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쑥떡 쑥떡

  • 전국

[우난순의 식탐]쑥떡 쑥떡

  • 승인 2018-05-04 09:00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KakaoTalk_20180503_144502515
쑥개떡이다. 요즘 일반 떡집에선 쑥떡을 모양을 내서 판다. 댜행히 어느 떡집에서 예전에 먹었던 투박한 쑥개떡을 팔아 반가웠다.
난 좋고 싫음이 분명한 성격이다. 싫은 것도 많지만 좋은 것 또한 많다. 난 떡을 아주 좋아한다. 냉장고 냉동실엔 늘 떡이 쌓여 있다. 팥떡, 콩떡, 영양떡 등. 때때로 전문 떡집에 한 박스 주문해 냉동실에 넣어 두고 아침 식사용으로 먹거나 산에 갈 때 몇 개씩 싸 갖고 가기도 한다. 회사에서 가끔 떡을 먹을 때가 있다. 누가 상을 타서 자축하는 떡이거나, 백일이나 결혼식 후 답례용 떡 말이다. 작년에 후배가 상을 타서 떡을 돌렸는데 배가 고프던 참이라 서너 팩을 뚝딱 먹어치웠다. 옆에 앉은 후배기자 송익준이 깜짝 놀라 가뜩이나 큰 눈이 왕방울만해서 쳐다봤다. 송익준 기자는 회사 최고의 훈남인데 과자든, 초콜릿이든 군것질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여간 내가 떡 좋아하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오죽하면 생일선물로 떡을 선물 받았겠는가.

정말 맛있게 먹은 떡이 생각난다. 오래 전 초여름에 휴가를 받아 강원도로 여행을 갔었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강릉에 도착했다. 점심 전이었지만 뱃속에서 화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터미널을 나오다 입구에서 함지박에다 떡을 파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쑥 절편이었다. 참기름을 발라 윤기가 자르르 도는 절편을 보자 침이 꼴깍 넘어갔다. 2천원어치 사서 단숨에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그 쑥 절편은 기가 막혔다. 졸깃졸깃하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후각을 일깨웠다. 찰진 절편이 씹을 때마다 입 천장과 혀를 감질나게 건드리며 내 입을 맘껏 갖고 놀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행복한 건 없다.

쑥떡이 먹고 싶어 쑥을 한 바구니 뜯었지만 다 버린 적도 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돌아와 큰 바구니를 들고 들에 나가 어둑해질 때까지 가득 뜯었다. 밭둑에 어찌나 쑥이 많던지 쑥 뜯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보여주며 송편을 해달라고 했다. 엄마는 안 된다며 도리질했다. "그건 물쑥이라 먹을 수 없어." 어라, 다 같은 쑥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좀 달랐다. 물쑥은 참쑥과 다르게 뽀얗지 않고 보송보송한 솜털도 없었다. 물쑥은 물가에서 자라고 참쑥은 햇볕이 잘 드는 산에 많다. 특히 잔디가 깔려 있는 묘지에서 잘 자란다.

어릴 적 시골에선 떡이 간식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딱히 먹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가공식품이 흔치 않을 때였다. 다 자연에서 나는 걸로 먹을 걸 해결했다. 그래서 봄이 되면 쑥을 참 많이 뜯었다. 천지에 흔한 게 쑥이었다. 쑥개떡은 봄에 가장 많이 먹은 주전부리였다. 일단 쑥을 삶아 쌀가루와 버무려 절구에 찧는다. 한참을 절구질 하다보면 어느새 싱그런 초록색의 덩어리가 된다. 그걸 손바닥 만하게 납작하게 만들어 가마솥에 'Y'자로 된 나무 기둥을 걸고 채반을 얹어 베 보자기를 깔고 찌면 된다. 요즘 수제 햄버거 등 '수제'가 트렌드다. 집에서 만든 쑥개떡이야말로 진정한 수제 먹거리다. 절구에 찧어서 입자가 다소 거칠지만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그런데 쑥떡이면 쑥떡이지 왜 쑥개떡일까. 우리말에 '개' 자가 붙은 건 좀 하찮고 막 생긴 것들이다. 개떡, 개복숭아, 개살구, 개망초, 개꿈…. 고 귀여운 '개'가 이처럼 쓸모없는 의미로 바뀌다니, 개들이 알면 서운해 할 일이다. 아마 개는 인간에게 밑도끝도 없이 충성스러워 귀하게 생각하지 않아서인 듯하다. 반면 고양이는 까칠하고 도도해서 섣불리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한마디로 개를 우습게 안다는 거다. 한 입 베어 먹으면 쌉싸름한 개복숭아는 생각만 해도 침샘이 터진다. 개복숭아는 요즘은 찾기 힘든 토종 과일이다.

몇 년 전 봄에 작정하고 쑥버무리를 시도했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멥쌀가루는 떡방앗간에서 샀다. 거기에다 쑥과 소금, 설탕을 넣어 버무렸다. 냄비에 찜기를 놓고 베보자기를 깐 다음 버무린 쑥을 설설 뿌려 찌기만 하면 된다. 처음 해보는 거라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지 몰라서 뚜껑을 수시로 열어 보고 젓가락으로 찔러 보기를 여러 번. 여하튼 익긴 익었지만 쑥버무리는 말 그대로 떡이 됐다. 입체적인 모양은 간데없고 그냥 한 덩어리가 됐다. 쑥에 물기가 너무 많았던 모양이다. 생긴 건 우스웠지만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컸다. 내가 한 떡이라 그런 지 맛도 별났다.

가끔 예전에 엄마가 해 준 떡이 그리워진다. 요즘은 집에서 떡을 해먹지 않는다. 시장에서 파는 떡이 많아 굳이 집에서 힘들게 해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연로하신 엄마보고 떡 해 달란 얘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맛의 기억은 끈질기다. 나이를 먹으면 어릴 적 먹은 음식을 찾는다. 음식이 주는 위안이 크다. 실향민의 고향에 대한 기억도 따지고 보면 음식에서 비롯된다. 북한에 고향을 둔 사람들은 요즘 부쩍 냉면을 찾는다고 한다. 남북한 훈풍 덕분이다. 이북 사람들이 먹었던 고유의 음식은 뭐가 있을까. 언젠가 그 땅을 밟으며 평양냉면, 개성만두, 북한 쑥떡을 먹을 수 있으려나.
우난순 기자 rain4181@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