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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난순 교열팀장 |
'소장수 아들'이었던 후보자의 권력에의 욕망에선 한참 비껴갔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엘리아스 카네티의 “살아남는 순간은 권력의 순간이다”라는 명제 앞에서 3인의 후보자와 장애인은 어떤 이유로든 철저히 배제됐다.
송경아는 그의 소설에서 엘리베이터를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타락과 부패의 기성권력의 축소판으로 묘사했다. 세상처럼 넓고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욕망에 휩싸인 인간들은 무력하게 그 가속도에 몸을 내맡긴다. 허나 가수 박진영에게 엘리베이터는 청춘의 건강함을 상징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젊은 남녀의 성적 욕망의 격렬한 몸짓은 남녀관계의 권력구도 같은 것은 고민할 필요없이 몸이 명령하는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메시지다.
분명한 것은 권력은 인간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력을 혐오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도 권력을 쥐면 권력의 논리에 종속된다. 알랭이란 학자는 특히 “엘리트는 권력을 행사하도록 숙명지워졌기 때문에 부패도 숙명지워졌다”고 말했다. 알랭의 논리대로라면 3인의 낙마자에게 면죄부를 부여해도 된다는 걸까? 권력욕에 파묻혀 '그까이꺼 대충' 위장전입하고 투기하면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갔다가 추락하면 또다시 올라타고…. 천형을 받은 시지프스의 숙명마저 엿보인다.
멸시당하고 치욕을 감내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권력을 획득하려는 욕망은 타인으로부터 멸시당한 경험에 대한 반작용으로 성립한다고 한다. '소장수 아들'이라는 닉네임(?)은 김태호의 과거의 경멸에 대한 복수의 빌미였겠다. 허나 장애인에겐 현실의 치욕을 복수할 엘리베이터 탑승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라며 김영하는 자신의 소설속 주인공을 통해 고민한다. 우리도 그 장애인이 왜 지하철 엘리베이터 문을 들이받았는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우난순 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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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