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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미래전략연구센터장 |
특히, 일주일 넘게 호우가 계속된 탓에 산사태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 긴 장마 기간 강우에 의한 표면 유수 침식, 포화된 흙의 단위면적당 중량 증가 등이 주요 원인이다. 문제는 그동안 내린 많은 비로 인해 산악지대 토양의 포화 상태가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적은 양의 비에도 전국 어디서나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가정하게 한다.
많은 전문가는 기후변화 등으로 국지적 호우나 집중강우와 같은 극한 강수 위험이 매년 지속되고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상·하수도 배관을 우선적으로 정비하는 한편, 산사태 및 기후변화 연구 등을 확대하여 한반도 이상 기후 현상과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과학적 대비를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올해 유난히 자주 언급되는 산사태에 있어 우리나라의 조기경보 수준은 어느 정도될까? 시간당 최고 80㎜의 집중호우가 쏟아진 지난달 25일, 부산에서만 산사태 7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산사태 주의경보는 단 한 건도 울리지 않았다. 현재 산림청이 예고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토양이 감당할 수 있는 강우량 위주로만 산사태 가능성을 예측하다 보니 정확도에 한계가 있다. 주의보나 경고 역시 산사태 발생 1시간 전에서야 이루어져 밤늦은 시간 대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면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 발생은 얼마나 빨리 진행되는 걸까? 산사태 예측 모델링을 살펴보면 2~3분 내로 주변지역에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높이 300m 지점에서 시작된 산사태는 1분 만에 400m 떨어진 민가를 덮치고 곧바로 800m 떨어진 도로에 토사가 뒤덮인다. 예보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실상 넋 놓고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강우량뿐만 아니라 다양한 추가 변수를 감안한 '산사태 조기경보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지난달 25일 발표했다. 지리산 중턱에 센서를 설치하고 지난 3년 동안 집중호우가 내릴 때 토양의 변화를 추적했다. 토양 특성에 따른 수분 변화, 응집력, 산 경사도, 한일 기상레이더 정보를 3차원으로 결합해 '산사태 발생 공식'을 만들었다. 이를 실제 산사태가 발생한 상황에 대입한 결과 정확도가 90% 수준으로 분석됐다. 특히 1일 전 3시간 단위로 산사태 조기경보 발령이 가능하므로 피해위험지역 주민들이 대피하여 인명과 재산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 확보가 가능하다.
우리나라 전체 산지의 30%는 산사태 발생 위험 지역이고, 서울을 포함한 대도시의 17%도 산사태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2011년 우면산 산사태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지역의 산사태는 더 큰 피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연구원은 내년부터 서울·부산·대전 등 대도시를 대상으로 산사태 조기경보 시스템을 본격 적용하고 확대·고도화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지형 및 지반 조건에 최적화된 세계 최고 수준의 산사태 조기경보 기술 개발이 목표다. 또 산림청과 협업해 산사태 예측지도 작성 등을 통해 산사태 조기경보 기술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감염병과 장마가 동시에 덮치면서 우울에 갇힌 일상을 호소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는 뉴스는 마스크로 답답한 우리의 가슴을 더욱 조여 온다. 정상적인 외부활동 제약으로 '코로나 블루'에 이은 '장마 블루'까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필자는 위기 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해 온 과학기술의 힘을 믿는다. 코로나19를 물리칠 치료제와 백신, 산사태와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지켜줄 기술 개발을 위해 지금도 많은 대한민국 과학기술자들은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욱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미래전략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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