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흑백요리사와 노벨문학상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흑백요리사와 노벨문학상

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 승인 2024-10-17 17:08
  • 신문게재 2024-10-18 19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동정사진
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의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방송은 끝났지만, 각종 패러디물이 유행한다. 특정 장면과 대사는 밈이 되어 인터넷과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흑백요리사의 부제는 '요리 계급 전쟁'이다. 제목처럼 요리사 100명을 계급으로 나눴다. 유명 요리대회 우승자 등 스타급 셰프 20명은 백수저(흰옷)에 속한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재야의 고수 80명은 흑수저(검은옷)로 분류된다. 1대 1 대결, 팀별 승부, '무한 요리 지옥'을 거쳐 최후의 승자를 가린다.

불편할 수 있는 설정에도 흑백요리사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압권은 공정한 경쟁이다. 백수저든 흑수저든 계급장 떼고 오로지 실력(맛)으로만 승부했다. 심사위원은 안대로 눈을 가렸다. 미슐랭 스타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또 하나는 경쟁자에 대한 예의이다. 탈락자는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생존자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출연자들의 대사는 어록이 되었다. "억울하면 저걸 뚫고 나갈 만큼 요리를 잘해야죠.", "덜어냄의 미학을 몰랐다는 걸 오늘 크게 깨달았어요."



최근에는 '한강 열풍'이 우리를 즐겁게 하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이다. 개인과 문단을 넘어 한국 문화의 저력과 위상을 세계에 알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반응도 뜨겁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당일 국회도 날 선 공방을 잠시 멈추고 함께 박수를 보냈다. 서점과 도서관에서는 한강 작가의 작품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한강 작가가 들었던 노래, 과거 인터뷰 등이 재소환되고 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더 뜻깊은 이유는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가했다. 누군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상처와 고통을 줄일 수 있다. 그 일을 마다하지 않은 작가의 노력을 인정한 것이다. 한 노벨문학상 위원의 평가가 가슴에 와닿는다. "그의 부드럽고 분명한 산문은 잔혹한 권력에 맞서는 힘이 된다."



흑백요리사와 노벨문학상은 단순 비교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교차하는 지점이 적지 않다. 요리와 문학 모두 인간과 시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전제로 한다. 흑백요리사와 노벨문학상을 통해 공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독창성과 창의성도 빼놓을 수 없다. 흑백요리사의 생존자, 한강 작가 모두 기존의 관습과 형식에서 과감히 탈피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공통점은 흉흉하고 기괴한 이야기가 횡행하는 요즘, 오랜만에 큰 즐거움과 감동을 선물했다는 점이다.

아침저녁으로 가을바람이 선선하다. 수확의 계절이자 축제의 계절이다. 유성구는 구민에게 감동을 주고, 우리 구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 주말 한국지역도서전과 유성 독서대전을 개최했다. 한국지역도서전이 충청권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벨문학상 발표에 맞춰 한강 작가 특별 부스를 마련하기도 했다. 18일에는 지역의 대표 가을축제인 유성국화축제의 화려한 시작을 알리는 유성국화음악회가 펼쳐진다. 11월 3일까지 유림공원에서 열리는 국화축제에서 깊어가는 가을의 진수를 맛보시기 바란다.

결산과 계획의 시기이기도 하다. 앞으로 유성구는 어떤 감동을 구민들에게 줄 것인가? 사업과 행사에서 어떤 차별성을 둘 것인가? 민선 8기 약속 실행에도 더 속도를 내야 한다. 할 일이 많다. 흑백요리사에서 큰 감동을 줬던 에드워드 리 셰프의 말로 각오를 대신한다. "심사위원에게 가는 길은 멀었어요. 가끔은 잠깐만 돌아가서 뭔가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한 번 걷기 시작하면 끝까지 걸어야 하죠. 해봅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중도초대석] 임정주 충남경찰청장 "상호존중과 배려의 리더십으로 작은 변화부터 이끌 것"
  2. "내년 대전 부동산 시장 지역 양극화 심화될 듯"
  3. 대전 한우리·산호·개나리, 수정타운아파트 등 통합 재건축 준비 본격
  4. <속보>갑천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현장에 잔디 식재 정황…고발에도 공사 강행
  5. [풍경소리] 토의를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는 아름다운 사회
  1. 대전·세종·충남 11월 수출 두 자릿수 증가세… 국내수출 7000억불 달성 견인할까
  2. SM F&C 김윤선 대표, 초록우산 산타원정대 후원 참여
  3. 대전 신세계, 누적 매출 1조원 돌파... 중부권 백화점 역사 새로 쓴다
  4. 코레일, 철도노조 파업 대비 비상수송체계 돌입
  5. 대전 유성 엑스포아파트 지구지정 입안제안 신청 '사업 본격화'

헤드라인 뉴스


충남도, 18개 기업과 투자협약… 6개 시군에 공장 신·증설

충남도, 18개 기업과 투자협약… 6개 시군에 공장 신·증설

국내외 기업 투자 유치를 핵심 과제로 추진 중인 충남도가 이번엔 18개 기업으로부터 4355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끌어냈다. 김태흠 지사는 23일 도청 대회의실에서 김석필 천안시장권한대행 등 6개 시군 단체장 또는 부단체장, 박윤수 제이디테크 대표이사 등 18개 기업 대표 등과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18개 기업은 2030년까지 6개 시군 산업단지 등 28만 9360㎡의 부지에 총 4355억 원을 투자해 생산시설을 신증설하거나 이전한다. 구체적으로 자동차 기계부품 업체인 이화다이케스팅은 350억 원을 투자해 평택에서..

[기획] 백마강 물길 위에 다시 피어난 공예의 시간, 부여 규암마을 이야기
[기획] 백마강 물길 위에 다시 피어난 공예의 시간, 부여 규암마을 이야기

백마강을 휘감아 도는 물길 위로 백제대교가 놓여 있다. 그 아래, 수북정과 자온대가 강변을 내려다본다. 자온대는 머리만 살짝 내민 바위 형상이 마치 엿보는 듯하다 하여 '규암(窺岩)'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이 바위 아래 자리 잡은 규암나루는 조선 후기부터 전라도와 서울을 잇는 금강 수운의 중심지였다. 강경장, 홍산장, 은산장 등 인근 장터의 물자들이 규암 나루를 통해 서울까지 올라갔고, 나루터 주변에는 수많은 상점과 상인들이 오고 가는 번화가였다. 그러나 1968년 백제대교가 개통하며 마을의 운명이 바뀌었다. 생활권이 부여읍으로 바..

이춘희 전 세종시장, 2026년 지방선거 재도전 시사
이춘희 전 세종시장, 2026년 지방선거 재도전 시사

이춘희 전 세종시장이 23일 시청 기자실을 찾아 2026년 지방선거 재도전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경 보람동 시청 2층 기자실을 방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입장을 공식화했다. 당 안팎에선 출마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졌고, 이 전 시장 스스로도 장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 내 시장 경선 구도는 이 전 시장을 비롯한 '고준일 전 시의회의장 vs 김수현 더민주혁신회의 세종 대표 vs 조상호 전 경제부시장 vs 홍순식 충남대 국제학부 겸임부교수'까지 다각화되고 있다. 그는 이날 "출마 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 신나는 스케이트 신나는 스케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