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명절 고기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명절 고기

  • 승인 2018-09-26 00:52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또 무국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청명한 계절에 맞는 한가위. 낼 모레면 50 중반을 바라보는데도 명절만 되면 아직도 설렌다. '이쁜이 꽃분이 모두 다 반겨주는데~'. 마음은 벌써 고향으로 한달음 달린다. 뭐 기혼여성들은 머리 깨나 아프겠지만 말이다. 집 떠나 객지생활 하다 보면 먹는 게 영 시원찮다. 이런 말이 있잖나. '객지 밥은 먹어도 살로 안 간다'고. 하여 난 설이든 추석이든 명절만 되면 벼른다. 평소 굶주렸던(?) 내 위장의 못다한 한을 맘껏 풀어주리라!

요즘은 명절이어도 일가친척 왔다갔다 하지 않는 게 세태인 것 같다. 우리 집도 친척이 없어 식구들끼리 밥 먹고 성묘갔다 오는 게 전부다. 점심 먹고 하품 한 두번 하다 으레 늘어지게 낮잠 한번 자야 명절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다. 반면 뱃속에 거지가 든 나는 생쥐 풀 방구리 드나들 듯 부지런히 주방을 들락거린다. 올 추석도 음식이 진수성찬이다. 눈이 짓무르도록 TV를 보다 접시에 전을 이것저것 담아와 거실에서 두 다리 쭉 뻗고 먹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 훤히 보이는 들판은 곧 황금빛으로 물들 것이다. 가을의 따사로운 햇살이 거실 한 켠에 슬그머니 기어들어와 자릴 잡았다. 365일 한가위만 같으면 원이 없겠다. 여하튼 동그랑땡, 단호박·가지·버섯·명태전 등 먹을 게 쌓였다. 그 중 돼지고기 간 것을 듬뿍 넣고 청양고추를 넣어 매콤한 동그랑땡에 손이 자꾸 간다. 냠냠 쩝쩝. 옆에서 엄마가 그런 날 물끄러미 보더니 한 마디 한다. "넌 먹는 게 다 어디로 가니?"

어릴 적 명절 날 아침 우리는 큰아버지 집으로 갔다. 의례적으로 가야 하는 일이었지만 썩 즐겁진 않았다. 일단 큰아버지가 어렵고 불편했다. 큰아버지의 괴팍한 성격은 동네에서 소문났다. 거기다 자린고비여서 도대체가 돈 쓸 줄을 모르는 분이었다. 못살던 예전 어른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큰아버진 유별났다. 오래된 집이 하도 누추하고 좁아서 자식들이 집을 새로 짓자고 성화였지만 돌부처 저리가라 꿈쩍 안했다. 추석날 아침 제사지내고 큰아버지, 아버지, 오빠들은 안방에서 밥을 먹는다. 방이 워낙 좁아 온 식구가 같이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머지 여자들은 윗방에서 먹어야한다. 그런데 윗방은 손바닥만큼이나 작다. 콩알만한 전구가 천장에 위태롭게 매달린 윗방은 컴컴한 동굴이나 다름없다. 오래된 이불보따리, 이런저런 물건들이 들어차서 쾨쾨한 냄새도 난다.

차디찬 방바닥은 고릿적에나 볼 수 있는 빳빳한 장판이 깔려 있다. 우리는 앉지도 못하고 서성이다 밥상에 둘러 앉는다. 말소리 크게 내는 걸 질색하는 큰아버지 안 들리게 여자들은 소곤소곤 키득거리면서 그제서야 제삿밥을 먹는다. 멀리서 보면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과 영락없다. 희미한 불빛을 받으며 조악한 밥상 앞에서 머리를 맞대고 구차하게 밥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무나물, 고사리 볶음, 전, 홍어무침 등과 탕국. 그런데 큰어머니의 탕국은 언제나 맛있었다. 명절에나 먹어본 소고기 탕국. 그땐 돼지고기도 귀해서 어쩌다 먹을 수 있었다. 하물며 소고기는 어떻게 생겼는지, 맛이 어떤지 사실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귀해서 맛있고 큰어머니의 손맛이 남달랐다. 아마 간장 맛이 특별한 것 같기도 하다. 음식은 베이스가 중요하다. 장 맛이 좋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젠 명절에나 먹는 고기가 아니다. 사시사철 물리게 먹는 게 고기란 말씀이다. 흔해서 그런지 예전처럼 맛있는 줄을 모르겠다. 뭐든 조금 부족해야 갈망하게 된다. 남녀간의 사랑처럼 말이다. 큰아버지, 큰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맛있는 탕국 먹을 일도 없어졌다. 호랑이 큰아버지의 땡 고함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서럽고 그리운 법이다. <미디어부 부장>
우난순 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전례없는 늑대 포획 계획에 커지는 수색방식 논란
  2. 민주당 세종시의원 10개 선거구 '본선 진출자' 확정
  3. 이춘희→조상호 향해 "헛공약·네거티브 전략" 일침
  4. 지역 학원가 '동구 글로벌 드림캠퍼스' 운영 방식 항의서한
  5. 김도경 초대회장 “회원들의 든든한 울타리, 대전경제 새역사 쓰겠다”
  1. 대전동물원 '늑구' 생포 직전 포위망 달아나… "건강·은신구역 확인, 포획 가능성↑"
  2. 취업 후에도 학자금 상환에 허덕이는 청년들…미상환 체납액 역대 최대
  3.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피엑스프리메드'에 1억 원 시드 투자
  4. 양승조·용혜인, '산업혁신·기본사회·민주분권' 결합한 정책협약 체결
  5. [사설] 행정수도 특별법 '법안소위' 이제 끝내야

헤드라인 뉴스


2029년 `서울 청와대→세종 집무실` 대통령 시대 요원

2029년 '서울 청와대→세종 집무실' 대통령 시대 요원

문재인·윤석열 전 정부에서 시작된 '청와대 이전' 움직임이 이재명 새 정부에서 어떻게 완성될지 주목된다. 문 전 대통령은 광화문 시대를 준비했으나 좌절됐고, 윤석열 전 정부는 용산 시대를 열었으나 결국 얼룩진 역사만 남겼다. 이재명 새 정부는 올 초 도로 청와대로 컴백한 만큼, 2030년 임기까지 판을 바꾸는 과감한 시도를 할지는 미지수다. 수도권 정치권 등 기득권 세력들은 여전히 대통령실의 지방 이전에 극렬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의 14일 긴급 브리핑이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편의점 업계 비닐봉지 가격 인상·발주량 제한에 편의점주들 `예의주시`
편의점 업계 비닐봉지 가격 인상·발주량 제한에 편의점주들 '예의주시'

편의점 업계가 매장에서 쓰는 비닐봉지 가격을 인상하거나 발주량을 제한하고 나섰다. 중동 전쟁으로 비닐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급격히 오른 데 따른 조치인데, 편의점주 등은 고정 지출이 커지진 않을까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낸다. 14일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세븐일레븐은 최근 매장에서 점주들이 쓰레기를 담을 때 사용하는 비닐봉지 가격을 최대 39% 인상했다. 세븐일레븐이 점주에게 제공하는 비닐봉지는 50매 묶음으로 총 네 종류다. 검정 비닐봉지 큰 사이즈는 77원에서 106원으로 37.7% 인상했으며 작은 사이즈는 57원에서 78원으로..

학교에서 또… 계룡 교사피습에 도교육청 예방 체계 미흡 지적
학교에서 또… 계룡 교사피습에 도교육청 예방 체계 미흡 지적

충남 계룡 교사 피습 사건이 발생하면서 교육현장의 위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형태는 다르지만 과거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바 있어 충남교육청의 시스템 구축이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충남 학생인권조례도 교사 신변보호에 제약이 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인 13일 오전 8시 40분께 계룡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와 상담을 하던 학생이 미리 준비한 흉기로 교사에게 해를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교사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고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학생은 중학..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월호 참사 12주기,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12주기, ‘잊지 않겠습니다’

  • 대전오월드 인근에서 목격된 ‘늑구’ 포획에 나선 경찰들 대전오월드 인근에서 목격된 ‘늑구’ 포획에 나선 경찰들

  • 대전시 선관위, 지방선거 50여일 앞두고 투표참여 캠페인 대전시 선관위, 지방선거 50여일 앞두고 투표참여 캠페인

  • 초여름 날씨에 등장한 반팔 초여름 날씨에 등장한 반팔