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세상에 머리 나쁜 큰 도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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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세상에 머리 나쁜 큰 도둑은 없다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 승인 2020-08-17 12:23
  • 신문게재 2020-08-18 19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이향배교수님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우리가 소설로 접한 임꺽정(林巨正)은 의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옛 문헌에 의하면 임꺽정은 명종 때 백성들에게 많은 피해를 끼친 강도에 불과하다. 박동량(朴東亮)의 기재잡기(寄齋雜記),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 등에 임꺽정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양주 백정 출신인 도적 임꺽정은 성격이 교활하고 행동도 날쌔고 용맹했다. 임꺽정은 따르는 도적들과 함께 민가를 불사르고 말과 소를 닥치는 대로 약탈했다.

조정에서는 뒤늦게 알고 임꺽정을 체포하기 위해 관군을 파견했다. 그러나 경기와 황해도 일대의 아전과 백성들은 임꺽정과 비밀리 결탁했다. 관청에서 그를 체포하려는 계획을 세우면 그들이 먼저 알아서 거리낌 없이 활개치고 다녔다. 조정에서는 선전관을 보내 정탐했지만 도적들의 속임수에 속아서 선전관만 죽임을 당했다.

조정은 황해도 지역 군사를 동원하여 임꺽정을 체포하도록 했다. 아전과 백성들이 이미 도적들과 내통하여 밤에 공격하므로 군사들은 꼼짝없이 패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황해도 일대는 도적 패거리가 더욱 할거해 길도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는 곳이 됐다. 조정에서는 남치근을 토포사로 삼아 재령군에 진을 치고 그들을 토벌하게 했다. 임꺽정은 날쌔고 건장한 자 몇 명만 데리고 있고 나머지는 무리를 거느리고 구월산에 들어가서 험악한 산에 웅거해 대항했다. 남치근은 군마를 집결해 구월산을 철통같이 포위하고 공격했다. 결국 도적들이 항복했으나 날쌔고 건장한 대여섯 명은 끝까지 대항했다. 남치근은 서임에게 유인하게 하고 그들이 오자마자 모두 베어 죽였다. 임꺽정은 어느 민가로 숨어들어 갔지만 관군에게 포위됐다. 임꺽정은 관군 차림으로 위장하고 혼란을 틈타 진중을 빠져 나가려 시도했으나 투항한 서림에게 발각됐다. 결국 군사들에게 체포돼 얼마 후 죽었다.

임꺽정 1명을 체포하기 위해 조정은 3년 동안 몇 개 도(道)의 군사를 총 동원했다. 많은 물적 인적 자원을 들여 겨우 도둑 하나를 잡았지만 그 사이에 죽은 양민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부동산 투기라는 강도를 잡기 위해 온갖 법령을 총동원하는 것이 이 모양새가 아닐까. 부동산 투기는 꼭 잡아야 할 강도이지만 그것을 잡기 위해 벌이는 일이 자칫 엄한 국민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국민은 재산이 생명이다. 국민 개개인이 재산을 증식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서 가장 손쉽게 재산을 증식시킬 수 있는 방법이 부동산 투자다. 대다수 국민이 부동산 투자에 뛰어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단기간에 이익을 보려고 가격을 조장하고 독점화하는 투기세력이다. 이들은 이미 정부의 정책을 꿰뚫어 보고 그 위에서 놀고 있다. 그들을 잡으려면 단기적으로 쪽집게식 정밀타격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기술적으로 대단한 정밀함이 필요하며 조준을 잘못했을 경우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본다. 제일 좋은 방법은 임꺽정 같은 강도와 그에 협조하는 백성이 아예 나오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대처하는 일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국토의 효율화를 위한 강력한 인구분산 정책, 창업과 투자의 활성화, 일반 서민들이 정말로 근검절약하여 마련한 자금을 전망이 좋고 안전한 곳에 투자하여 재산을 증식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보장하는 안전투자정보제공시스템 등이 필요하다. 아울러 국민들에게 세계시민으로서 지향해야 할 올바른 교양교육과 경제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가 많은 인력과 경비를 사용해가며 총력을 기울여 임꺽정 같은 강도를 잡았더라도 곧바로 장길산 같은 도적이 나온다. 법망은 아무리 촘촘하더라도 반드시 빠져나갈 길이 있다. 세상에 머리 나쁜 큰 도둑은 없다.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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