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시민의 눈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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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시민의 눈높이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24-09-09 10:30
  • 신문게재 2024-09-10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이승선 교수
이승선 교수
시민이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존재라는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언론관련 기관에 종사하면 안 된다. 개별 시민이 가진 합리성의 그릇이 작을 수 있고, 이성의 그릇의 깊이가 얕을 수 있다. 개별 시민이 저지른 나쁜 사례 한 두 개를 꼬집고 그를 발판삼아 공동체 시민의 이성과 합리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작고 얕은 그릇의 물이 차고 흘러야 도랑을 만들고, 개울을 이루고, 시내가 되게 하고, 거대한 강에 채워져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우리의 민주주의도 개울물이 강과 바다를 이룬다는 믿음에 터전을 두고 있다. 따라서 언론과 관련한 정보유통의 길목에 일터가 마련된 사람들은, 시민들이 궁극적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라는 점을 한시도 까먹으면 안 된다.

동일한 주제나 동일한 대상에 대한 여론조사라고 하더라도, 여론조사를 하는 주체, 방법, 시기, 조사대상의 수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조사의 결과가 상이할 수 있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와 같은 특성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 여론조사는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 어떤 기관의 여론조사가 여러 해 동안 우리 사회에 수용되고 소개돼 왔다면, 연례적으로 진행되고 최근에 공표된 그 여론조사의 결과를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 공유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시민은 그러한 여론조사 결과 정보를 그동안 이성적, 합리적으로 판단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해마다 6월 말경에 '디지털 뉴스 리포트'를 발행한다. '뉴스 신뢰도 보고서'로 알려져 있다. 마흔 개가 넘는 국가가 이 조사에 참여하고 있고, 한국은 2016년부터 참여했다. 뉴스 신뢰도 지표만 놓고 보자면 한국 언론에 대한 한국인들의 평가 결과는 조사 대상 국가 중 최하위 그룹에 속한다. 꼴찌를 차지한 때가 4번, 뒤에서 10등 안에 든 것이 5번이다. 유쾌한 일은 아니겠으나 한국 언론이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어떤 점을 성찰해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표 기능은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 조사의 한국 참여사인 한국언론진흥재단은 매년 원 보고서가 발표되는 때에 맞추어, 한국 언론의 관점에서 이 보고서가 가진 함의를 '미디어 이슈' 리포트로 신속하게 요약, 보고했다. 그리고 해마다 가을이 되면 보고서의 전체 내용을 ISSN이 부여된 한글판으로 번역, 출판했다. 그동안 그래 왔었다. 그런데 2023년 가을 발행된 전체 보고서에서 '한국' 부분이 빠졌다. 없었던 일이다. 올해는 6월에 발행되어야 할 '미디어 이슈' 보고서가 아예 한국언론진흥재단 홈페이지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도 없었던 일이다. 들리기로는 가을에 나와야 할 전체 한글판 보고서를 올해는 아예 발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처음이 될 일이다. 그 이유를, 2023년 MBC의 뉴스 신뢰도가 1위를 차지했고, 올해도 그리했다는 점에서 찾는 견해가 있다. 2022년 이후 며칠 전 '시사인' 여론조사에 이르기까지 국내의 권위 있는 여러 전문가와 일반인 대상 조사에서 MBC가 뉴스 신뢰도 부분 1위를 차지한 결과가 지속적으로 발표돼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의 신뢰도를 문제삼을 일은 아닌 듯하다. 더욱이 이 보고서는 개울물 같은 한국의 일반 시민 2000여명을 대상으로 한국의 언론 신뢰도를 조사, 평가한 결과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보고서가 전례없이 아예 소개조차 되지 않는 것은 특정 언론사의 위상을 염두에 두었다는 혐의 외에도, 일반 시민의 눈높이를 너무 얕잡아 보고 내린 결정은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이 보고서뿐만 아니라 방통위, 방송통신심의위, 선거방송심의위의 여러 결정이 불러온 사회적 논란을 두고 든 생각이다. 언론을 꿰뚫어보는 한국 시민의 눈높이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는다. 비록 시민 한 사람의 행위가 우둔할 수는 있으나,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시민은 궁극적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다. 언론이나 언론관련 기관 종사자들은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겠다는 따위의, 결코 선량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로 시민의 눈높이를 낮춰보고 민주주의의 혈액인 언론 정보의 흐름을 함부로 차단하면 안 된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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