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인터넷이 여는 직접민주주의 시대에서는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인터넷이 여는 직접민주주의 시대에서는

양성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 승인 2024-05-27 14:40
  • 신문게재 2024-05-28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양성광 원장
양성광 원장.
최근 정부가 KC 인증이 없는 유모차, 완구 등 80개 품목의 해외 직구를 금지하는 방안을 내놨다가 사흘 만에 철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테무 등 중국의 이커머스 플랫폼으로부터 국내 제조·유통업체를 보호하려는 의도였지만, KC 인증 없는 제품의 해외 직구를 전면 금지해 고물가 시대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소비자들의 분노를 샀다.

이번 사태는 현지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공습해 오는 중국의 이커머스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국내 제조·유통업체 모두가 고사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해외 플랫폼을 통한 직구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중국 이커머스를 막을 뾰족한 방안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국내 중소기업에만 적용돼 역차별이라 지적돼 온 KC 인증을 직구에도 적용한다는 우회 대책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뿐만 아니라 모든 해외 직구 금지로 같은 제품을 3배 이상 싸게 살 수 있는 통로가 막히자, 이 사달이 났다.

한국 소비자의 해외 직구 역사는 2010년경 미국 최대 쇼핑 시즌인 블랙 프라이데이 때 직구 방법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엄청 싸다는 입소문에 인터넷 카페, 유튜브 등을 통한 정보 공유가 더해져 복잡한 절차와 긴 배송기간도 마다치 않는 직구족이 많이 늘어났다. 한때 해외 유명 브랜드가 수출업체의 반발을 이유로 한국에서의 홈페이지 접속과 한국 신용카드 사용 및 한국 주소 입력을 못 하게 하자 K직구족들은 미국의 결제시스템(Paypal)을 쓰거나, 직구 대행업체 주소를 빌려 물건을 배송받는 우회 방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제는 아마존도 49달러 이상 주문 시 무료로 한국에 배송해 주는 직구 전성시대가 되었다. 이번 소동으로 우리는 글로벌 기업도, 국내 유통업체도, 국가마저도 소비자와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중국 이커머스는 생산단가가 높고 유통단계가 복잡한 국내 업계는 꿈도 꿀 수 없는 저세상 가격을 책정해 유통업계의 메기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천적이 없는 외래종 큰 입 배스가 참게, 가제, 수생곤충, 개구리, 참붕어, 쏘가리 등 수중생물을 모조리 먹어 치워 생태계를 파괴한 것처럼 국내 제조 및 유통업체를 잠식해 토종은 하나도 남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더욱 크다. 토종 메기는 건전한 긴장감을 조성해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나, 관세?부가세 및 KC 인증 면제로 무장하고 원가 이하 가격으로 재고 털어내기에 나선 큰 입 배스, 중국 이커머스를 당해낼 재간은 없다. 그대로 둔다면 생태계 파괴는 물론 독점체계를 구축한 다음에는 국내 소비자를 봉으로 알 것이 뻔하다.



우선 당장은 중국 이커머스들의 복잡한 반품 및 환불정책, 가짜 리뷰와 짝퉁, 사기 판매자, 개인정보보호 우려 등을 불식시키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이번 논란의 단초가 됐던 먹고 입고 바르는 제품과 전자제품의 안전 문제는 그냥 없었던 일로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유해성을 조사하여 인체에 유해한 제품들은 차단할 것이라고 하나, 연간 6조원 규모로 쏟아지는 직구 물건 하나하나를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시간과 인력이 있으면 KC 인증에 걸리는 기간 단축과 이미 인증된 제품의 형상을 조금만 바꿔도 재인증을 받아야 하는 규제 폐지, 해외 인증제도와의 호환성을 높이는 데에 써야 한다.

아무튼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고대 그리스 도시에서 시민이 직접 의견을 개진하고, 다수결로 정책을 결정하던 직접민주주의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SNS는 이제 시민들이 의견을 직접 개진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주요한 통로가 되었다. 그러나 SNS상에서는 말 없는 다수보다는 극단적인 소수에 의해 여론이 장악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읽고 시민의 의견을 제대로 파악해 정책 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가치관과 의견이 다르다고 적대시하기보다는 타인의 의견 경청과 토론으로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터넷 시대에 맞는 새롭고 성숙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다수의 의견을 따르되, 소수의 의견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기다려진다.

/양성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함께 노래하는 대전 의사들 20년 맞이 정기공연…디하모니 19일 무대
  2. 나에게 맞는 진로는?
  3.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4. 대전대덕우체국 노사 재배 고구마 지역에 기부
  5. 항우연 곪았던 노노갈등 폭발… 과기연전 "우주항공청 방관 말고 나서야"
  1. [교단만필] 학교스포츠클럽, 삶을 배우는 또 하나의 교실
  2. [사설] 공공기관 이전 '희망 고문'은 안 된다
  3. 세종도시교통공사 '임산부의 날' 복지부장관 표창
  4. 대전농협, 농업 재해 피해 현장 방문
  5. 대전 상장기업, 사상 첫 시총 76兆 돌파

헤드라인 뉴스


충청 메가시티 잇는 BRT… 세계적 롤모델 향해 달린다

충청 메가시티 잇는 BRT… 세계적 롤모델 향해 달린다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간선급행버스체계인 BRT '바로타' 이용자 수가 지난해 1200만 명을 돌파, 하루 평균 이용객 3만 명에 달하며 대중교통의 핵심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행복청은 '더 나은 바로타'를 위한 5대 개선 과제를 추진해 행정수도 세종을 넘어 충청권 메가시티의 대동맥으로, 더 나아가 세계적 BRT 롤모델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청장 강주엽·이하 행복청)은 행복도시의 대중교통 핵심축으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한 BRT '바로타'를 세계적 수준의 BRT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17일 밝혔다. 행복청에 따르면..

32사단 과학화예비군훈련장 세종에 개장… `견고한 통합방위작전 수행`
32사단 과학화예비군훈련장 세종에 개장… '견고한 통합방위작전 수행'

육군 제32보병사단은 10월 16일 세종시 위치한 예비군훈련장을 첨단 ICT(정보통신기술)를 융합한 훈련시설로 재개장했다. 제32보병사단(사단장 김지면 소장)은 이날 최민호 세종특별자치시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종 과학화예비군훈련장 개장식을 갖고 시설을 점검했다. 과학화예비군훈련장은 국방개혁 4.0의 추진과제 중 하나인 군 구조개편과 연계해, 그동안 예비군 훈련 간 제기되었던 긴 대기시간과 노후시설 및 장비에 대한 불편함, 비효율적인 단순 반복형 훈련 등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추진됐다. 제32보병사단은 지난 23년부터..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가치 재확인… 개방 확대는 숙제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가치 재확인… 개방 확대는 숙제

조선시대 순성놀이 콘셉트로 대국민 개방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3.6km)'. 2016년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정원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주·야간 개방 확대로 올라가고 있다.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의 주·야간 개방 확대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주간 개방은 '국가 1급 보안 시설 vs 시민 중심의 적극 행정' 가치 충돌을 거쳐 2019년 하반기부터 서서히 확대되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제한적 개방의 한계는 분명하다. 평일과 주말 기준 6동~2동까지 매일 오전 10시, 오후 1시 30분, 오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 나에게 맞는 진로는? 나에게 맞는 진로는?

  • 유성국화축제 개막 준비 한창 유성국화축제 개막 준비 한창

  • 이상민 전 의원 별세에 정치계 ‘애도’ 이상민 전 의원 별세에 정치계 ‘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