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한의 키트루다, 배암차즈기의 가능성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한의 키트루다, 배암차즈기의 가능성

정환석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 승인 2025-11-13 18:23
  • 신문게재 2025-11-14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51112110503
정환석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식약동원(食藥同源)'은 음식과 약의 근원이 같다는 뜻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곧 건강을 지키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한의학의 기본을 담고 있다. 예로부터 병이 나기 전 음식을 조절하고, 병이 생긴 뒤에야 약을 쓴다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겼다. 현대 의학에서도 '예방의학' 개념이 강조되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건강의 근본이 같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식품과 약재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식·약 공용 한약재'는 현재 189품목이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독성 없는 한약재는 식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일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

필자는 2017년부터 종양 면역치료제 '키트루다'를 대체할 수 있는 한의 면역관문 차단제 연구를 진행해 왔다. 면역관문 차단제는 암세포가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면역 브레이크'를 해제하는 약물이다. 즉, 인체 면역계를 다시 활성화하여 스스로 암세포를 제거하게 하는 치료 전략이다. 하지만 기존의 키트루다나 티센트릭과 같은 항체 기반 치료제는 고가며, 부작용도 적지 않다. 필자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천연물 기반의 안전하고 경제적인 면역관문 차단제를 개발하고자 했다.



1000여 종의 천연물 라이브러리를 스크리닝한 결과, 면역관문을 차단해 종양면역 효능을 나타내는 홍삼, 배암차즈기, 월견초(달맞이꽃 뿌리), 지유, 현초, 복분자, 차가버섯, 건칠, 정향피 등의 후보 물질을 발굴했다. 이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배암차즈기'를 선택하겠다.

배암차즈기의 학명은 Salvia plebeia R. Br.이다. 속명 Salvia는 라틴어 salvare(치료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이 속의 식물들은 대부분 약용 또는 식용으로 쓰인다. 배암차즈기는 울퉁불퉁한 잎의 모양 때문에 '곰보배추'라 불리고 눈 속에서도 자라 '설견초'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의학에서는 '여지초'로 기록돼 있으며 복수·각혈·옹종 등에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배암차즈기에는 다양한 플라보노이드가 함유돼 있으며, 항산화·항염증·천식 억제 및 종양면역 활성 효과가 보고돼 있다. 필자의 연구팀은 배암차즈기 추출물을 종양이 이식된 생쥐에 투여한 결과, 양성대조군인 키트루다와 유사한 종양 억제 효과를 확인했다. 또한 대장암의 표준 항암요법인 FOLFOX와 병용 투여한 실험에서도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다.

활성 성분으로는 '호모플라타지닌(homoplantaginin)'이 확인됐다. 이 물질은 면역관문 단백질 PD-1과 PD-L1에 결합해 종양면역 활성을 일으킨다. 흥미롭게도 호모플라타지닌은 인간의 PD-1·PD-L1 단백질에는 나노몰 농도에서도 결합하지만, 생쥐 단백질에는 결합하지 않는 특이성을 보였다. 또한 키트루다가 PD-1을, 티센트릭이 PD-L1을 각각 목표로 하는 항체임을 고려하면, 호모플라타지닌은 두 단백질 모두에 결합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론적으로 키트루다와 티센트릭을 병용 투여하는 것과 유사한 기전을 지니므로, 단독 표적 약물보다 더 우수한 효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배암차즈기나 호모플라타지닌이 실제 임상에서 항암 효과를 발휘할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배암차즈기는 이미 식품으로 사용하는 안전한 소재이며, 차나 나물 형태로 섭취해 온 역사도 있다. 필자는 주변 암 환자들에게 "홍삼과 배암차즈기를 꾸준히 섭취해 보라"고 권유한다. 쌈, 녹즙 형태로 섭취하면 면역력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검증이 더해진다면 배암차즈기는 '음식이 곧 약'이라는 식약동원의 현대적 실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투유유는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제를 발견해 노벨상을 받았다. 한 식물이 전 세계 수많은 생명을 구한 것이다. 배암차즈기도 암 치료의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하길 기대해 본다. 정환석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양주시, 옥정물류창고 2부지 사업 취소·용도변경 양해각서 체결
  2. [월요논단]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허와 실
  3. 코레일, 환경·동반성장·책임 강조한 새 ESG 비전 발표
  4. 국가철도공단 전 임원 억대 뇌물사건에 검찰·피고인 쌍방항소
  5. "2026년 달라지는 대전생활 찾아보세요"
  1. 성착취 피해 호소 대전 아동청소년 크게 늘어…"기관간 협력체계 절실"
  2. 29일부터 대입 정시 모집…응시생 늘고 불수능에 경쟁 치열 예상
  3. '티라노사우루스 발견 120주년' 지질자원연 지질박물관 특별전
  4.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5. KAIST 비싼 데이터센터 GPU 대신 내 PC·모바일 GPU로 AI 서비스 '스펙엣지' 기술 개발

헤드라인 뉴스


이장우 대전시장 "형식적 특별시는 시민동의 얻기 어려워"

이장우 대전시장 "형식적 특별시는 시민동의 얻기 어려워"

이장우 대전시장은 29일 대전·충남 행정통합과 관련 '형식이 아닌 실질적 특별시 완성'을 강조했다. 이 시장은 이날 주재한 대전시 주간업무회의에서 대전·충남 행정통합(특별시) 관련 핵심 특례 확보에 행정 역량을 집중할 것을 지시했다. 조직권·예산권·세수권 등 실질적 특례가 반드시 법안에 반영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시장은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법안이 가장 중요하다"며"형식적 특별시로는 시민 동의를 얻기 어렵다"면서 충청권이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획기적인 지방정부 모델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를 위해 각..

대전·충남 행정통합, 세종시엔?… "기회이자 호재"
대전·충남 행정통합, 세종시엔?… "기회이자 호재"

대전·충남 행정 통합 흐름은 세종특별자치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지역 정치권과 공직사회도 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대응안 마련을 준비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강준현 세종시당위원장(을구 국회의원)이 29일 포문을 열었다. 그는 이날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세종이 충청 메가시티의 중심축으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자 호재"라고 말했다. 최근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며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시장 배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가운데, 일각서 제기되고 있는 '행정수도 상징성 약화' 우려와는 상반된 입장이다...

대전 중소기업 16.3% "새해 경영환경 악화될 것"… 비관론 > 낙관론 `2배 격차`
대전 중소기업 16.3% "새해 경영환경 악화될 것"… 비관론 > 낙관론 '2배 격차'

새해 경영환경에 대한 대전지역 중소기업들의 비관론이 낙관론보다 두 배가량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중앙회 대전세종지역본부(본부장 박상언)는 29일 이 같은 내용의 '2026년 대전지역 중소기업 경영환경 전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전지역 중소기업 306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75.2%가 내년 경영환경이 '올해와 비슷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응답은 16.3%로, '나아질 것'이라고 답한 기업(8.5%)보다 두 배가량 많아 내년 경영 여건에 대한 불안 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서북부의 새로운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준공’ 대전 서북부의 새로운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준공’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