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랑올랑 새책]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 대한 물음

  • 문화
  • 문화/출판

[올랑올랑 새책]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 대한 물음

거리거리에 담긴 부와 권력, 정체성에 대한 '주소 이야기'

  • 승인 2021-12-09 16:56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주소
한 때 노후된 아파트들의 새로운 이름 짓는 법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인근에 숲이 보이는 아파트는 '포레', 도심을 강조하면 '센트럴', '어반', 호숫가에 있는 아파트는 '레이크', 공원 근처이면 '파크' 같은 식이다.

실제로 도시마다 00파크, 센트럴00와 같은 아파트가 즐비하다.

세종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다.



산과 논과 들이 있는 나대지에 국제 공모를 통해 도시가 설계되고 건설됐다.

겨레로, 나눔로, 다붓로, 라온로처럼 한글로 거리이름을 짓고 한뜰 마을, 새샘마을, 도램마을, 해들 마을 처럼 아파트 브랜드 이름 대신 한글 이름을 붙였다.

이 수평적 도시인 세종시도 00마을 0단지 000센트럴 같은 건설사의 브랜드를 붙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파트 위치와 브랜드에 따라 집값이 결정되는 동시에 사회적 위치까지 정의되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반증인 셈이다.

사실, 강남과 강북, 수도권과 광역시, 신도시 등 사는 지역, 아파트만 봐도 우리나라에서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경제력, 정체성은 쉽게 알수 있다.

아들의 여자친구의 주소를 듣고 교제를 허락하고 반대하는 부모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 같은 주소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주소가 없던 고대 로마부터 디지털 주소까지 주소에 담긴 이야기를 다룬 '주소이야기'(디어드라 마스크 지음, 연아람 옮김, 민음사 펴냄, 496쪽)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문화와 부와 권력, 정체성의 탄생과 정의를 '주소'를 통해 얘기한다.

저자 디어드라 마스크는 미국 전역뿐 아니라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지역과 한국과 일본, 인도, 아이티,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전 세계의 사례를 취재하고 인터뷰해 주소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그려냈다.

책에서 저자는 주소는 단순히 위치를 지정하는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영국에서는 스트리트(street)에 있는 주택이나 건물이 레인(lane)의 건물에 비해 절반 가격에 거래되고, 미국에서는 '레이크(lake)'가 들어간 주택이 전체 주택 가격의 중앙값보다 16%높다. 우리나라에서 노후된 아파트들이 도색을 새로 하고, 00캐슬, 00파크와 같은 국적 불명의 이름으로 고쳐 달자 수천만원이 올랐다는 얘기도 빈번하다.

주소가 지니는 상징적 가치 때문에 주소 개정을 둘러싼 논쟁도 전세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무엇을 기념하고 기념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종교적, 역사적 가치관이 깊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책은 결국 주소는 권력에 관한 문제로 정의한다.

권력이 이름을 짓고, 역사를 만들고, 누가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 왜 중요한지를 결정한다.

여전히 강남불패라는 말이 건재하고, 학군에 따라 도시의 아파트 가격이 결정되는 우리나라에서 주소를 통해 정체성과 정부 권력, 사회 구조를 설명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오희룡 기자 huily@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4658만$ 수출계약 맺고 거점 확장"… 김태흠 지사, 중국·베트남 출장 마무리
  2. 전공의 돌아온 대학병원 '활기' 속에 저연차 위주·필수과목 낮은 복귀율 '숙제'
  3. 예산 서부내륙고속도로서 승용차가 중앙분리대 들이받아… 1명 숨져
  4. 합참의장에 진영승 공군 전략사령관 내정, 군내 4성 장군 전원 교체
  5. 충청권 의대 중도이탈자 증가… 의대 모집정원 확대에 수도권행 심화
  1. 공회전 상태인 충남교육청 주차타워, 무산 가능성↑ "재정 한계로 2026년 본 예산에도 편성 안 해"
  2. [중도일보 창간74년]어제 사과 심은 곳에 오늘은 체리 자라고…70년 후 겨울은 열흘뿐
  3. "탈시설을 말하다"… 충북장애인인권영화제 4일 개최
  4. [2026 수시특집-배재대] 1863명(정원 내) 선발… "수능최저 없애고 전과·융합전공 자유롭게"
  5. 폭염 속 건설현장 근로자 마음응원 캠페인…마음구호 키트 나눔도

헤드라인 뉴스


대전어린이재활병원 국비확보 또 ‘쓴잔’

대전어린이재활병원 국비확보 또 ‘쓴잔’

대전시가 2026년 정부 예산안에서 역대 최대인 4조 7309억 원을 확보했지만, 일부 현안 사업에 대해선 국비를 따내지 못해 사업 정상 추진에 빨간불이 켜졌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운영비와 웹툰 IP 클러스터, 신교통수단 등 지역민 삶의 질 향상과 미래성장 동력 확충과 직결된 것으로 국회 심사과정에서 예산 확보를 위한 총력전이 시급하다. 1일 대전시에 따르면 2026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제외된 대전시 사업은 총 9개다. 앞서 시는 공공어린이 재활병원 운영지원 사업비(29억 6000만 원)와 웹툰 IP 첨단클러스터 구축사업 15억 원..

김태흠 충남도지사 "환경부 장관, 자격 있는지 의문"
김태흠 충남도지사 "환경부 장관, 자격 있는지 의문"

김태흠 충남지사가 지천댐 건설 재검토 지시를 내린 김성환 환경부 장관을 향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지천댐 건설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는 김돈곤 청양군수에 대해서도 "무책임한 선출직 공무원"이라고 맹비난했다. 김 지사는 1일 도청에서 열린 2026 주요정책 추진계획 보고회에서 김 장관에 대해 "21대 국회에서 화력발전 폐지 지역에 대한 특별법을 추진할 때 그의 반대로 법률안이 통과되지 못했다"라며 "화력발전을 폐지하고 대체 발전을 추진하려는 노력을 반대하는 사람이 지금 환경부 장관에 앉아 있다. 자격이..

세종시 `국가상징구역+중앙녹지공간` 2026년 찾아올 변화는
세종시 '국가상징구역+중앙녹지공간' 2026년 찾아올 변화는

세종특별자치시가 2030년 완성기까지 '국가상징구역'과 '중앙녹지공간'을 중심으로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할 전망이다. 1일 세종시 및 행복청의 2026년 국비 반영안을 보면, 국가상징구역은 국회 세종의사당 956억 원, 대통령 세종 집무실 240억 원으로 본격 조성 단계에 진입한다. 행정수도 추진이란 대통령 공약에 따라 완전 이전을 고려한 확장 반영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내년 국비가 집행되면, 국회는 2153억 원, 대통령실은 298억 원까지 집행 규모를 키우게 된다. 국가상징구역은 2029년 대통령실, 2033년 국회 세종의사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갑작스런 장대비에 시민들 분주 갑작스런 장대비에 시민들 분주

  • 추석 열차표 예매 2주 연기 추석 열차표 예매 2주 연기

  • 마지막 물놀이 마지막 물놀이

  • ‘깨끗한 거리를 만듭시다’ ‘깨끗한 거리를 만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