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생활 속의 수인한도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생활 속의 수인한도

신기용 법무법인 윈 대표변호사

  • 승인 2024-08-19 16:58
  • 신문게재 2024-08-20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신기용
신기용 변호사
민법에는 수인한도라는 개념이 있다. 쉽게 이해하자면 이웃 간에 생길 수 있는 불편함에 대해 서로가 배려하고 용인해야 할 정도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 민법 제217조는 토지 소유자에게 매연이나 소음 등의 공해로 이웃 거주자의 생활에 고통을 주지 아니하도록 적당한 조처를 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그 이웃 사람에 대해서도 공해의 발생이 이웃 토지의 통상적인 용도에 적당한 것일 때에는 고통을 어느 정도 감내할 의무가 있다는 것도 정하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웃 간의 관계를 굳이 법으로 정한 것은 그만큼 자주 발생하는 분쟁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해도 사람마다 참을성이 다른데 그 한도를 객관적으로 정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닐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합리적인 사람이 참을 수 있는 정도를 기준으로 삼아 그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고 일조권, 조망권 침해 등 이웃 소유자 간에 다툼이 있을 수 있는 사안에서 공정한 해결을 하기 위해 여러 기준을 마련해 왔다.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법률적인 수인한도는 그나마 구체화 된 선이 그어져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각자 생활 속에서의 수인한도는 우리들의 마음에 달려있을 뿐이다. 토지소유자가 아니더라도 그저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거나 일을 할 때도 우리는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각자의 수인한도를 지켜내며 살아간다.

잠깐이나마 미국에 살면서 문화에 따라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생활 속의 수인한도가 재미있게 느껴진다. 가장 놀랐던 적은 시외버스를 기다리던 때이다. 출발 예정 시간에서 10분이나 지났을까, 버스회사 직원이 대뜸 출발이 늦어질 예정이라며 대략 1시간 정도 기다리라고 아주 당당히 말을 한다. 게다가 출발시간을 다시 정하면 조금 편한 곳으로 장소를 옮겨 쉬다 오기라도 할 텐데 정확한 것은 자기도 모르고 버스가 오면 그곳에 있는 손님들만 태우고 출발할 것이란다.



의자 하나 없는 곳에서 어린아이들마저 기다림에 지쳐가는데 미안한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지연 공지에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화가 나 있는 것은 나뿐이었고 다른 승객들은 아무도 화를 내거나 투덜대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의자도 아닌 땅바닥에 털썩 앉아서 주섬주섬 책을 꺼내 읽고 동료들과 수다를 떨면서 기약 없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도 훨씬 더 넘어서야 버스가 도착했는데도 그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흥미롭기도 했던 그 사건 이후, 이들의 수인한도는 나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공공기관에서 길게 늘어선 줄이 빤히 보이는데도 자기들끼리 노닥거리며 응대를 하지 않고 있는 공무원들은 나의 수인한도를 진작에 넘어섰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아닌가 보다.

답답하고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몇 차례 겪다 보니 나름 이곳의 수인한도에 적응하게 된다. 뭐랄까 이 사람들은 자기의 기준이나 속도로 편안하게 일을 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려니 하다 보니 그러려니 하게 된다랄까. 내가 불만을 참는 만큼 나도 더 편안해질 수 있다는 묘한 진리에 다가서는 느낌이다.

문득 그동안 나도 모르게 참고 감내하는 힘들이 많이 약해져 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조금만 불편해도, 조금만 늦어져도 그것이 당장 해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 당연하게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 같은 것이다.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한 민원인들에 시달려 직장을 떠나고 심지어 자살로 이어지는 뉴스가 이렇게 흔한 것은 분명 문제다. 어쩌면 지나치게 좁은 수인한도를 가진 누군가에게도 굳이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우리를 옥죄었을지도 모른다.

민법에서도 수인한도에 관해 어느 일방에만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만 더 넓은 마음으로 합리적인 기준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면 우리가 더 편안해질 수 있지 않을 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신기용 법무법인 윈 대표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기름값 폭등에 전국서 순위권... 이재명 대통령 제재 방안 주문
  2. '스프링캠프 마무리' 한화이글스 시즌 준비 돌입
  3. 택배 물류센터 직원이 41차례 택배 절취 '징역형'
  4. 유세종, 대한방사선사협회 26대 부회장 당선
  5. 입학 했지만 졸업은 딴 곳에서…대전권 4년제 대학생 중도이탈 증가
  1. '조상호 시장 예비후보' 베이스캠프 공개...본선 정조준
  2. 대전 진보교육감 단일화 성광진·강재구 2인으로 진행… 30일 단일화 후보 발표
  3. [유통소식] 봄 앞두고 분주한 대전 백화점과 아울렛
  4. 충남 하천·계곡 불법 점용시설 뿌리 뽑는다
  5. 대전교육청 '테크센터' 올해도 가동… 학교 무선인터넷 장애 대응·디지털기기 관리 지원

헤드라인 뉴스


무상교복? 대전은 유상교복!… 중·고교 90% 교복값 초과

무상교복? 대전은 유상교복!… 중·고교 90% 교복값 초과

무상교복 지원사업을 시행한 지 7년 째지만, 대전 지역 중·고등학교 가운데 90% 이상은 기본 교복 구매 시 지원을 받고도 추가 비용을 내야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장형 동·하복 한 벌씩만 주문해도 평균 3만 원 가량 차액이 발생하는데 체육복·생활복·셔츠 여벌 등을 더하면 수십만 원이 깨져 학부모 부담이 커지는 셈이다. 정부가 교복값을 줄이기 위한 방안 모색에 나서면서 이달 중 대전교육청도 학교별 전수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5일 중도일보 취재 결과,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 고민정 의원실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대전 중·고교 157곳..

통합 무산때 재정 공백…충청광역연합 대안 카드 부상
통합 무산때 재정 공백…충청광역연합 대안 카드 부상

충남·대전 행정통합이 끝내 무산될 가능성이 큰 가운데 이른바 플랜B로 충청광역연합 활성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통합 특별시 출범을 전제로 논의되던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원 역시 초광역 협력체계인 충청광역연합을 통해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목소리는 충청권이 이번에 통합을 하지 못했을 경우에도 이재명 정부 국가균형발전 대전제인 5극 3특 전략에서 역차별을 받지 않기 위함이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행정통합 논의 과정에서 충남과 대전은 특별시 출범을 전제로 '4년간 20조'라는 인센티브 등 각종 재정 지원과 제..

대전 기름값 폭등에 전국서 순위권…이재명 대통령 재제 방안 주문
대전 기름값 폭등에 전국서 순위권…이재명 대통령 재제 방안 주문

대전을 비롯한 전국 주유소 기름값이 중동 정세 불안으로 급등한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의 가격 폭등 재제방안 언급이 실제 효과를 낼지 관심이 쏠린다. 국제유가가 국내 주유소 판매가격에 반영되기까지 통상 2~3주의 가량 시차가 발생하는데, 중동발 전쟁 확산 이후 주유소들이 잇따라 가격을 인상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대전의 경우 휘발유 가격이 전국에서 두 번째 높은 수준을 기록했고, 경유는 네 번째로 비싼 것으로 나타나면서 운전자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5일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오피넷에 따르면 전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어린이보호구역 과속 금지 어린이보호구역 과속 금지

  • 3.8민주의거 역사적 의미 살펴보는 시민들 3.8민주의거 역사적 의미 살펴보는 시민들

  • ‘더 오르기 전에…’ 붐비는 주유소 ‘더 오르기 전에…’ 붐비는 주유소

  • 즐거운 입학식…‘반갑다 친구야’ 즐거운 입학식…‘반갑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