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한의 키트루다 - 전통에서 찾은 종양면역의 열쇠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한의 키트루다 - 전통에서 찾은 종양면역의 열쇠

정환석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 승인 2025-07-17 16:12
  • 신문게재 2025-07-18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50717101851
정환석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1990년대에는 '종양면역학'이라는 분야가 학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교과서에 종양에 관한 내용은 몇 페이지 분량에 불과했고 대부분 연구자들은 암은 유전적 변이로 인해 발생하며 면역계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면역학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고 종양학과 면역학 양쪽에서 주목받는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세포치료제인 CAR-T와 항체치료제인 면역관문 차단제의 눈부신 성과가 있다. 특히, 면역관문 단백질인 PD-1을 차단하는 항체치료제 '키트루다'는 면역항암제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키트루다는 2023년에만 약 43조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큰 수익을 올린 약물이 됐다. 흑색종, 비소세포폐암, 두경부암, 방광암 등 다양한 암종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면역관문차단제는 대부분 항체 기반이다. 항체는 분자량이 크고 주사로만 투여가 가능하며 매우 비싸다. 국내 기준 키트루다의 1인당 연간 약값은 1억 원에 달한다. 보험으로 환자 부담은 줄어들지만, 나머지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하게 된다. 또한, 크기가 큰 항체는 종양 내로 침투하는 데 한계가 있어 실제로 효과를 보는 비율은 약 15%에 그친다.

이러한 현실을 보며 나는 "한약 중에도 키트루다와 유사한 기전으로 작용하는 소재가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졌다. 이 생각은 나를 한의 종양면역 연구로 이끌었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해, 약 1000종의 한약 중에서 면역관문을 조절할 수 있는 소재를 무작위로 탐색했다. 놀랍게도 면역을 억제하는 독한 약보다는 오히려 면역을 조절하고 보하는 성질을 지닌 한약, 즉 전통적으로 '보약'으로 알려진 약재들에서 PD-1/PD-L1을 조절하는 활성 성분들이 발견됐다.



내가 지금까지 발굴한 소재에는 홍삼, 배암차즈기, 월견초, 복분자, 건칠 등이 있다. 이들 소재는 면역관문인 PD-1뿐만 아니라 PD-L1에도 작용해 키트루다(PD-1 항체)와 티쎈트릭(PD-L1 항체)을 동시에 투여한 것과 유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발굴한 성분들은 동물실험에서도 키트루다와 견줄만한 항암효과를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 성분은 경구 투여가 가능하며 분자량도 작아 종양 내 침투가 유리하고 생산비까지 저렴해 기존 항체치료제에서 부족한 경제성과 편의성을 보완할 수도 있다. 기존 항암화학요법과 병용 시 상승효과도 확인됐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현실은 쉽지 않다. 관련 연구비는 줄어들고 산업계에서 관심도 크지 않다. 요즘은 mRNA, ADC(항체-약물 접합체) 같은 새로운 방식에 연구비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천연물 기반 의약품은 경제성이 낮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 투자자들은 수익성과 빠른 회수 가능성을 고려해 투자에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

볼보가 3점식 안전벨트를 개발한 후 특허를 포기하고 모든 제조사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사례는 안전을 위한 공공 정신의 상징이다. 한의 종양면역 소재도 마찬가지다.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개발이 중단된다면, 국민 건강 증진에 큰 기회를 잃는 것이다. 경제성 문제로 연구를 지속하기 어렵다면, 국가나 공공기관이 책임지고 연구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경제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얼마 전 사촌 누나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종양면역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실제 임상으로 이어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크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다. 내가 연구한 한의 종양면역 소재들이 빠르게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를 입증하고, 새로운 한의 면역항암제로 개발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언젠가 '한의 키트루다'라는 이름으로 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생명을 주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환석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 쌍용동 아파트서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사건 발생
  2. [이차전지 선도도시 대전] ②민테크"배터리 건강검진은 우리가 최고"
  3. 대전시 2026년 정부예산 4조 8006억원 확보...전년대비 7.8% 증가
  4. 대전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공유재산 임대료 60% 경감
  5. [기고]농업의 미래를 설계할 2025년 농림어업총조사
  1. [문화人칼럼] 쵸코
  2. [대전문학 아카이브] 90-대전의 대표적 여성문인 김호연재
  3. 농식품부, 2025 성과는...혁신으로 농업·농촌의 미래 연다
  4. [최재헌의 세상읽기]6개월 남은 충남지사 선거
  5. 금강수목원 국유화 무산?… 민간 매각 '특혜' 의혹

헤드라인 뉴스


대전시, 산단 535만 평 조성에 박차…신규산단 4곳  공개

대전시, 산단 535만 평 조성에 박차…신규산단 4곳 공개

대전시가 산업단지 535만 평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4일 대전시청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신규 산단 4곳을 공개하며 원촌 첨단바이오 메디컬 혁신지구 조성 확장안도 함께 발표했다. 대전시의 산업단지 535만 평 조성계획은 현재 13곳 305만 평을 추진 중이며, 이날 신규 산단 48만 평을 공개해 총 353만 평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원촌 첨단바이오 메디컬 혁신지구는 유성구 원촌동 하수처리장 이전 부지를 활용한 바이오 중심 개발사업이다. 당초 하수처리장 이전 부지에 약 12만 평 규모로 조성계획이었으나,..

꿈돌이 협업상품 6개월 만에 23억 매출 달성
꿈돌이 협업상품 6개월 만에 23억 매출 달성

대전시는 지역 대표 캐릭터 '꿈돌이'를 활용한 지역기업 협업 상품 7종이 출시 6개월 만에 2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4일 밝혔다. '꿈돌이 라면'과 '꿈돌이 컵라면'은 각각 6월과 9월 출시 이후 누적 110만 개가 판매되며 대표 인기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첫 협업 상품으로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11월 말 기준 '꿈돌이 막걸리'는 6만 병이 팔렸으며, '꿈돌이 호두과자'는 2억 11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며 청년일자리 창출과 사회적경제 조직 상생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 밖에도 '꿈돌이 명품김', '꿈돌이 누룽지',..

2025년 세종시 `4기 성과` 토대, 행정수도 원년 간다
2025년 세종시 '4기 성과' 토대, 행정수도 원년 간다

2022년 7월 민선 4기 세종시 출범 이후 3년 5개월 간 어떤 성과가 수면 위에 올라왔을까. 최민호 세종시장이 4일 오전 10시 보람동 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수도를 넘어 미래수도로 나아가는 '시정 4기 성과'를 설명했다. 여기에 2026년 1조 7000억 원 규모로 확정된 정부 예산안 항목들도 함께 담았다. ▲2026년 행정수도 원년, 지난 4년간 어떤 흐름이 이어지고 있나=시정 4기 들어 행정수도는 2022년 국회 세종의사당 기본계획 확정 및 대통령 제2집무실 법안, 2023년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국..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추울 땐 족욕이 딱’ ‘추울 땐 족욕이 딱’

  •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 급식 차질로 도시락 먹는 학생들 급식 차질로 도시락 먹는 학생들

  • 양자 산업화 전초기지 ‘KAIST 개방형 양자팹’ 첫 삽 양자 산업화 전초기지 ‘KAIST 개방형 양자팹’ 첫 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