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선한 법률, 그리고 그 반대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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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광장] 선한 법률, 그리고 그 반대의 결과

신기용 법무법인 윈 대표변호사

  • 승인 2021-01-13 08:16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신기용
신기용 변호사
얼마 전 천안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보도됐다. 멀쩡한 공중화장실의 변기 십여 개가 난데없이 철거될 지경이라는 것이다. 공중화장실의 남·여 변기 수는 같아야 한다는 법률이 문제되자 여성화장실의 변기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남성화장실의 변기를 없애는 창의적인 해결 방법이 시도됐던 것이다.

전통적인 개그 코드인 변기와 관련된 해프닝으로 웃어 넘길 수도 있지만, 법률에 관한 전통적인 고민도 던져주는 사건이기에 한 번 다뤄보려 한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법률은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 제7조 제1항에서는 '공중화장실 등은 남녀화장실을 구분하여야 하며, 여성화장실의 대변기 수는 남성화장실의 대·소변기 수의 합 이상이 되도록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법률이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화장실 앞에 길게 늘어선 줄로 고통받던 여성들의 권익을 적극적인 방법, 즉 여성화장실의 확충으로 보장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건의 당사자들이 그런 취지를 몰랐을 리는 없다. 이 사건 장소는 천안의 축구센터였다. 충남도의 감사위원회가 화장실의 변기 수 차이를 법률에 맞춰 시정하라고 지적했을 때 천안시설관리공단은 축구센터 연간 이용객의 93%가 남성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감사위원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성화장실의 확충에는 상당한 예산을 필요하니 누구라도 지출대비 효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화장실 변기 철거는 황당한 해결 방법이 아니라 사실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었던 것이다.

유럽 속담에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있다. 나쁜 결과를 선의로 덮을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오래된 명제인 것이다. 유명한 사례로 18세기 프랑스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로베스피에르의 우유 가격 통제가 일컬어진다. 그는 "모든 어린이는 값싼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며 우유 가격을 강제로 낮췄는데, 그 가격에는 수지를 맞출 수 없었던 낙농업자들이 우유 생산을 포기했다. 결국 우윳값은 폭등하고 갓난아이가 마실 우유를 구하기도 힘들어지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역사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제정되는 법조문과 엄정한 법 집행이 그 '선한' 의도와는 정반대의 길로 이어지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근로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자 했던 최저임금법의 개정에 많은 사업자는 차라리 고용을 포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다수의 근로자는 더 늘어난 최저임금을 보장받는 대신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을 발표하며 공공기관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율을 맞추라는 지시를 하달했을 때 많은 기관은 비정규직과 재계약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숫자를 맞췄다.

우리나라가 백신 계약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이슈가 한창일 때 '미국처럼 했다면 정은경 감옥 갔다'는 제목의 보도가 있었다. 요지는 다른 나라처럼 공격적으로 백신을 구매했다가 잘못됐을 경우 법적인 책임을 질 위험이 있는 것이 소극적인 대처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온 국민의 마음을 찢어놓은 ‘정인이’ 사건이 터지자, 익명의 한 경찰은 아동학대 사건을 적극적으로 처리했다가 오히려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독직폭행 등 온갖 죄목으로 고소당해 처벌까지 받은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정인아 미안하다, 아저씨는 더 이상 용기가 안 난다"는 그의 말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쯤 되새겨 보아야 한다.

'금쪽같은 내새끼'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훌륭한 아이로 키우고자 하는 부모의 진실한 바램과 노력이 오히려 아이들의 어긋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법과 정책 역시 다르지 않다. 부모의 마음도 어긋나는데 쉽게 통과되고 집행되는 법이야 오죽하겠는가.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법안이 발의된다. 그로 인해 파생될 일들에 대해 논의라도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고민이 결여된 행정·사법기관의 기계적인 법 집행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늘어만 간다. '의도는 좋았다, 법대로 한 것이다'라는 변명은 입법, 행정, 사법을 맡은 자들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금쪽같은 마음으로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법이 다루어지길 소망한다. 신기용 법무법인 윈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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