하고 있었다.



시집가는 딸은 그렇게 좋은지 연신 터져 나올 듯한 미소를 흘리는 그 큰 입은 두 귀에 걸린 지 오래였다. 아버지 입장이나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딸인 것 같았다. 연신 싱글벙글하는 표정이 철딱서니 없는 어린애 같았다. 좋아하고 기뻐하는 표정을 아빠의 눈물 머금은 그 순간만은 피했으면 좋으련만 그걸 못하는 신부였다.

아빠의 표정이나 감정은 안중에도 없는 신부였다. 신부의 행동은 자신의 인형 같은 미모로 얻은 점수를 감점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몇 점 안 남은 점수가 안타까웠다. 철이 덜 나서였을까 아니면 기쁨을 참는 데는 익숙지 못한, 풋풋한 애송이였기 때문이었을까? 모르기는 하지만 좀 야속할 정도의 기분을 얹어 주는 신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새끼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한데 다행히도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다음은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식순이었다.

지금부터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도록 하겠다는 주례의 행동지시 구호가 떨어졌다.

신랑이 장인장모께 큰절로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신부는 드레스 덕분에 배꼽인사 공수로 예를 표했다.

큰절 인사를 받은 장모가 신랑을 보듬어 안아주고, 아버지가 딸을 포옹해주는 장면은 세상의 모든 평화와 사랑이 그리로 다 모여든 것 같았다.

이어서 신랑신부는 뒤로 돌아 신랑의 부모가 앉아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주례가 신랑 신부를 쳐다보며 부모님께 경례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신랑이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는데 신랑은 허리를 굽혀 경례를 했다.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장인장모께는 큰절로 인사를 올리더니 정작 자신의 부모님께는 배꼽인사 공수로 예를 표했다. 순간 그 광경을 빼놓지 않고 지켜보던 하객들이 여기저기서 수군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수군거리는 소리에 맞추어 그에 어울리는 후렴구가 튀어나왔다.

"새끼 키워봐야 소용없어."

신부 입장 때부터 누적시켰던 감정까지 가세하여 폭발음 없는 소리로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 한 마디에 싱글벙글하던 신랑 신부의 얼굴에 순간적인 기상 변화가 일어났다. 마냥 즐겁기만 했던 기분에 불청객 으로 나타난 구름이 나타나 훼방을 놓는 격이었다.

"새끼 키워봐야 소용없어."

신랑 신부는 그 소리가 왜 나왔는지 깨달았으면 한다. 사려 깊지 못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반응의 대가로 인식해 주었으면 한다.

이 한 마디는 신랑신부에게 언짢은, 투정이 아닌, 보석 같은 금과옥조가 되었으면 한다. 하찮은 말 한 마디 같지만 전광판의 섬광 같은 깨달음이 동반되었으면 한다.

"새끼 키워봐야 소용없어."

아침의 좋은 날씨가 구름으로 누수현상을 만들었어도 이 소리만은 꽁꽁 묶어놓았어야 했는데 …

아니, 마냥 좋은 날, 원앙 한 쌍한테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 남아 있어야 했는데…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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