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사회의 재발견'을 통한 영국 보수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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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사회의 재발견'을 통한 영국 보수의 지혜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 승인 2024-03-14 16:58
  • 신문게재 2024-03-15 19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사회(society) 같은 것은 없다. 개인으로서 남자와 여자가 있고 가족만이 있을 뿐이다." 1980년대 영국 보수당 당수이자 총리를 지낸 마가렛 대처 여사가 사회복지 지출로 비대해진 정부를 일갈한 말이다. 사회취약계층은 더 이상 국가나 사회의 지원과 자선에 의존하지 말고, 개인 또는 가족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다. 해당 연설은 시장 논리에 따른 각자도생의 생존방식을 강조하며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철학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이러니하게도 2010년 같은 보수당 출신으로 영국 총리에 오른 데이비드 카메룬은 '거대한 사회'(Big Society)를 국정 기조로 내세운다. '거대한 사회'는 국가 대신 가족, 친구, 이웃, 또는 공동체 활동가, 자원봉사자, 그리고 사회적 기업가가 사회복지를 포함한 현대 사회문제 해결의 적극적인 주체가 되어야 함을 상징한다.

영국 보수당의 국정 기조 전환은 시대변화를 읽고 보수의 가치를 유연하게 해석하며 정책에 접목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80년대 이후 보수의 핵심 가치인 자유 시장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탈규제화, 민영화, 그리고 사회복지지출 감축 등을 통해 전개된다. 하지만 시장과 자본의 자유화와 세계화는 극단적인 경제적 양극화, 환경파괴, 지역사회 붕괴와 같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진다. 19세기 말 산업혁명 직후 겪은 '시장실패' 유령의 부활을 놓고 영국의 보수진영은 그 해법을 국가로의 회귀가 아니라 사회에서 찾는다. 영국 보수의 해법은 '사회의 재발견'으로 요약된다. 대처 총리는 개인들이 우연히 같은 시간과 장소에 모여 사는 집합체에 불과한 사회를 가정했다. 반면, 카메룬 총리는 사회구성원들이 상호의존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공동체 의식과 호혜(互惠)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사회를 소환한다. '거대한 사회'는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고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시장의 이기적인 인간상(人間像) 대신 호혜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사회적 인간상을 재발견하고 활성화하는 정치실험이다. 또한 공동체 일원으로서 시민의 협력적이고 집단적인 잠재력을 끌어내고 사회문제 해결에 접목하는 실용적 프로젝트다.



'사회의 재발견'은 '시민성'(citizenship)의 공공철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기존의 시민성은 법률이 부여한 권리에 기초한 개인의 지위 및 자격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거대한 사회'는 개인적 권리의식을 넘어 사회적 책임 의식을 키우고 공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적극적 시민성'을 갖춘 시민을 요구한다. 영국의 '거대한 사회'는 사회구성원의 '적극적 시민성' 형성을 위한 혁신적인 사회실험을 지향한다. '사회의 재발견'은 영국을 포함한 선진국의 다양한 제도와 담론을 통해 그 가치를 배가해왔다. 사회적 혁신, 사회적 경제, 사회적 가치, 사회적 자본, 지역공동체 활성화 등의 정책과 담론은 시장의 역기능을 보완하면서 사라져가는 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회복하는 동시에 국가의 자원과 역량을 보충하는 시도로 해석된다. 국가가 사회를 새롭게 해석하고 활동무대를 열어주며 지원하는 것은 진보와 보수 정권에 무관하게 보편화하는 현상이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극단적 이념의 덫에 갇힌 일부 보수 진영 인사들은 사회라는 용어가 등장하면 '사회주의'를 소환하면서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회 또는 공동체라는 표현을 노골적으로 배척하고 배제한다. 이것은 민선 8기 대전시를 포함해 일부 보수 자치단체장들이 지역공동체 분야와 사회적 경제 분야 정책과 제도를 진보의 전유물로 몰아가며 폐기하거나 축소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주의는 국가가 모든 재산을 소유하고 자원 배분을 국가의 관료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체제다.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를 국정운영의 전면에 등장시킨 영국의 보수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를 사람은 없다. 민선 8기 들어 '사회의 재발견'을 통한 보편적 제도 및 정책실험이 심하게 위축된 것은 정치지도자의 시대를 읽는 역량과 철학의 빈곤을 방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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