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앙겔라 메르켈의 정치 스타일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 앙겔라 메르켈의 정치 스타일

이성만 배재대 항공운항과 교수

  • 승인 2021-12-20 09:18
  • 신문게재 2021-12-21 18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이성만 배재대 항공운항과 교수
이성만 교수
베를린의 춥고 건조한 12월 2일 저녁, 67세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퇴임식 무대에 올라 감사와 겸손의 마음을 전한다. 엄숙한 횃불 의식 - 구동독 '펑크뮤직의 대모' 니나 하겐의 히트송('Du hast den Farbfilm vergessen'(컬러 필름을 잊으셨군요), 1974)을 연주하며 독일군은 퇴임 일주일 전인 12월 2일 송별 군사퍼레이드('Großer Zapfenstreich')에서 앙겔라 메르켈에게 경례한다. 프로그램 책자에는 '앙겔라 도로테아 메르켈 박사'라고 쓰여 있다. 독일은 정부 수반의 공식 이임식을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축하 행사가 곧 이 총리에 대한 국가의 작별 인사인 셈이다. 2005년 11월 독일의 첫 여성 총리로 권좌에 오른 후 5870일 동안 메르켈은 공식 연설을 1500여 회나 했다. 또한 2021년 하원 선거 불출마로 '독일 역사에서 스스로 퇴장한 첫 총리'가 되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서 남성이 지배하는 정치세계에서 초창기 때만 하더라도 과소평가되었음에도 16년 동안 4번의 정부를 이끌며 수많은 난제와 위기를 극복했다. 4명의 미국 대통령, 5명의 영국 총리, 4명의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일했다. 그래서인지 해외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없는 독일과 유럽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유럽의 중심에 있는 경제 대국 독일이 이 여성 총리 없이도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머리를 갸우뚱한다.

메르켈은 소박하고 침착하면서도 실용적으로 껄끄러운 파트너들을 만났다. 온갖 도발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나 블라디미르 푸틴 등 이른바 권위주의의 세계화를 표방하던 시기에도 언제나 침착하게 민주주의 체제의 위용을 등에 업고 자신의 정치적 나침반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는 독일보다 해외에서 더 잘 인식되곤 했다. 2019년 하버드대학 연설에서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진실성이 필요하고 가장 요긴하게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여기에는 "거짓을 진실이라고 하지 않고 진실을 거짓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메르켈은 독일 자체보다 해외에서 더 사랑받고 존경받았다. 물론 해외에서 인기가 없고 유명세를 타지 못할지언정 여러 가지 불쾌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리스는 여전히 금융 위기의 심각성을, 이탈리아는 2015년 이전에 닥친 이민 위기를 외면하고 있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노드 스트림-2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승인하며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그러나 메르켈이 국제적으로 누리는 존경심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자신의 결정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오랫동안 여타 정치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정치 스타일을 상징하기 때문에 16년 동안 순탄하게 집권했다. 그리고 스스로 결정한 퇴임을 통해 자발적인 권력 이양이 존엄성과 존경심을 가지고 수행될 수 있는 방법론적 기준을 세웠다.

따라서 해외의 많은 사람이 메르켈 총리가 떠날 때 독일은 과연 무엇을 기대할 것인지 묻는 것은 놀랄 것이 못 된다. 게다가 독일 사람들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기독교민주연합(CDU)은 줄곧 메르켈이 후계자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비난했지만, 정당정치의 차원을 고려하면 그렇지도 않다. 후임자인 사민당(SPD)의 올라프 숄츠는 4년간 메르켈의 부총리를 지냈다. 슐츠에게서도 안정성과 연속성은 독일 정치의 핵심 지침이란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떠나지만, 그녀의 정치 스타일은 여전한 셈이다.

메르켈은 당분간 베를린에 머물 것이란다. 양자화학자인 남편 요아힘 자우어가 훔볼트 대학교수 은퇴 이후에도 선임 연구원 계약을 2022년까지 연장한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퇴임 후 브란덴부르크의 구옥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참 격이 다른 정치 스타일이다. /이성만 배재대 항공운항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국가균형발전과 행정수도 완성' 시급...대한민국 악순환 끊는 해법
  2. [기고] 충청도 정신의 영원한 정치지도자 JP!
  3. [종합] 과밀 특수학교 가원학교, 건물 흔들림으로 학생 대피 후 귀가
  4. 대전문화재단, 문화예술정책 포럼 성료…“AI는 동반 예술가”
  5. [대전다문화] ‘와글와글 가족 페스티벌’에 작은 손길을 더하다
  1. [대전다문화] 자유의 시작, 필리핀 독립기념일 이야기
  2. [대전다문화] 올여름, 로하스 야외수영장으로 시원한 물놀이 어떠세요?
  3. [대전다문화] '6월에 결혼하면 행복해진다' ? 일본에서 온 작은 속설 이야기
  4. [대전다문화] '아이의 미래에 날개를 달아주세요'
  5. 항우연·천문연 경남 사천 이전? 연구자들 "말도 안 되는 소리"

헤드라인 뉴스


응급 상황 속 빛난 대전월드컵경기장의 안전 요원들

응급 상황 속 빛난 대전월드컵경기장의 안전 요원들

경기 중 관중석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해 경기가 중단되는 일이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있었다. 18일 오후 대전하나시티즌과 김천상무와의 '하나은행 K리그1 2025' 19라운드 경기에서 후반전 경기가 끝나갈 무렵 대전월드컵경기장 E석 1층 관중석에 있던 관중이 갑자기 기절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의 시선은 일제히 관중석으로 향했다.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이 환자가 발생한 관중석으로 급하게 뛰어 갔고 맞은 편에 있던 안전 요원들도 E석으로 향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관중들은 일제히 경기장을 향해 소리 질렀고..

코스피 3000선 코앞인데…숨 고르는 지역 상장사
코스피 3000선 코앞인데…숨 고르는 지역 상장사

3년 5개월 만에 2900선을 돌파한 코스피 지수가 3000선 문턱에서 일주일 째 숨을 고르고 있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악재도 있지만, 외국인과 기관의 자본이 국내 시장에 지속 유입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 신호로 보인다. 코스닥 시장에 많이 분포한 지역 상장사들의 주가도 현재는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을 일부 해소하는 분위기다. 18일 코스피 지수 종가는 전 거래일 대비 0.74%포인트 오른 2970.40으로 집계됐다. 오전 거래 시간 2980선까지 오르며 기대를 모았지만, 3000선 돌파는 다음으로 미뤘다. 새 정부 출범에..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39. 대전 서구 관저동 일대 치킨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39. 대전 서구 관저동 일대 치킨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6·25 전사자 발굴유해 합동안장식…‘영면 하소서’ 6·25 전사자 발굴유해 합동안장식…‘영면 하소서’

  • 전기차 화재 대응 ‘하부 관통형 소화장비’ 시연 전기차 화재 대응 ‘하부 관통형 소화장비’ 시연

  • 장마철 앞두고 적십자사 구호물품 준비…‘유비무환’ 장마철 앞두고 적십자사 구호물품 준비…‘유비무환’

  • 여름철 해충 퇴치 여름철 해충 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