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법이 죽은 사회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법이 죽은 사회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3-03-13 08:37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손종학 교수
손종학 교수
법대 교수들을 향한 냉소의 말이 있다. '만사를 법대로 하자는 무리'라는 지칭이 바로 그것이다. 사소한 문제 하나하나에 굳이 낯설고 어렵기만 한 법조문 들이대면서 이렇게 하여야 한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간섭하는 법대 교수들이 마냥 곱게 보일 리가 없었기에 어찌 보면 이러한 비웃음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본디 법치주의는 인치나 도덕정치라는 미화 속에 숨겨진 '사람에 의한 자의적 지배'를 방지하고자 하는 이념 하에 출현하였다. 즉 사람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국가원리이다. 이는 인치와 신분제로 대표되는 중세와 결별하고 개인을 주체로 인정하고 민주주의가 도입되는 근세로 나아가는 시온의 대로이었다. 그렇기에 법대로 하자는 것은 어쩌면 인류 역사의 위대한 진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법대로 하자는 말이 왜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법치주의에 대한 잘못된 관념도 작용하였다고 본다.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rule of law)이지, 단순히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님에도, 부지불식간에 법에 의한 지배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오류로 인한 병폐는 한둘이 아니어서 법치주의가 주는 혜택을 다 집어삼키고도 남을 정도이다.

입법영역을 살펴보자. 특정 사건 하나 해결하고자 만든 법은 법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준수하여야 할 진정한 규범으로서의 법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사건 하나 터지고,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곧바로 나오는 특별법 전성 사회에 살고 있다. 무슨 무슨 법이라고 속칭되는 법들이 바로 그들로서, 이들은 법의 핵심인 일반성과 보편성을 상실한 일회성 입법들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규범으로서의 법적 권위도 사라지고 졸속으로 배출된 법들이 충돌하고 모순되는 웃지 못할 모습들이 속출한다. 오죽하면 법을 해석하여 사건에 적용하는 작업의 가장 전문가인 판사들조차 특별법이 하도 많고 복잡하여 헷갈린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겠는가. 한마디로 자의적, 편의적 입법이 난무하는 법대로 사회이다.

어디 입법에서만 이런 일이 발생할까. 사법 영역에서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법관은 오직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서만 재판하여야 함에도 언제부턴가 재판관이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를 먼저 따져보는 시대가 되었다. 정치적 사법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단순한 민사나 형사재판 당사자들이 자기 사건 담당 법관의 정치 성향을 확인하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넘어 절망을 느낀다.

그러면 시민 사회는 또 어떨까? 헌법적으로 자치가 보장되는 대학사회로 눈을 돌려보자. 언제부터인가 지성의 상징이라는 대학에서도 학내 갈등을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툭하면 세상 법정으로 발걸음을 옮겨 아귀다툼을 벌인다. 얼마든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을 쉽게 세상 법에 맡기는 대학에 더 이상 헌법적으로 대학자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한마디로 법대로 하자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처럼 고소, 고발이 남발되는 국가는 없다는 자조가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

뉴스 한번 시청하여 보자. 그 짧은 시간에 형법 각론의 온갖 범죄가 다 나온다. 또 법학 공부해본 적 없는 정치 평론가들은 마치 변호사라도 된 것처럼 마구 법해석을 해대고, 범죄가 된다, 안 된다를 자신 있게 내뱉는다. 시간 내고 돈 들여서 로스쿨에서 공부할 필요가 전혀 없는 사회가 되었다. 가히 법률만능주의 사회라 칭할만하다.

이 모든 현상은 법치주의를 잘못 인식하여 발생하는 문제들로서 법은 국가 구성원의 총의가 모인 결정체라는 엄중함을 집어 던진 채 자신의 이기적 욕구 만족을 위한 값싼 도구로 전락시킨 결과물이다. 법의 기본원리와 정신은 사라지고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같은 특별법 전성시대, 정파적이고도 자의적 해석이 너울대는 사법불신시대, 자율이 실종된 고소 만능 왕국이 지금 우리 사회의 숨길 수 없는 자화상이다. 영화 속 죽은 시인의 사회가 아닌 '진정한 법'이 죽은 사회가 되었다. 우리가 그 법을 죽였다.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민주당 절반의 성공·국힘 예상외 선전… 내란청산·정권심판 팽팽
  2. 국민의힘 백성현 후보, 52.63% 논산시장 재선 성공
  3. '서산지역 충남도의원 선거 판 뒤집혔다' 서산, 더불어민주당 모두 석권
  4. [2026 지선] 세종시의회 '민주당 18석·국힘 3석' 재편
  5. [숏폼영상] 허태정, 4년 만에 대전시장 복귀… 시민 선택 받았다
  1. [2026 지선] 12년 만에 '세종교육감' 바뀌나… 강미애 1위 굳히기
  2. [2026 지선 투개표 이모저모]"이재명 대통령처럼 나도 한번"
  3. 진주시의회권력, 4년 만에 판이 바뀌었다
  4. [2026 지선] 세종교육감 임전수 후보, 오차범위 밖 '우세'
  5. 이제는 '23대 총선' 앞으로… 6·3 지선 충청권력 구도 개편

헤드라인 뉴스


더불어민주당 `금강벨트` 압승… 충청 지방권력 전면교체

더불어민주당 '금강벨트' 압승… 충청 지방권력 전면교체

3일 막을 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8년 전 치른 제7회 지방선거와 같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민주당은 충청권 광역 지방정부 수장인 4개 시·도지사를 석권한 데 이어 양대 축인 4개 광역의회 또한 다수당 지위를 확보하며 충청의 핵심 지방권력을 손에 쥐었다. 국민의힘은 4년 전 제8회 지선에서 차지했던 지방권력을 무기력하게 내주며 지역에서 주도권을 대부분 잃게 됐다. 충청에서 이겨야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정치권 속설이 다시 한번 입증되는 사례가 됐다. 최종 개표 결과, 금강벨트에서 큰 이변은 없었다. 국민의힘이 충청권..

[대입+] 6월 모평 국어·영어 쉬워지고 수학 비슷… 체감 난도는 엇갈려
[대입+] 6월 모평 국어·영어 쉬워지고 수학 비슷… 체감 난도는 엇갈려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가늠자인 6월 모의평가가 전국에서 일제히 치러졌다. 전문가들은 국어는 지난해 수능보다 쉬웠고 수학은 비슷하거나 다소 쉬웠으며 영어는 지난해 수능보다 평이했지만 일부 문항 탓에 체감 난도는 높았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4일 전국 2124개 고교와 564개 지정학원에서 2027학년도 6월 모의평가(모평)를 실시했다. 평가원은 고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을 충실히 반영하고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능력을 측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문희 평가원장은 "사교육을 통한 문제풀이 기..

행정수도 시계 빨라지나… 조상호 "올 가을, 특별법 처리 골든타임"
행정수도 시계 빨라지나… 조상호 "올 가을, 특별법 처리 골든타임"

민선 5기 세종시정을 이끌 조상호 당선인이 행정수도 세종 완성과 재정난 등 지역 핵심 현안 해결을 위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특히 올 가을 정기국회를 행정수도 특별법 처리의 골든타임으로 보고, 연내 입법에 총력을 기울이겠단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조상호 세종시장 당선인은 이날 오전 세종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수도 세종 완성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며 "특별법 관철과 개헌을 통해 세종의 새 미래를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조 당선인은 이번 선거 승리가 단순한 개인의 영광이 아닌, 이재명 정부와 보조를 맞춰 세종의 미..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지방선거 끝…선거벽보 철거 지방선거 끝…선거벽보 철거

  • 분주한 개표소 분주한 개표소

  • 허태정 대전시장 후보 당선 ‘확실’ 허태정 대전시장 후보 당선 ‘확실’

  • 출구조사에 ‘엇갈리는 희비’ 출구조사에 ‘엇갈리는 희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