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탈탄소 '오징어 게임', 한국은 이미 공략집을 쥐고 있다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탈탄소 '오징어 게임', 한국은 이미 공략집을 쥐고 있다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 승인 2026-01-01 15:00
  • 신문게재 2026-01-02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60101095400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난 이 게임을 해봤어요!"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주인공 성기훈이 외치는 대사다. 죽음의 게임에 다시 참가한 그가 이 말을 뱉는 순간, 공포에 질려 있던 참가자들의 눈빛은 달라진다. '경험'보다 강력한 무기는 없기 때문이다. 처음 겪는 공포 앞에서는 얼어붙지만, 성공해 본 경험은 몸이 기억하는 감각이 돼 생존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인다.



지금 전 세계는 '탈탄소'라는 거대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협력 게임 같지만, 실상은 먼저 탈탄소 장벽을 세워 상대를 압박하는 치열한 생존 경쟁이다. 대한민국에게 이 게임의 난이도는 '최상'이다. 탄소 배출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는 여전히 제조업 중심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수력·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하지도 않고, 삼면이 바다인 데다 북쪽이 막혀 있어 전력을 수입할 수도 없는 고립된 '에너지 섬'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우리 정부는 2035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2050 탄소중립이라는 도전적인 목표를 던졌다.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산업계는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잊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 게임의 '공략집'을 이미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가장 화려하게 클리어해 본 경험이 있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1970년대 프랑스로 시선을 돌려보자. 오일쇼크로 국가 존립이 흔들리자 프랑스는 '메스메르 계획'(Messmer Plan)을 발동했다. "석유는 없지만 아이디어는 있다"는 슬로건 아래 불과 15년 만에 원전 56기를 쏟아내어 8%였던 원전 비중이 80%까지 늘었다. 에너지 안보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프랑스는 오늘날 서방 세계에서 가장 낮은 탄소 배출 전력망을 갖춘 국가가 됐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원전이 좋다/나쁘다"는 식의 단순 구호가 아니다. 프랑스 사례가 보여주는 핵심은 '표준화-연속 건설-정책 일관성-금융' 패키지가 갖춰질 때, 국가의 전력 믹스는 생각보다 빠르게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기적을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1980년대에 재현했다. 바로 우리다. 전력의 90%를 석유에 의존하던 나라가 1978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영광, 울진, 월성에 원전을 잇따라 건설했다.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전력 수요가 급증했지만, 우리는 화석연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10년 만에 전력의 50%를 원전으로 공급하는 신화를 썼다. 우리가 지금 힘겹게 가려는 녹색성장의 길을, 이미 한 번 걸어본 적이 있다는 말이다.

물론 과거엔 석탄 발전도 함께 늘어 탄소 배출 총량 자체를 줄이진 못했다. 하지만 과학적 관점에서 탈탄소의 핵심 지표는 총량이 아니라 '전력 단위당 온실가스 배출량'이다. 여기서 과학의 냉정한 숫자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전기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LCA)을 고려한 탄소 배출량을 제시한다. 에어컨을 1시간 돌리는 전력량인 1kWh를 만들 때, 석탄은 무려 820g의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천연가스는 490g이다. 반면 태양광은 41g, 원자력은 불과 12g이다.

흔히 메탄이나 아산화질소 등 다양한 온실가스를 우려하지만, 과학자들에게는 이 복잡한 가스들을 통일하는 '기축통화'가 있다. 바로 이산화탄소다. 마치 전 세계 화폐를 달러로 환산하듯, 과학자들은 각 온실가스에 '지구온난화지수(GWP)'라는 환율을 적용해 '이산화탄소 환산량'이라는 단일 화폐로 치환해 계산한다. 이 계산서를 받아들면 답은 명확하다. 일각에선 원자력(12g)과 태양광(41g)의 수치 차이를 두고 논쟁하지만, 이는 동전 몇 닢 수준의 실랑이일 뿐이다. 진짜 우리가 잡아야 할 '고액권'은 820g짜리 석탄이다. 수백 그램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지, 10g대의 무탄소 전원끼리 싸우며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

지금의 기술로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탈탄소화할 수 있는 분야는 전력이다. 오래된 석탄(석유) 발전소부터 차츰 원전으로 대체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과거에 성공했던 필승 전략이다. 원전 건설이 오래 걸린다는 주장도 있지만, 2050년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24년이다. 프랑스와 우리가 과거에 보여준 속도라면 수십 기를 짓고도 남을 충분한 시간이다. 우리는 이미 맨주먹으로 에너지 자립과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뤄낸 경험이 있다. 탈탄소라는 두 번째 게임, 겁먹을 필요 없다. 우리 몸은 그 성공의 감각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의료원 응급실, 전문의 6인 체제로 24시간 상시운영
  2. [그땐 그랬지] 1990년 설연휴 대전 시민의 안방 모습은?… TV 앞에서 명절의 추억을 쌓다
  3. 대전시 공기관 직원, 평가위원 후보 610명 명단 유츨 벌금형
  4. 20일 세종시의원 예비후보 등록...경쟁구도 눈길
  5. 천안박물관, '붉은말과 함께하는 설날 한마당' 개최
  1. 한국타이어 '나만의 캘리그라피' 증정 이벤트 성료
  2. 대덕산단 입주기업 대부분 설 연휴 ‘5일 이상’ 쉰다… 5곳중 1곳 이상 상여금 지급
  3. 노은.오정 농수산물도매시장 설 휴장
  4. '보물산 프로젝트'공공개발로 빠르게
  5. 백석문화대, 천안시 특산물 활용 소스·메뉴 개발 시식회 및 품평회 개최

헤드라인 뉴스


`학교급식법` 개정, 제2의 둔산여고 사태 막을까… 새학기 학교는?

'학교급식법' 개정, 제2의 둔산여고 사태 막을까… 새학기 학교는?

학교 급식종사자의 근무환경과 인력 부족 문제를 개선해 안정적인 급식 공급을 도모하는 '학교급식법'이 개정된 가운데 대전에서 매년 반복되는 급식 갈등이 보다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현재 논란이 된 둔산여고 석식 재개 여부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15일 교육계에 따르면 1월 29일 국회를 통과한 '학교급식법' 개정에는 학교급식 인력 기준에 대한 내용 등이 담겼다. 학교급식종사자의 근무 환경을 개선해 안정적인 급식 환경을 조성한다는 게 법 개정 취지다. 그동안 급식조리사들은 과도한 업무 부담을 낮추기 위해 조리사 한 명당 식수인..

초등 졸업때 미래 나에게 쓴 편지 20년만에 열어보니…대전원앙초 개봉식 가져
초등 졸업때 미래 나에게 쓴 편지 20년만에 열어보니…대전원앙초 개봉식 가져

초등학교 졸업 20주년이 되는 날 학교 운동장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던 풋풋한 마음이 실제로 결실을 맺었다. 13살에서 33살이 된 그들은 20년 만에 교실로 돌아와 13살 과거의 자신이 33살 현재의 나에게 쓴 편지를 수신했다. 대전 원앙초등학교는 2월 14일 오후 2시 20년 전 제1회 졸업생들을 초청해 당시 졸업을 앞두고 '20년 후의 내 모습은'이라는 주제로 쓴 편지의 개봉식을 가졌다. 원앙초는 서구 관저동에서 2005년 3월 31학급으로 개교했고, 2006년 2월 16일 1회 졸업식에서 168명이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제는 사라지거나 잊혀져 가는 명절 모습
이제는 사라지거나 잊혀져 가는 명절 모습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이 다가오면 골목부터 달라지던 시절이 있었다. 대문은 누구를 환영하던 활짝 열려 있었고 마당에는 전 부치는 냄새가 가득했다. 아이들은 설빔을 차려입고 골목을 뛰어다녔으며 어른들은 이웃집을 오가며 덕담을 나눴다. 그러나 2020년대의 설은 사뭇 다르다. 명절은 여전히 달력 속 가장 큰 절기지만 그 풍경은 빠르게 바뀌며 이제는 사라지거나 점점 볼 수 없는 풍경들이 늘어나고 있다. 먼저 귀성길을 준비하는 모습과 풍경도 크게 달라졌다. 1990~2000년대만 해도 명절 열차표를 구하기 위해 밤새 줄을 서는 일이 흔했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이제는 사라지거나 잊혀져 가는 명절 모습 이제는 사라지거나 잊혀져 가는 명절 모습

  • ‘건강하고 행복한 설 명절 보내세요’ ‘건강하고 행복한 설 명절 보내세요’

  • ‘대전 죽이는 통합법, 절대 반대’ ‘대전 죽이는 통합법, 절대 반대’

  • 누가 누가 잘하나? 누가 누가 잘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